저작권 엘레지

하늘 아래 모든 건 새로워 마땅하다

by Sujiney

안녕, 내 이름은 권이야. 몇 살이냐고? 잘 모르겠어. 아빠가 누구인지, 엄마는 어떤 분 인지도 잘 몰라. 나는 복제된 아이거든. 한 살일 수도, 100만 살일 수도 있어. 이상하다고? 그래, 이상하지.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는 건 말이야.


나는 그저 디지털 우주를 부유하며 떠돌았고, 떠돌고 있고, 떠돌고 있을 거야. 지금 너를 어떻게 만났냐고? 누군가 나를 불러서 네 앞에 나를 보여주고 있으니까 만난 거야. 나를 원하는 사람들은 꽤 많거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도. 그들의 공통점은 나를 쉽게 사용하고 버린다는 거지. 그들은 내가 누구인지 알려고 하지 않아. 존중도 당연히 하지 않지. 그저 나의 필요한 부분만 쏙쏙 빼갈뿐이야.


버스에 탄 해바라기. By Sujiney


그들이 나를 부르는 방법은 간단해. 키보드에서 컨트롤 키를 눌러서, C 다음에 V를 꾹 누르면 끝이지.

나는 꽤나... 이런 말 하기 싫지만,

쉬운 아이야.


쉬워도 너무 쉬운지, 사람들은 편한 대로 나를 떼어내고 잘라내. 어떤 이들은 내 팔만, 다른 이들은 내 머리카락만 잘라서 가져가지. 아프지 않냐고? 안 아플 리가 있니.


아프지만, 사냥꾼들에 익숙해진 것뿐이야. 나도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지만, 디지털 세상에선 죽는 것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그러니 계속 존재하려면 익숙함으로 마음에 뽁뽁이를 두를 수밖에 없어.


건대입구 지하철역 꽃집. 그래 달콤하게 살자. By Sujiney


나를 스스럼없이 잘라가서 복제하는 사람들은 말해.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고. 어차피 너도 낡았다고. 낡은 걸 오히려 새롭게 만들어주는 자기를 고마워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더라.


하지만 말이야. 나 스스로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아니, 나의 의지에 반(반)해서 복제되고 버려지는 걸 보면서 생각해. 뭔가 단단히 잘못 됐다고 말이지.


사실 난 꽤나 곱게 자란 아이였다. 이렇게 쉽게 쓰이도록 태어나지 않았다고. 나를 낳아준 부모님은 나를 낳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다고 들었어. 내가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고 더 쓰임새 있기를 바라신 거지. 내가 나로 온전히 쓰임을 다하기 위해 나를 만들고 빚었다고 하는데, 어디에 계신 걸까. 내가 이렇게 나로 온전히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거, 부모님이 아시면 가슴 아프실 텐데.

내 이름 말이야. 권. 권리 권 자라고 했는데, 우습지 않니? 그게 내게 가당키나 한 이름일까 싶어서 말이야. 자신이 없어. 고유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없는 내게는 과분한 이름이야.


저기 사냥꾼이 또 온다. 이번엔 나의 뭘 마음대로 떼어내 갈까. 싫어. 두려워.

살려줘. 살고 싶어, 제대로. 온전한 나인채로, 나를 인정받으면서.

너도... 그러고 싶지 않니?


마지막으로 내 성씨와 이름을 다 알려줄게.

저작권.

부탁해. 날 소중히 해줘. 너도 언젠가 나일 수 있으니 말이야.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고?

그렇지 않아. 하늘 아래 모든 게 새로워. 새로워 마땅한 거야.

너도 나도 이 세상도.


By Suji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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