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은 없지만 그래도

외국어 공부를 가장한 넷플릭스 리뷰 44번째 브런치 by SJ

by Sujiney

잘난 척 발레를 배운 지 10년이라고 지난 회에 썼지만 기실, 부끄러운 고백이기도 했다. 10년이 됐는데도 이 모양 이 꼴이라는 고백. 앞으로 10년, 20년, 아니 손가락 움직일 힘이 있을 때까지 계속할 테지만 계속 이 모양 이 꼴일 거면 체력을 고려할 때 그나마 다행일 거란, 체념 섞인 우려.


물론 늦게 or 다 늙어서 시작한 탓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내가 정말로 발레 천재였다면 발레 쪽으로 뭐라도 밥벌이를 하고 있겠지.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이게 요즘 좋아들 하는 오글거리는 말로 팩트.


잘한다는 게 뭔지 머리로는 아는데, 내 몸으론 잘할 수 없다는 것. 신은 얄궂다.


새 신 vs 헌 신. By SJ


그래서 넷플릭스에 추천작으로 ‘예스 발레’가 떴을 때, 잠시 망설였다. 스토리라인만 봐도, 1%의 천재 이야기로 99%의 둔재를 혹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으니.


줄거리인즉슨, 인도 뭄바이의 슬럼가의 두 소년이 가난과 가족의 반대 등을 물리치고 천재성을 발휘해 미국 유수의 발레학교에 장학생으로 선발된다는 것. 물론 based on a true story, 현실 기반 영화다.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한 의도로 만들었겠지만 천재성이 없는 대다수의 이들, 그리고 그중 한 명인 나에게 이런 영화는 어찌 보면 잔인하다. 그럼에도 러닝타임이 2시간인 이 영화를 새벽 1시에 틀고야 말았다 와인 한 병 딴 건 안 비밀.


'예스 발레' 포스터. [넷플릭스]


참신함으로 따지면 사실 지금 한국 넷플릭스에서도 방영 중인 웹툰 기반 ‘나빌레라’가 한 수 위. 10대 소년 아닌 70대 할아버지의 발레 도전기를 그렸으니. 하지만 그럼에도 ‘예스 발레’ 같은 영화는 계속 나와야 한다. 지금까지 잘난 척 싫다고 써놓고 웬 헛소리냐고? 세상의 주인공은 그래도 나같이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아는 이들이 아니라, 열심히 하면 언젠가 될 거라는 믿음을 가진 이들이어야 하니까. 그래야 사람들은 희망을 위해 돈을 쓰고 꿈을 꿀 테니까. 그렇게 되어야만 세상은 돌아갈 테니까.


나도 그렇다. 말만 이렇게 하고 글만 이렇게 쓸 뿐. 오늘 이 글을 쓴 뒤에도 발레 학원에 가서 펴지지 않는 무릎을 조금이라도 더 펴보려 낑낑거릴 예정.


‘예스 발레’의 원제는 ‘Yeh Ballet’다. 국제 지정학적으로 의미가 크지만 우리가 사실은 잘 모르는 나라, 인도의 이야기. 인도에 번듯한 발레단이 없다는 사실도 이 영화로 알았다. 영화의 주인공들도 처음엔 발레를 ‘발레트’라고 발음해서 ‘t는 묵음이라고!’라는 핀잔을 들을 정도. 이들은 “춤이나 추겠다면 널 죽은 아들로 치겠다”는 아버지에 맞서 집을 나와 학원에서 기숙하며 에어컨에서 떨어진 물로 머리를 감고 거의 24시간을 연습을 하며 행복을 느낀다 저는 그냥 둔재여도 좋으니 집에서 샤워할래요.


신이 주신 재능인데 당연히 십분 활용 해야지 암요. [넷플릭스 캡처]


신의 권위에 기대어 가장의 권위를 내세우는 집안 어른에겐 이렇게 대든다. “발레 재능을 주신 건 다름 아닌 신이에요. 그런 신의 뜻을 거역하는 거야말로 죄 아닌가요.”


이쯤에서 공식 트레일러 보고 가시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rpeOrmjRK90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캐릭터는 천재 소년들이 아니라, 그들을 발굴하고 키워내는 스승, 사울이었다. 뭔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실은 알고 싶지 않아 세상은 이미 충분히 복잡하고 우울한 걸) 화려한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나락으로 떨어진 절망의 아이콘이다. 여기에다 성격은 까칠(많은 발레 천재들이 그렇듯).


하지만 이들의 재능을 길러내며 정작 인간으로 성장해가는 건 사울이다. 아이들이 “인도에 가진 게 너무 없어 미국에 눌러앉을 공산이 크니 비자를 못 내주겠다”는 말을 듣자, 자기 재산을 털어 아이들에게 은행 계좌를 터준다. 그리고 결국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실은 너희가 나의 스승이었어.”


발레 선생님들은 왜 이리들 까칠할까ㅋ 발레 좀 배워보면 다들 하는 생각이다. 선생님, 그래도 사랑합니다. [넷플릭스 캡처]




발레 둔재이긴 하지만 그래도 다행스럽게도 나는 내 일을 사랑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애증의 관계, love-and-hatred relationship이지만. 100퍼 싫은 데 꾸역꾸역 하는 것보단 축복받았다고 느끼고, 감사하다. 그 감사함을 배가하는 건 내 일의 팔 할이 내가 원하는 사람을 만나, 묻고 싶은 것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


최근 국립발레단의 송정빈 무용수를 만났을 때도 그랬다.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이 ‘해적’의 재안무를 맡긴 인물. 그전까지만 해도 사실 난 국립발레단을 아끼고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송정빈의 진가를 잘 몰랐다. 발레 천재들은 그간 많이 인터뷰했다. 이탈리아 발레 황태자 로베르토 볼레부터, 국립발레단의 강수진 단장까지. 송정빈 무용수는 발레단을 대표하는 수석무용수는 아니다. 그런데 왜 강 단장은 그를 안무가로 낙점했을까. 열심히 일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국립발레단의 김 OO홍보팀장님을 귀찮게 하면서 그를 인터뷰하며, 나는 깨달았다. 송정빈 무용수야말로 발레단에 진정 필요한 존재다.


단원들에게 안무가로서 감사 인사를 하는 송정빈 무용수. 뒷모습이 그다. By SJ


송정빈은 접착제다. 단원들을 하나로 묶는 재능과 소중한 인품이 있다. 그에게 발레 재능이 없다는 게 결코 아니다. 일단 국립발레단에 선발되어 주요 무대마다 선다는 것만으로 재능은 인정받은 셈. 그럼에도 못돼 처먹은 신은 사람을 빚을 때 재능의 양을 다 달리했다. 그러다 보니 천재와 영재 둔재와 범재가 생기는 것.


뭄바이 슬럼가의 발레 천재들. 박수를 보냄. [넷플릭스]


소질이라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무리 밤을 새워 연습해도, 신에게 선택받은 천재는 밤을 새우지 않아도 그 점프를, 그 푸에테 24회전을 가뿐히 해내는 걸.


사람의 됨됨이를 결정하는 건 그다음이다.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좌절만 한다면 하수 오브 더 하수.


발레 영재인 송정빈에게 이렇게 묻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다.


“저, 물어보기 미안한 질문인데요. 무용수로서 자기의 한계가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땐 어떻게 극복, 아니, 어떤가요?”


이러고 사실 마른침을 꿀꺽 삼켰더랬지. 만약 내가 이 질문을 받았다면, 자존심이 상해서 “뭐라고요? 뭐 이런 인터뷰가 다 있어?”라고 상을 뒤엎었을 거니까.


하지만 정빈 씨는 달랐다. 싱긋 웃으며 이런 답을 내놓았다.


“무용수로서 저는 최선은 항상 다하지만 한계점은 알고 있어요. 안무는 다른 얘기이지만요. (무용수로서 저는)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걸 잘하자’고 생각해요.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저는 캐릭터 연구나, 연기도 너무 재미있거든요. 제가 수석처럼 테크닉이 아주 특출나진 않지만 저에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고 최대치로 스스로를 보여드리기에 후회는 없어요.”

정빈 씨, 아니, 정빈님, 존경합니다.


기사 전문은 여기.

https://news.joins.com/article/24019378




발레 무대는 극소수 천재들이 빛나는 곳. 의심의 여지 1도 없음. 그러나 그 무대를 꾸미기 위해선 다수의 영재들과 범재들의 피나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극소수 천재들 혼자서는 2시간이 훌쩍 넘는 무대를 꾸밀 수 없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서 ‘생쥐들(the rats)’라고 부르는 연습 단원들부터, ‘시체’를 떠올리게 하는 corps de ballet까지, 모든 이들의 손짓과 발짓 그리고 가쁜 숨이 모여 완성되는 게 발레, 그리고 인생 아닐까.


그래서 오늘도 Yes, life.


By SJ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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