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러님 감사합니다

외국어 공부를 가장한 넷플릭스 리뷰 42번째 브런치 by SJ

by Sujiney

업이 업이다 보니, 이젠 웬만한 악플엔 면역력이 생겼다. 최애(?)악플은 “토착왜구XX야, 니네 나라로 돌아가 AV나 찍어라”다. AV의 세계엔 과문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외모가 되어야 출연하는 거 아닌가? 아님 말고


코로나19도 변종이 생기듯, 악플도 진화 중이다. 만시지탄이지만 각 플랫폼이 댓글 정책을 강화했더니 이젠 e메일이 쏟아진다. 제목들이 흥미롭다. 순수(?)한 분들은 “한심하기는” or 다짜고짜 “XXX” “열여덟X” 등을 쓰는데, 좀 더 용의주도한 분들의 제목은 이렇다.


사례1) “추미애 관련 제보”

사례2) “수고 많으십니다.”


열어보니


사례1)의 경우 물론, 추미애 전 장관과는 하등 무관. 대신 입에 담기 차마 어려운 욕이 난무. 그럼 그렇지.

사례2)의 경우, 첫 시작이 재미있다. “수고는 개뿔”이다. 그리곤 another 욕 퍼레이드.


이런 용의주도 악멜러들의 경우, 대개 gmail을 사용한다. 대개의 경우 내게 악메일을 보내시는 분들의 성향은 선명한 반일, 어중간한 반미, 완연한 친중&친북의 경우가 많은데, 메일 계정은 미국에 본사를 뒀기에 국내에선 추적이 어려운 곳을 선택해서 쓰는 거다. 이런 악메일링 노하우를 쌓기까지 이분들이 들였을 시간과 에너지에 박수는 개뿔.




방심은 자만을, 자만은 화를 부른다. 그래서인지 아래 메일을 받고 내용을 확인한 뒤 나는 주저앉고 말았다.



‘보배드림’이라는 익히 잘 알려진 악플의 성지에 나를 팔로우 해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건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엔 좀 정도가 심했다. 이렇게 독자가 친히 e메일을 보낼 정도라니. 근데 이 독자라는 분이 사실은 이 악성글을 쓴 사람은 아닐까라는 과대망상까지 하는 나


내용인즉슨

‘뼨찌’라는 특정 도구를 사용해 내 특정 신체 부위를 잡고 찢어버리겠다는 것.

이 글에 ‘좋아요’가 내가 확인했던 시점에만 486개.


문제의 글은 추후 삭제됐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방심이자 자만이었다. 2017년 전국적 악플 세례를 당했던 때 갔던 정신과를 다시 가볼까도 생각.


무엇보다 가장 싫은 것.

길 가는 수많은 마스크 인파 속에 이 글을 쓴 익명의 보배드림 사용자와, ‘좋아요’를 누른 최소 486명의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다.


무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으란 법은 없다.


넷플릭스에서 그날 밤, 브레네 브라운(Brene Brown)의 ‘나를 바꾸는 용기’라는 1인 self-help 토크 다큐를 봤다. TED에서도 유명한 브라운의 이 토크쇼는 사실, 내가 제정신이었으면 재생하지 않았을 콘텐츠. 오만방자한 나는 self-help 종류의 처세술부터 연애상담론, 자기 계발 콘텐츠는 별로 높이 평가하지 않는 경향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새벽 3시까지 브레네 브라운의 ‘나를 바꾸는 용기’를 보면서 나는,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공감과 위로를 느꼈기에.


브레네 브라운 홈페이지 사진 캡처.


브라운의 키워드는 ‘vulnerability’와 ‘put it out there’ 두 가지.

Vulnerability는 사전적 정의로는 취약성, 약점 등으로 해석 가능. 하지만 이 단어는 한국어로 적확한 번역이 까다로운 수많은 영어 단어 중 하나다.

두 번째, put it out there 이건 더 어렵다. 네O버 사전엔 “나를 밖에 두다”라고 나오지만, 음 그것보다는 스스로를 바깥세상에 던질 용기, 정도의 의미 아닐까.


1시간을 훌쩍 넘기는 이 1인 스탠드업 토크쇼에서 브라운은 위의 두 키워드를 다양한 주제로 변주한다. 그중엔 자신이 받았던 악플 사례도 있다. 용기를 갖고 스스로의 약점을 드러내라는 조언에 대해 사람들이 달았던 댓글은 이랬다고 한다. “야 이렇게 생겨 처먹었으니 약점을 드러내는 용기를 가질 수밖에 없지 않겠어?” “우와 어떻게 저런 외모로 방송에 나올 생각을 하지?”


음. 악플 수준은 내가 win인 거 같음. 여하튼, 이 악플들을 읊는 브라운의 표정은 온화하기 그지없다.

왜?


그는 이렇게 일갈한다.


“이 사람들, 익명 뒤에 숨어 있잖아. 자기를 스스로 밝히고, 당당히 비판을 할 용기도 갖지 못한 사람들이야. 그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는 걸 허용하기엔 삶이 너무 아까워.”(약간의 polishing 윤색 있음)


브레네 브라운의 '나를 바꾸는 용기' 캡처. [넷플릭스]


그래, 내게 ‘뻰치’ 악플을 단 사람도 익명이었고, ‘좋아요’ 486개를 단 사람들 역시 익명 뒤에 숨은 비겁자들이었다. 심지어 내 가장 못생긴 시절 사진을 어디에서 기가 막히게 폭풍 검색해서 그걸로 악의적 캐리커처까지 그려대는 ‘다다’라는 self-claiming 아티스트도 역시 스스로의 이름과 신변은 절대 노출하지 않는다.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이름부터 성별이 모두 비공개인 나의 대표적 악플러님. 후아유? [네이버 블로그 캡처]




브레네 브라운의 넷플릭스 쇼의 punch line(핵심 주제가 되는 名문장)은 이렇게 정리.


평안한 것보다 용기를 택하고, 나 스스로를 바깥 세상으로 내놓는 것이 용기다. 용기란 스스로를 취약한 상태로 내놓을 수 있는 자세이기 때문.


브라운의 아래 발언들을 모아 정리한 것.

I’ll choose courage over comfort. We can measure how brave you are by how vulnerable you’re willing to be. They(악플러s) will never once put themselves out there.


악플러뿐이랴. 이 세계엔 수많은 뒷담화er들이 있다. 앞담화 할 용기는 없으니 뒤에서 수군대는 무리들. 남녀노소 불문이다. 이런 분들에게도 브라운 언니는 속 시원한 강 펀치.


브레네 브라운의 '나를 바꾸는 용기' 캡처. [넷플릭스]


“너희들 인생이 힘들다고 남에게 그 감정을 쏟아내지 말라고! 비겁하니까.”


Brava!

(‘브라보’의 여성형. 요즘 이탈리아어 배우고 있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수고 많으십니다’라는 악메일은 열기 무섭다. 하지만 그래도, 이들이 무서워서 나도 모르게 칼럼의 수위를 낮추거나, 자기 검열을 하게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독려할 용기는 다시 생겼다.


그래, 악플러 악멜러 뒷담화er들아,

이게 내 답이다.


그래도 나는 쓴다.


자, 투스카니 부동산 중개인 Allison으로부터 온 e메일에 답장하러 가야겠다.

왜?

다음 사진으로 답을 갈음.


Michele Morrone 인스타그램


한국이,

한국에서 사는 나 자신이

진저리 나는

봄날에.


By SJ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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