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파리발 인천행 비행기 화장실 옆에서 뒤꿈치를 들고 낑낑대는 여자를 보고 놀라셨다면, 사과드린다. 나였다. 13시간 비행도 힘들긴 했으나, 5일 출장 동안 한 번도 발레 클래스를 듣지 못했기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뭐라도 해야겠기에 화장실 차례를 기다리다가 를르베업을 섰는데 아뿔싸, 쥐가 제대로 나서 눈물이 핑.
일본과 미국에도 들고갸 국립발레단 굿즈와 여름쌤의 선물 파우치♡ by Sujiney
길고 길었던 팬데믹 터널의 끝. 타고난 역마살 덕에 올해 프랑스 파리와 일본 도쿄, 교토, 야마구치를 다녀왔다. 타이트한 일정이었던 파리와 야마구치에선 꿈도 꾸지 못했지만, 일본 도쿄와 교토에선 현지 발레 클래스를 들었다. 그것도 여러 번. 다른 출장 일정과 달리 도쿄는 발레를 테마로 갔던 여행이었던 터라, 매일 들었다. 해외까지 가서 무슨 발레냐고? 발레가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지 않냐고? 다 맞는 말씀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치광이들이라면 이해할걸. 여행 가도 발레 하고 싶다.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덜 못하기 위해서.
하긴 프로 무용수들도 마찬가지.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소속이면서 한국계 미국인과 결혼한 이자벨라 보일스턴 무용수가 지난해 여름 휴가지 해변가에서도 바워크(barre work)를 하는 사진을 올린 적이 있다. 어디엘 가서든 바(barre)스러운 것을 기어이 찾아내어 바워크를 하고야 마는 건, 다 이유가 있다. 몸은 필요이상으로 정직하니까.
서두가 길었다. 일본 도쿄와 교토의 원정 발레 꿀팁s 시작! 쇼핑 꿀팁도 빠지면 섭섭하지.
일본, 그것도 도쿄라면 발레의 성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여기다. 차코트(Chacott). 차코트는 무용복부터 포앵트 슈즈(일명 토슈즈), 분장 및 화장품까지, 다양한 발레 용품을 취급하는 브랜드로,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 지점에선 발레 클래스도 운영한다. 다이칸야마의 차코트 본점. 팬데믹 시절, 되뇌고 곱씹었었다. 여행 제한이 풀리면 바로 가야지, 발레 성지순례 in 다이칸야마.
쇼핑의 끝은 카페인. 차코트1층 카페♡ by Sujiney
이런 예쁜 쿠키 본 적 있나요♡ 차코트 카페에서 절찬리 판매. 각종 발레 관련 근육 단련 참고서적도 다양. by Sujiney
다이칸야마는 서울 연희동과 왠지 비슷. 동네 나름의 분위기도 차분하고 예쁜 상점 및 맛집들이 많은데, 맹점이 있으니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지 않다는 것. 그래서 숙소는 무조건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으로 했다. 구글맵을 켜고 차코트 다이칸야마 혼텐(본점)에서 가깝고 지하철 역 접근성도 괜찮으면서 세탁기도 있는(발레복 전체를 손빨래하는 건 무리무리) 숙소를 찾았다. 결과적으로 대만족. 특정 호텔명 언급은 삼가겠지만, 원하시는 분은 댓글 또는 이메일 주시길. 이 호텔은 다이칸야마 차코트까지 도보 15분. 가는 길에 블루보틀 나카메구로점도 있어서 커피도 자동 해결.
<이랏샤이마세, 차코트 다이칸야마에>
또 가고 싶네. by Sujiney
차코트 다이칸야마의 외관은 이렇다. 무려 3층 전체가 발레복 매장과 카페, 발레 클래스 스튜디오로 구성돼 있다. 일본 특유의 새해 장식까지 이렇게 토슈즈를 활용해서 만들어 걸은 센스.
by Sujiney
우선, 발레 클래스. 시간표는 아래에서 미리 확인할 수 있다. 일본어를 하면 금상첨화 but 못해도 무관. https://chacott.hacomono.jp/reserve/schedule/1/1/ 다이칸야마의 경우, 접수처로 가서 등록을 하면 레벨과 선생님 추천도 해주는 시스템이었다. 그날은 없었지만 한국어가 가능한 직원도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다들 BTS에 블랙핑크에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쓰' 팬이라고들 하시며 반가워해줘서, 고마웠다.
클래스를 들으려면 우선은 정기 회원으로 등록하는 게, 일본에 거주하고 있다면 추천.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해도 일정 기간 내에 소진하면 되는 쿠폰제가 있다. 나는 결국 쿠폰제로 시작했다가 정기 회원증을 끊었는데(유효기간 1년), 그 이유는 아래 쇼핑 꿀팁에 공개.
쿠폰 스티커 & 회원증. 코팅한 회원증 우측엔 사진 부착. 만들 요량이라면 증명사진 가져가세요. by Sujiney
<클래스 스토리 - 레벨, 그것이 문제로다>
내가 들었던 클래스는 넷. 매일 하나씩 들었다. 간베 선생님, 시오리 선생님, 치에 선생님, 마나미 선생님.
첫 차코트 원정이라 레벨에 고민이 많았다. 취미발레의 역사가 길고 저변이 넓은 일본이고, 그중에서도 차코트, 그중에서도 본점이다. 일단 낮은 자세로 접근해 보기로. 2023년 봄 현재 서울 본진에선 초중급 정도의 수준이지만 기초와 기초 초급(기초에서 초급으로 넘어가는 이들을 위한 쉬운 초급), 초급을 섞어서 들었는데, 기초가 초급 같고 초급은 초중급 같았다.
레벨은 꽤 분화되어 있는데, 입문-쉬운 기초-기초 초급-초급-중급 순이다. 포앵트/포인트슈즈 수업은 대개 초급 및 중급 뒤에 붙여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차코트 다이칸야마의 시간표. by Sujiney
놀라운 건, 매 클래스 시작 직전에 선생님들에게 내가 외국인이라는 정보가 접수처를 통해 전달이 되었고, 선생님들께서 먼저 인사를 해주러 와주셨다는 것. 클래스 들으러 와주어 고맙다, 이름은, 발레는 몇 년 정도 배웠는지, 일본어로 진행해도 괜찮은지 등등을 물어보심. 발레 용어는 프랑스어이고, 클래스의 대략적 흐름은 아프리카부터 아시아까지 다 같기에 일본어를 못해도 걱정할 것은 없다.
네 명의 선생님들 모두 프로 발레리나 출신으로, 관련 경력을 상세히 기재해 참고가 될 수 있게 했다. 예를 들어 4살 때 발레를 처음 시작했다는 등등. 클래스 중 선생님들마다 강조하시는 포인트는 달랐는데, 따로 브런치 스토리에도 글을 썼던 간베 유미코 선생님은 설명을 상세히 해주시는 편이었고, 치에 선생님은 기초반인데도 다양한 동작과 테크닉을 알려주려고 노력하셨다. 기초반인데 셰네턴이 나오다니 오 마이갓.
시오리 선생님과 치에 선생님은 핸즈온(학생들의 몸을 직접 손으로 잡아주시면서 티칭 하는 것)도 많고 꼼꼼하셨다. 마나미 선생님은 특유의 에너지와 카리스마가 대단하시고 티칭은 엄격한 듯하면서 유쾌했다. 팬인 학생들도 꽤 많으셨음. 간베 선생님은 주로 설명을 상세히 해주셨는데(기초 클래스였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을 것으로 짐작됨), 이 분의 설명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울뻔했다는 건 예전 브런치 글에도 따로 적었다.
선생님들의 스타일은 달랐지만 공통점은 두 가지.
1. 투철한 프로정신
2. 한국에서 왔다니 엄청 반가워하심.
마나미 선생님♡ 유쾌한 카리스마 멋지셨어요! 함께 클래스 들은 일본인 분이 제안해서 찍은 사진♡
<스튜디오 에티켓>
인상적이었던 것은 동료 수강생들의 매너. 스튜디오 에티켓과 스페이싱 매너가 남달랐다.
차코트 다이칸야마의 스튜디오는 일본 대부분이 그런 듯 하지만 조립식 바(barre)를 사용했다. 수업에 조금 일찍 도착해서 시작 전에 동료들과 함께 바를 옮기고 조립하는 것이 예의. 이게 꽤 무게가 있어서 조심조심 들어야 한다. 호기롭게 들었다가 완전 무거워서 놓칠 뻔ㅠ
옆거울과 앞거울 모두를 사용할 수 있는 구조였는데, 선생님께서 시범을 보여주시려 중심 바로 가시면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다. 선생님의 동작에 방해가 되지 않고, 선생님의 모습을 못 보는 동료들이 없도록 그 바에 서있던 회원들이 동시에 뒤로 물러서기 때문. 공손히 두 손을 모아서 경청하는 건 기본. 시범이 끝나면 거의 빛의 속도로 원위치를 하는 일사불란함도 기억에 남는다.
일부 학생들은 선생님의 조수 역할도 자처했는데, 선생님의 말씀이 길어지면 음악의 볼륨을 살짝 줄인다던지, 하는 센스. 선생님께 잘 보이려고 얄미운 여우짓을 하는 게 아니라, 진심 선생님을 위한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센터워크에선 사실 본의 아니게 서로 접촉사고(?)가 나는 경우가 있는데, 순서가 끝나고 꼭 그 사람에게 찾아가서 "미안합니다"라고 사과하는 모습도 여러 번 목격.
레오타드는 역시, 레벨이 올라갈수록 델라로 쥐스따 유미코 등으로 패턴 및 색상이 화려해짐. 입문반도 타이즈 같은 기본은 다 갖추고들 오는 듯했다.
<알아두면 좋은 차코트만의 스튜디오 룰>
1. 가끔 슈즈에 물을 뿌리는 분들이 계신데, 바닥 또는 슈즈 밑창이 미끄럽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서울에선 대개 스프레이를 구비해 두는데, 차코트 다이칸야마엔 물에 적신 도톰한 천이 구석에 놓여있었다. 이 수건에 발을 올려 슈즈가 습기를 머금게 하는 방식이었다. 스프레이의 경우, 바닥에 물이 남아서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고, 물 묻히는 걸 원치 않는 이들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방식은 꽤 괜찮아 보였다.
스튜디오 한 켠의 테이블 위엔 소독제 등. 아래에 놓인 갈색 수건이 물 묻히는 용도. by Sujiney
2. 일본은 여전히 아날로그 사회. 차코트 역시 회비를 내고 정식 회원이 되면 아래와 같은 회원증을 만들어주는데, 증명사진을 붙여 이름 등 정보와 함께 코팅해 준다. 접수대에 이 회원증을 내고 클래스를 들으면, 접수처에서 출결 등을 기록한 뒤 스튜디오 밖의 게시판 아래 작은 탁자에 회원증들을 놓아둔다. 클래스가 끝나면 직접 찾아가는 시스템. 그냥 갈뻔했던 적이 여러 번이었다.
왼쪽 하단의 작은 테이블이 회원증 찾아가는 곳. by Sujiney
3. 15분 이상(정확한 숫자는 바뀔 수도 있으니 확인 필요) 늦으면 클래스에 들어갈 수 없다는 엄격한 룰도 있다. 단, 자연재해 및 지하철 지연과 같은 경우엔 미리 리셉션에 연락을 하면 늦어도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쇼핑 꿀팁>
아날로그 회원증의 위력은 컸다. 특히 1층 발레복 매장에선. 이 회원증을 내면 거의 대부분의 제품을 무려 10%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었다. 회원증은 일본 전 차코트 매장에서 사용가능하다. 이후 교토에서 차코트를 갔을 때도 이 회원증을 내고 10% 할인을 누렸으니, 어찌 아니 기쁘리오.
차코트에 왔으면 토슈즈를 아니 살 수 없다. 특히 다이칸야마 본점에 갔다면 더욱 강추. 되도록 평일에 가는 것을 추천하고 싶은데, 평일 한정으로 무료 각인 서비스를 해주기 때문이다. 영문 이니셜뿐 아니라, 백조 같은 발레 관련 문양을 골라서 토슈즈 바닥에 새길 수 있다.
토슈즈 구입 전에 피팅은 매우 중요. 차코트는 다이칸야마뿐 아니라 대부분의 매장에서 피팅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토슈즈를 신고 업을 서볼 수도 있고, 제한 없이 다양한 종류를 마음껏 상담하며 시착해볼 수 있다. 국내에 들어와 있지 않은 모델들도 여럿 있는 건 말해 뭐 해. 토슈즈 피팅은 예약제. 예약을 안 하고 가도 자리가 있으면 해 주지만, 일본의 특성상 예약하고 가면 더 좋아한다(=잘해준다). 토슈즈 피팅 및 구매 후엔 나만의 토슈즈 카드를 이렇게 만들어준다. 나만의 토슈즈 역사 인 셈. 교토 매장에도 토슈즈 코너는 꽤 컸다. 하나 더 살 뻔.
교토 차코트에서 산 친구 선물♡ by Sujiney
토슈즈 피팅하는 곳♡ 다이칸야마 뿐 아니라 차코트 거의 전 매장이 이런듯. by Sujiney
토슈즈 및 발레복 뿐이 아니라, 발레 관련 도서 및 만화책, DVD까지 구비돼있다. 가히 발레 천국.
발레 도서 및 튀튀 모티프의 과자♡ by Sujiney
차코트만 있나. 유미코도 있다. 이름과 로고를 보면 일본 브랜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아니, 유럽 브랜드. 그럼에도 일본에 매장이 있고, 취발러들의 성지순례에 반드시 들어가는 곳. 신주쿠 쪽이라 차코트와 동선이 복잡해지긴 하지만, 그래도 사이즈 애매하기로 유명한 유미코를 시착해보고 구매할 수 있는 곳이니, 강추.
매장 이용시간은 1시간으로 제한한다고 했지만 내가 갔을 때는 매장에 총 5명 정도밖에 없어서, 1시간 넘게 있었어도 괜찮았음. 디자인과 사이즈가 제한적이므로, 마음에 드는 것은 일단 잡고 입어보는 게 좋다. 사이즈가 없으면 점원에게 문의하면 알아봐 줌. 탈의실까지 미스티 로즈 벨벳의 아름다운 천으로 꾸며져 있어서 행복!
차코트 쇼핑백 들고 유미코 가기♡ by Sujiney
도쿄 유미코 매장 내부. 탈의실 커튼까지 미스티 로즈 벨벳이라니! by Sujiney
<발레 in 교토>
교토 차코트엔 애석하게도 스튜디오는 없다. 그러나 교토에도 발레 학원은 많았다. 구글링으로는 잘 찾을 수가 없어서 일본 현지 사정에 밝고 일본어에 능통한 J.E. 천사 발메님의 도움으로 찾은 곳은, 미야시타 발레. 수 십 년 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이곳 선생님 스토리는 이전 글 참고해 주시길. 미야시타 발레 선생님들께서 "한국 분들도 더 많이 와주세요, 환영합니다"라고 꼭 전해달라고 하셨다. 미야시타 발레의 홈페이진 여기. 교토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 접근성이 좋아서 클래스 후 여행 동선에도 훌륭하다. 심지어 체험 클래스를 미리 신청하면 무료로 수강이 가능했다! 단, 사전 신청 필수. 일본어가 기본이지만 아래의 간단 영어도 가능할 듯. Hello, I am OOO, and I am visiting Kyoto from Seoul. I want to try your class, so please let me know how to proceed. Thank you.
미야시타 발레의 홈페이지는 아래와 같다. 주말을 제외하고 답장은 꽤 빨리 온 편. https://www.miyashita-ballet.com/
교토 미야시타 발레 학원♡ by Sujiney
<보너스! 발레 클래스 때 알아두면 좋은 일본어>
이치방=1번 / 욘방=4번 / 고방=5번
슛스=숫스(그대로 숫스라고 하시는 선생님들도 많았음)
카타=어깨 / 헤소=배꼽 / 카카토 or 키비스=뒤꿈치 / 코유비=새끼발가락 / 유비사키=손끝 / 후쿠라하기=종아리 /세나카=등 / 히지=팔꿈치 / 츠마사키=발가락 끝 / 노바시테=늘려요, 뻗어요 / (못또) 야사시쿠=(더) 부드럽게 / (못또) 츠요쿠=(더) 강하게
앙디올(축 밖으로 돌아가는 방향)을 턴아웃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았음.
모찌아게마쇼=모아서 위로 끌어올려봅시다(풀업)
<원정 (내 맘대로) 룰 몇 가지>
1. 내 수준보다 가급적 한 단계는 낮춰 가자. 그 클래스만의 특징과 룰을 숙지하지 못한 상황에선 에러가 발생할 수밖에 없으므로. 어버버 하는 모습은 부끄러움을 넘어, 동료들과 선생님께 민폐일 수 있다. 2. 단정한 복장과 덜 튀는 무용복. 역시, 선생님과 동료 수강생들에 대한 예의. 발레번과 말디레 블랙 캐미솔 레오타드에 마쥬에 오트밀 베이지 스커트조합을 개인적으론 선호. 3. 클래스가 열리는 곳이 발레복 브랜드이기도 하다면, 관련 착장 하나는 해주기. 차코트 슈즈를 신었다.
이 글의 초고를 쓰다 말고 몇 번이나 일본행 항공편을 찾아봤는지. 지금이라도 당장 가고 싶다. 발레라는 전 세계 공통의 아름다운 몸의 언어를 알게 되고 배우게 되고, 오늘도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