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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어떤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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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사람A Feb 27. 2022

어떤 순간. 옛날 일기장에서 2

아산병원 125동 33호실

엄마는 일일연속극을 본다. 엄마는 내가 읽고 있는 하루키를 모른다. 엄마는 ‘우유속 모카’를 좋아한다. 엄마는 언제부턴가 밥을 먹기 전 기도를 한다. 그리고 아침마다 혈압약을 먹는다. 아침에 빈속으로 혈압약을 먹은 엄마는 속이 너무 쓰려서 잠시 우유를 사러 슈퍼에 다녀오는 바람에 의사를 만나지 못했다. 엄마는 근래 들어 가장 속상한 얼굴을 하고는 스스로를 책망했다.


엄마는 화장실 노크를 하지 않는다. 엄마는 자신이 처음 하는 일은 몽땅 허당이라고 했다. 나는 엄마의 그런 어설픈 모습이 익숙하지 않아 낯설다. 엄마는 내가 까칠하고 유별나다고 했다. 나는 엄마가 촌스럽고 거칠어서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따져보면  집에서 살았던 시간보다 따로 떨어져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낯선 모습은 점점  늘어가겠지. 불편한  많은 병실, 엄마는 아픈 딸을 위해 조그만 몸을 쉴틈없이 움직인다. 그러면서도 하나 힘들지 않다며, 아침밥을 하지 않는 지금이 천국이라 한다. 보호자 간이침대에서 휴대폰으로 고스톱을 치며 피곤한 발목을 까딱인다. 평생 남을 위해 밥을 차린 여자.   없이 움직이면서도 까칠한 딸년한테 트집을 잡히는 여자. 엄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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