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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도리진 Nov 28. 2020

재능, 열정보다 중요한 것

나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나?


어렸을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다. 번역가도 되고 싶었다. 어쨌든 글 쓰는 일을 하면서 밥을 벌어먹고 살고 싶었던 것이다. 좋아하는 일이 독서 밖에는 없었고 국어를 잘했고, 책을 많이 읽어서 수업 시간에만 잘 들으면 그다지 공부하지 않아도 성적이 나왔다. 고1 때는 생물 과목을 시험 시간 전 단 10분의 쉬는 시간만 공부하고 한 개를 틀렸다. 하나 더 모르는 문제가 있었는데, 갑자기 선생님이 강의하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이 모험담을 가끔 친구들에게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나의 이런 공부 방식에는 한계가 있었다.

첫째, 당일치기-시험 바로 전날에만 공부-를 하기 때문에 포기하는 과목이 생겼는데, 그건 바로 공부시간이 많이 필요한 영어와 수학이었다. 특히 수학은 정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중3말까지는 버티다가 - 그래도 꽤 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 그 이후에는 참담한 성적을 거두게 되었다.


둘째, 예습과 복습을 전혀 하지 않는 상태에서 수업 시간에 잘 듣고, 시험 전날에만 공부하는 나의 방식은 애써 머리에 우겨 넣은 지식을 전부 휘발시켜 버렸다. 한마디로 머릿속에 남는 것이 거의 없었다는 이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모두 인내심을 가지고 차근차근 공부하는 데, 나의 경우에는 치고 올라갈 수 있는 학습적인 체력이 없었다.


그럼에도 다행히 나는 어느 정도의 성적을 유지했고, 서울의 사립 교육대학에 입학하여 교육학을 전공하고 영어를 부전공하게 된다. 원래는 국어 선생님이 되려고 교육학과를 들어갔는데, 우리 학번부터 국어 부전공이 없어져 버렸던 것이다. 나의 방황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출발했다. 꽤나 억울하다는 말이지. 잘하는 게 독서와 국어밖에 없는 아이를 이 험한 세상에 던져두고 알아서 살아내라는 것은 그 간의 상황 - 평범치 않았던 어린 시절 - 을 견뎌온 나에게는 너무 가혹했다. (글 쓰면서 막상 돌아보니 정말 어이가 없다.)


하지만 어찌 생각해 보면, 이 정도의 불운으로 끝난 것이 천행일 수도 있겠다, 싶다. 교통사고가 난 것도 아니고 무슨 끔찍한 일을 당한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나는 국어교육과가 아닌 교육학과를 갔기 때문에 심리학 수업을 엄청나게 많이 들었다. 심리학, 발달심리, 상담심리, 인지심리, 청소년 심리 등등.. 이렇게 많은 심리학을 들으며 너무 당연한 소리를 하는 교재와 교수님의 수업에서 느꼈다. 아, 내 잘못이 아니구나,라고.


늘 가위에 눌렸던 불안한 자아를 지니고 있었던 나는, 방학 때면 심리학 책과 무협지-김용 것만 읽었다-와 기타 문학 작품들을 쌓아놓고 읽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책으로 도피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고, 책 속의 세상 속에서는 나는 힘들지 않았으며, 축지법과 도술을 쓰며 대결을 펼쳤다. 때로는 현실을 잊고 때로는 내가 왜 맘이 아픈 것인지도 어렴풋이 알아갔다. 그러면서 병원에 가기도 좀 뭣하니까 스스로를 치료하자,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 이후에도 나의 방황은 계속되었지만, 그것은 심리적인 것일 뿐, 그냥 친구와 술 좀 먹으며 이대, 신촌, 남영, 종로 등등을 헤매고 다닌 것만 빼면 좀 가난하고 별다를 것 없는 대학 생활을 보냈다. 그리고 몇 가지의 직업을 거치면서 야행성이고 지독히도 자아가 강하며 사회 적응력도 그닥 이었던 나는 학원 강사가 되었다.


이렇게 말하고 보면 내가 굉장히 어두운 아이일 것 같아 보이지만, 나는 24살부터 해 왔던 사회생활에서 전혀 새로운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건 바로 유머와 말발과 주량에 의한 새로운 캐릭터의 발견이었다.


사람들은 대학 졸업 이후의 나에게 늘 뭐가 그렇게 좋으냐, 라며 물어봤다. 늘 많이 웃고, 우스갯소리 잘하고, 술도 잘 먹었기 때문이다. 학원 강사를 하면서, 어떤 거의 공연 수준의 여자 과학샘이 오기 전까지 나는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인기가 가장 많았다. 아이들을 가장 많이 웃겨 주었고, 영어와 수학으로 지친 영혼을 달래 주어야 하기에 숙제도 거의 내주지 않았으며, 설명을 너무나 잘했고 시험 문제도 잘 찍어줬기 때문이다. (그때는 국정 교과서 1종이어서 문제 찍어주기가 참 쉬웠다. 아, 그리운 옛날이여) 심지어 수학 땜방을 들어가도 내가 더 설명을 잘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본다. 나는 왜 작가나 번역가가 되지 못했을까. 인터넷에 '수진리버'라는 이름으로 기사도 내고 단편 소설도 올렸었다. (소설은 무라카미 하루키 동호회에 올렸었고, 기사는 kbs 관련 사이트였던 것으로 기억되나 확실치는 않다.) 일본어는 jlpt 1급을 땄었고 쉬운 에세이 번역이 가능할 정도의 실력이 있었는데. 조금만 공부를 더 했다면 어설픈 번역가 정도는 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이유를 알고 있다. 물론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나는 포기 대마왕이었다. 조금만 하다 포기하고, 또 포기한다. 시험 전날 3과목 중 2과목을 공부하고 한 과목을 놓았던 것처럼. 어렵고 오래 공부해야 하는 영어와 수학을 건너뛴 것처럼. 지금의 나라면 좀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영어라도 만점을 받기 위해 노력했을 것 같다. 아니면 대학 재학 전이든 후든 다른 비즈니스를 생각해 냈을 것이다.


그렇게 포기를 해 가면서, 나는 생각했다.

나의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그냥 귀찮을 뿐이라고. 정말 비겁했고, 비겁했고, 비겁했다.


내가 얼마나 비겁했는지는 구직에서도 드러난다.

나는 내가 붙을 것 같은 곳에만 지원했다. 그래서 면접 보고 100%로 어디든 붙었다. 그리고 난 면접에서 떨어져 본 적이 없다고 자랑했다. 사람들은 나의 특별함을 알아본다고. 세상에.


이제 나이가 들고 나의 마음의 본질을 꿰뚫어 보게 되면서 - 사실 아직도 못 그러는지도 모르지만 -  실패할지도 모르는 일에도 도전하고 있다. 또한 열정이나 재능보다 끊임없이 도끼질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포기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여긴다.


물론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잘 해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유튜버 신사임당님이 말한 대로 최소한의 리소스를 투입하여 배트를 휘두르고 그중에서 성과가 나오는 부분에 물량을 투입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실행 - 피드백 - 수정, 의 반복만이 그다지 재능과 인내심이 없는 내가 살 길이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말했다. 노력도 재능이라고.

그런데 그 노력의 재능도 내게는 없으니 결국에는 시스템을 만드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다. 반복, 반복, 반복. 실행, 실행, 실행. 그래서 나는 오늘도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온라인 비즈니스에 관한 강의를 듣고 실행을 한다. 움츠러드는 자신에게 용기를 준다. 배트를 계속 휘둘러야만 한다고.


주요 과목을 포기하는 어리석음을, 이제는 되풀이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나 자신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방법을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연예인들이 많이 앓는 공황 장애를, 그 비슷한 일을 경험한 적이 있다. 결혼 초반 너무 힘들어서 회사 교육 중에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간 것이다. 갑자기 과호흡이 와서 숨을 못 쉬고 손과 발이 바깥쪽에서부터 말려 들어갔다. 그때는 정말 무서웠고, 아, 이렇게 죽는 건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앰블런스 안에서 점점 멀쩡해져서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거의 정상이었고, 간호사와 의사에게 말하고 서약서 - 치료를 안 받고 나가는 것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 에 사인을 하고 집으로 유유히 돌아왔다.


지금은 그렇게 극한 상황으로 절대 나를 몰아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치유도 되었고. 아까 말한 대로 나는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나를 격하게 아낀다. 나를 아껴야 그들도 지켜낼 수 있으니까.


나를 지켜내고 시스템을 유지해서 나는 꼭 작은 성공을 이룰 것이다. 그리고나서는 나처럼 마음속에 작은 돌덩이 하나씩을 갖고 계신 분들을 조금이나마 도우며 살고 싶다.


차가운 계절을 좋아하는 까닭은 영혼이 날카롭게 벼려지기 때문이다. 조금은 차가운 인생 속에서 배운 교훈을 붙잡고 오늘을 산다. 오늘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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