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수진 Jan 07. 2023

대구시립무용단 <무엇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가>

새로운 시대의 혼란 속 본질로의 회귀

http://www.cultur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41

“춤을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하라”


춤을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일종의 실험으로써 마야 데런이 발표한 〈카메라를 위한 안무 연구〉(1945)는 무용과 카메라의 동등한 협력을 통한 코레오시네마Choreocinema라는 개념을 탄생시켰다. 이후 올해로 51주년을 맞이한 뉴욕 댄스필름 페스티벌 ‘댄스 온 카메라Dance on Camera’를 필두로 세계 각지의 댄스필름 플랫폼은 오랜 시간동안 춤과 카메라의 관계를 토대로 댄스필름이라는 예술 장르를 천착해왔다. 이들이 내새우는 홍보 문구처럼, 댄스필름은 관객에게 춤을 선보이는 또 다른 방식이다. 공연예술인 무용을 선보이는 전통적인 방식이 극장에 모여 같은 시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무용수와 관객을 전제한다면, 댄스필름은 이러한 관습을 깨고 무용수의 몸이 영상 미디어를 매개로 다른 시공간의 관객을 만나게 된다.


극장 안 객석에 앉아 무대 위 살아있는 몸의 꿈틀거림을 지켜보며 함께 호흡하는 것처럼, 관객이 스크린 위에 투사되는 가상의 이미지를 ‘라이브’ 한 어떤 것으로 받아들이고 경험하는 것이 댄스필름이 성취해야 할 ‘라이브니스liveness’이다. 같은 시간과 공간을 점유하는 작품과 관객으로부터 발생하는 라이브니스는 몸을 매개로 하는 무용예술의 존재론을 지켜내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에 힘입어 모사가 현실을 압도하는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 시대의 도래, 그리고 갑작스러운 팬데믹이 가져온 코로나 이후의 사회는 인간의 사유와 존재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대상을 인지하고 교감하는 데 있어 물리적 현존은 더 이상 필수 요건이 아니며 과거와 미래, 가상과 현실, 허상과 실제의 경계가 허물어짐에 따라 ‘라이브’ 경험에 관한 의미가 재구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발판삼아 댄스필름이라는 예술 장르가 새로운 차원의 라이브니스를 선사하며 그 가능성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공연예술이 아닌, 영상예술로써 접근해야 하는 만큼 그동안의 댄스필름은 무용가들이 쉽게 작업하기 어려운 분야였다. 그러나 예고 없이 우리의 일상을 덮친 코로나 팬데믹은 공연장을 유일한 무대로 활동해오던 무용가들의 시선을 영상으로 돌리고 작업의 외연을 더욱 확장하도록 촉진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지난 2020년 12월, 대구시립무용단은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을 통해 〈무엇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가〉를 선보였다. 코로나 팬데믹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던 당시 그간의 공연 공백을 깨고 다시 관객을 만나기 위한 대구시립무용단이 선택한 새로운 도전이었을 테다. 당시 이 라이브 생중계는 ‘라이브니스’를 물리적 공동 현존이 아닌, 라이브한 느낌 그 자체에서 찾았던 필립 아우스랜더Philip Auslander의 디지털 라이브니스 담론으로부터 그 가치를 찾을 수 있었다. 공연과 텔레비전 중계가 지닌 ‘실시간’이라는 유사성을 통해 영상 콘텐츠의 라이브니스를 설명하는 아우스랜더에 따르면 매개의 문제가 아닌 대상과 수용자의 의사소통, 그리고 시간과 공간의 공존을 넘어 정서적, 인지적 공존을 통해 우리는 ‘라이브함’을 경험하게 된다.


실시간 중계라는 방식을 통한 라이브니스를 추구하는 무용 공연은 코로나 시대 흔히 이루어졌던 방식이었다. 국내에서도 다수의 무대 공연이 유튜브 및 네이버 공연 라이브 등을 통해 스트리밍 되었다. 대구시립무용단의 작업이 차별화되는 점은 공연장 전체 공간을 사용하는 장소특정적site-specific 공연을 생중계했다는 점이다. 프로시니엄 무대가 아닌 대구문화예술회관의 팔공홀 무대를 비롯해 로비, 계단, 조명공간, 화장실 등 공연장의 모든 공간들에서 발생하는 무용수들의 춤을 빠른 전환을 통해 실시간으로 카메라에 담아 영상으로 송출하는 쉽지 않은 작업이다. 대구시립무용단과 공동제작한 대구MBC에게도 큰 도전이었을 이 스트리밍은 녹화되지 않고 단 한 회의 상영으로 종료되며 영상 미디어의 생중계가 지닌 라이브니스의 경험을 충실히 발현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제한된 무대가 아닌 공연장의 전체로 확장된 공간들을 탐구한데 반해, 각 공간들에 따른 스토리텔링이나 표현의 다양성, 역동성 등이 두드러지는 흥미로운 장소특정적 퍼포먼스로 충분히 발전되지 못한 점은 아쉽다. 녹화 편집이 아닌 만큼 실시간 중계 송출을 원활히 하기 위해 각 공간에 배치된 카메라 앞의 제한된 범위 내에서의 움직임만이 탐색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공간을 확장하고자 하는 연출적 의도가 있었으나 라이브 중계를 위한 카메라 촬영의 기술적 한계들에 의해 오히려 무용수들의 움직임 탐색은 제한된 듯 하다.


이러한 장소특정적 공연 스트리밍의 한계점은 이 후 제작된 다큐멘터리 필름 〈무엇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가〉를 통해 극복 되었다. 2022 샌프란시스코 댄스필름 페스티벌(10월 28일-11월 7일, https://sfdancefilmfest.org)의 공식 선정작으로 상영된 이 다큐멘터리 영화에는 당시의 생중계 공연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제작진, 스태프, 무용수 등 모든 참여자들의 생생한 현장과 뒷이야기가 담겨있다. 예상치 못했던 사회적 상황에 의해 설 곳을 잃은 무용가들이 관객을 만날 수 있는 대안적 방법으로써 영상이라는 새로운 미디어를 선택하고, 영상 제작진들과 함께 댄스필름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위한 춤을 탐색하는 도전기를 담아냄으로써 대구시립무용단의 새로운 여정에 진정성을 더한다.


다큐멘터리인 만큼, 영화는 화려한 편집기술이나 영상미 보다는 출연진들의 이야기와 진정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평생을 무대 위에서 춤추던 무용수들이 관객이 아닌 카메라 앞에서의 낯선 도전을 받아들이고 헤쳐 나가는 과정, 새로운 환경에서 겪는 신체적 부상이나 심리적 변화 등이 그려진다. 무용수들과 안무가 뿐만 아니라 영상 제작 및 편집 감독 등 전 스태프들은 결국 관객을 만나고 싶은 간절함으로 도전에 임하고 있음을 담담히 보여준다.


국내에서는 국립현대무용단 및 서울무용센터 등이 주최한 여러 프로젝트들을 통해 다양한 무용가들이 완성도 높은 작업들을 선보여왔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수준급의 편집 기술을 필두로 제작된 여러 필름들이 있지만, 대구시립무용단의 이 다큐멘터리는 팬데믹이라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새로운 예술적 도전을 비자발적으로 마주하게 된 무용수들과 제작진들의 시행착오와 감정변화 등을 가감없이 진솔하게 담아냈다는 점이 특별하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내 댄스필름들이 프로젝트를 위해 안무가와 무용수들이 영상 제작진들과 단발성으로 “헤쳐 모여” 작업한 것에 반해, 대구시립무용단을 오래 지켜온 무용수들과 안무가가 마주한 사회적 상황에서 “무엇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가”에 대한 답을 쫓아 춤의 본질로 회귀하며 함께 위기를 극복해 나간다. 1981년 국내 최초의 국공립 현대무용단으로 출발하여 40여 년의 역사를 쓰고 있는 대구시립무용단이 낯선 장르에 도전하며 겪는 현실적인 고뇌와 그 속에서 발견하는 춤에 대한 진정성, 그리고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고자 하는 간절한 희망이 담겨있음에 주목할 만한 다큐멘터리이다.


2022년 11월호

작가의 이전글 국립현대무용단 <HIP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