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사당2동 이수역 by 장동원
어느덧 연말 분위기에 세상이 젖어 들고 있다.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들을 덜어내려는지 옛 사람들 만날 약속이 하나하나 잡힌다. 송구영신이라고 말하면서도, ‘구’에 집착하는 아이러니. 그 사이에 연말이 있다.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러 학교 근처에 다녀왔다. 아직 졸업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아, 학교에서 먼 곳으로 떠난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이수역, 여전히 자주 스쳐 지나게 되는 곳이지만 이수역 거리 곳곳을 누빈 것은 오랜만의 일이었다.
나는 추억의 눈으로 이리저리 이수역을 재단하느라 정신없었다. 내가 본 것은 족발집과 삼겹살집의 여전함과 마라탕집의 새로 생겨남과 교문 앞 꽃집의 폐업이었다. 1학년 때 코인 노래방 자리에는 3학년 때 즈음 스크린 야구장이 들어섰는데 그마저도 망한 듯하다며 혼자 횟집 건너편 건물의 역사를 서술하기도 했다. 대입이 끝나고 재수학원에 들어가는 친구와 막걸리를 연거푸 먹었는데, 올해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삼겹살집에서 만났던 형님과 이렇게 글을 쓰게 될 거라 생각했던지, 이 거리에마저 마라탕집이 들어서야 하는지 생각들이 쌓였다. 또, 이제 교문 앞 꽃집에서 산 꽃을 코인 노래방에서 선물하던 어린 날을 추억할 길은 없겠구나 하는 씁쓸함이 얹혔다.
이수역에 사는 친구는 새로 문을 연 맥줏집이 요즘 이수역의 ‘핫플’이라며 자랑했다. 또 이제는 KFC도 생겼다며, 고등학교 시절 사 먹던 그 맛없는 롯데리아를 욕했다. 바뀌는 것들을 보는 시선이 나와 달랐다. 다만, 그의 목소리 끝에 쓴맛이 묻어났다. 그는 다른 척을 할 뿐이었다. 이 거리에 산다면 매일 슬픈 변화를 마주쳐야 할 테니, 아닌 척, 좋은 게 좋은 척, 그렇게 버티고 사는 것이었다.
이수역과 사당동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수역 번화가는 그저 가게가 변할 따름이겠지만, 그 뒤는 지형 자체가 변하고 있다. 내가 졸업할 무렵 공사를 시작한 사당2동 뒷골목의 개발로 벽돌집들이 헐렸다. 이제 터파기 공사가 끝난 지 오래, 건물이 올라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학교 뒤편, 갯마을 재개발도 순식간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도로를 두고 신축 아파트와 기존 아파트 사이의 갈등은 여전하지만, 건물이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재건축조합이며 법무사 사무실이며 학교 근처 건물의 공실을 채웠다. 길을 잃을 것 같았다.
사당2동에서 내가 여전히 잃지 않을 길이 있으리라고 믿고 걸어보았다. 학교와 태평시장 사이 좁다란 골목, 그곳은 내가 자신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방앗간과 과일가게, 어물전을 지나 쭉 직진했다. 그곳마저 내가 알던 길이 아니었다. 응당 어두워야 했는데, 그런 골목길이었는데 젊은 감성의 요리주점들이 새로 생겨났다. 어딘가에서 밀려나 이곳으로 온 그들이겠지만, 그들이 몰아낸 어둠은 어디로 가는가. 그 어둠이 없다면 나는 어디에서 옛날처럼 누군가의 손을 잡을 수 있을까. 골목길 끝에 남아있는 무당집들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한 점 음산함이 내게 위로가 되어버렸다.
감상에 젖어 학교에 올라보았다. 시험이 끝난 토요일 밤, 학생들은 없었고 공사현장의 높은 크레인이 학교 위로 서 있었다. 나는 이곳저곳 더듬다가 운동장 쪽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관악산이 우뚝 서 있고, 사당역의 낮은 건물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사당 자이 아파트며 하는 신축 아파트들이 그 사이에 서서 풍경을 갈랐다. 앞으로 더 많은 건물이 그림을 찢을 것이다. 막을 수 없는 변화이다. 사실 좋은 변화이다. 어두운 거리를 밝게 하고, 누군가에게 돈을 벌어다 주고, 더 좋은 보금자리를 만들어주고. 좋은 일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누리지 못하는 이가 항상 있다. 먼 곳으로 떠나야 하는 사람이 있고 온데간데없이 사라져야 할 추억이 있다. 그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한때 한국최대의 빈민촌이었던 사당동의 존재 자체를 더 생각할 수는 없을까.
이수역에서 슬퍼해 본 사람이 나만 있는 것은 아니었나 보다. 최정례 시인의 ‘이수역 7번 출구’라는 시가 있었다. 그 일부를 옮겨본다.
폭설 다음 날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눈처럼 시간이 뭉텅 사라져버렸다. 망가진 인공위성이 공중을 달려오는 사이 나는 전에 살던 사당동 708번지를 지나고 있었다. 집은 온데간데없고 거기엔 이수역 7번 출구가 서 있다. 그럴 리 없다. 내 기억이 고집스럽게 그걸 인정하지 않고 있다. 기억은 직조하듯 잘 나가다가도 느닷없이 움찔한다. 그 집은 가압류 당했다가 결국 날리지 않았던가. 벌써 수십년 전 얘기를 마음이 짜나가다가 찢는다. 전철 문이 스르르 열려 사람들을 뱉어놓고 다시 닫힌다. 근처를 지나던 블랙홀 속으로 나의 일부가 뭉텅 빨려들고 있다.
-최정례, '이수역 7번 출구', "개천은 용의 홈타운 중"
나의 일부인 이수역은, 그렇게 과거로 뭉텅 빨려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