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서울은?

(11) 용산구 동부이촌동 by 장동원

by 장동원

이촌역 4번 출구로 네가 빠져나오고 있었다. 너는 나의 얼굴을 보고서 한번 생글 웃었다. 그리고 빠르게 남은 계단을 뛰어올랐다. 너의 입술이 말했다.
“야 여기가 이촌동이구나.”

대한민국 제2의 대도시 출신이라던 너였다. 너는 항상 서울을 꿈꿔왔고 서울에서 처음 살게 된 올해, 스무 살 이 한 해가 그렇게도 좋았더랬다. 고3 시절, 지칠 때면 서울시 전도를 펼쳐놓고 어디를 가볼지, 어디 옆에 어디가 있는지 찾아보곤 했더랬다. 그래서였을까. 너와 함께한 첫 술자리에서 내가 일하는 곳이 고덕동이라고 했을 때, 서울 사람들도 못 알아듣던 그 마을을 너는 척하고 알아들었었다. 그리고 너는 내가 사는 동네를 물어보았다.

“이촌동, 저 용산에”
“이촌동, 진짜 이촌동?”

내가 이촌동에 산다고 하자 너는 놀라워했다. 너는 이촌동에 환상을 가졌더랬다. 윤종신의 1월부터 6월까지라는 노래를 듣고서부터였다고 했다. ‘이촌동 그 길, 아직도 지날 때’. 그 노래 가사가 이촌동을 너무나도 선명하게 그렸다고, 서울을 그리게 했던 노래였노라고 말했다. 그런 이촌동 사는 사람을 만났다며 너는 흥분했다. 나에게 질문폭격을 시작했다. 한창 술기운이 오르는데 너에게 모든 답을 제대로 해줄 자신이 없어 나는 말했다.

“함 온나. 이촌동.”

네가 건넨 수만 가지의 질문이 모두 바라던 답은 그것 하나였을지 모르겠다.

혼란스런 한 학기가 끝나고 세모에 들어서야 우리는 이촌동에서 만날 수 있었다. 나는 네가 좋아한다던 노래 가사 속 장소들을 보여주었다. 밤의 공원과 지하상가 그 덮밥집은 남아있었지만, 그 햄버거집은 노래가 나오고 몇 년 되지 않아 이태원으로 옮겨갔다. 나는 이 동네의 내력을 너 앞에 풀어주었고, 너는 같이 들었던 어떤 강의에서보다 경청하는 듯했다.

우리는 동작대교 아래, 작은 포차에 앉아 술잔을 주고받았다. 나는 너의 서울살이가 궁금했다. 정말 바라던 대로 아름다웠는지, 정말 낭만이 가득했는지. 너는 일단 한 잔하고 말하자 했다. 거침없는 너의 건배가 끝나자 짙은 경상도 사투리로 너는 말했다.

“반틈은 맞고, 반틈은 아니다”

생각한 만큼 서울의 거리는 아름다웠다고 했다. 대학생활도 꿈꾼 만큼은 아니지만 더할 나위 없이 재미 있었다고 했다. 다만, 서울은 참 추운 곳이랬다. 날씨도 정말 춥지만 마음도 추운 곳이라 했다. 의지할 가족이 없는 신세로 난 올 한 해가 너무도 추웠더랬다. 분위기가 숙연해지자 너는 웃으며 ‘추울 땐 소주지’하며 또 한 잔 비웠다. 나는 꺼낼 수 있는 말이 한 마디 없었고 그저 같이 소주를 털어넣었다.

영하의 온도가 춥지 않을 지경으로 우린 취했고, 역까지 걸어가며 너를 꿈꾸게 한 노래를 같이 불렀다.

이촌동 그길,
아직도 지날 땐,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해요.
밤의 공원도 햄버거집도
지하상가 그 덮밥집도....


아름다운 기억들이 선명할 만큼 너의 꿈, 너의 서울은 스물하나, 이 해에도 여전히 선명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