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정치와 경제에 관심을 두던 나에게 여의도는 언젠가 일 해 보고 싶은 곳이었다. 실제로 고등학교때 정책 세미나나 토론 대회 등에 참여하기 위해 종합운동장에서 지하철 9호선을 타고 여의도를 찾아가는 주말이 많았다.
여의도가 대한민국 정치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것은 비단 국회나 주요 정당의 당사, 언론사 등의 정치기관들이 자리잡고 있어서는 아닐 것이다. 여의대로를 따라 즐비한 금융사들은 복잡하게 얽힌 정재계의 단면을 보여주고, 국회대로를 따라 어지럽게 자리한 시위대와 현수막들은 군중심리와 이기주의에 의해 방향없이 흔들리는 대한민국 정치의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주의는 사실 언제나 존재해왔다. 단순한 다수결제로 선출된 대표가 과연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을지, 또는 국민의 의견이 과연 합리적이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들이다. 또한,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이 국민이 원하는 정책을 펼쳐야 할지, 아니면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을 펼쳐야 할지에 대한 논쟁 역시 끝나지 않았다.
물론 나 역시 민주주의가 결함이 많은 정치제도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정치학계에서 대두되는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회의에는 동조할 수 없다. 물론 의회 중심의 대의민주주의가 급진적이고 과감한 개혁을 막는 정치를 두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급진적인 개혁에 대한 수용성은 정치체제를 판단하는 절대적 가치가 되지 않음이 분명할 뿐 아니라, 의회민주주의의 이러한 장치들은 권위주의적이고 독단적인 행정부의 의사결정을 예방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한, 민주주의가 무조건 비탄력적인 정치체제는 아니다. 융통성 없고 보수적이기만 한 것 같은 여의도 민주주의가 역사적으로 수많은 혁신과 개혁들을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수십년 전, 우리 윗 세대 어른들의 희생과 열정으로 자리잡은 여의도 민주주의는 어쩌면 조금 경직되고, 낡고, 뻣뻣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민주주의가 이뤄낸 것을 한번 보라. 모두를 위한 의료시스템과 보편적인 투표권, 이 모두가 진보 학계에 의해 답답하다고 매도당하는 대의민주주의가 이뤄낸 쾌거다.
이처럼 대의민주주의는 가장 빠른 진보를 위한 체제는 아닐지 모르지만, 점진적이면서 꾸준하고 안정적인 정치체제이다.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해주는 정치체제이기도 하다. 단순한 절차가 아닌, 휴머니즘에 가반한 하나의 이념이자 정치 문화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 민주주의를 믿는다. 신년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정치가 투표를 통해 나아질 수 있다” 라고 믿는 사람들이 60%를 상회했다. 갈 곳 잃은 정계의 모습이 답답하더라도, 정치 체제로서의 민주주의를 국민들은 여전히 신뢰하고 있다. 여의도를 찾을 때 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여의도를 찾은 국민들과, 자신이 대변하는 사람들을 위해 궂은 일을 다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 역시도 “그래도 민주주의”라는 확신을 얻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