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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주 Jun 15. 2022

노래는 편지가 되어

BGM. 보약 같은 친구 (진시몬) 

어느 해 추석, 가족들과 다 같이 노래방에 다녀온 뒤였다. 흥이 채 가시지 않아 집에 돌아와서도 내내 트로트를 흥얼거리는 내게 외할머니는 "그거를 다 외우나?" 물었다. "응, 알지" 대답하자 할머니는 그거 가사를 좀 써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할머니의 신청곡은 진시몬의 <보약 같은 친구>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자네는 좋은 친구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우리 두 사람 

전생에 인연일 거야 



계속해서 가사를 흥얼거려가며 1절을 써 내려갔다. 팔순이 가까워진 우리 할머니, 이 정도면 잘 보일까? 1절을 다 쓰고 보니 할머니가 읽기엔 글씨가 작을 것 같았다. 노래방에서 노느라 맥주도 꽤 마신 뒤라 줄도 삐뚤었다. "할머니, 이거 보이나?" 물었더니 "여는 보이는데 여는 안 보이고..." 하셔서 다시 A4 종이를 꺼내와 자세를 고쳐 앉고 가사를 썼다. 사인펜으로 크게 크게, 최대한 또박또박. 몰입한 내게 할머니가 말을 건넸다. 


"이 노래만 들으면 갸가 생각이 나. 내한테 참 잘했어. 지금 병원에 있는데, 오면 줄라고."  


동네에서 몇 안 되는 동기. 할머니가 자식 일로 속을 썩을 때, 가장 가까이에서 위로해 주었다는 친구. 내향적인 할머니의 성격과 모나지 않게 딱 맞는 친구. 그 친구가 오면 주고 싶다고, 할머니는 가사가 적힌 종이를 지긋이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그건 할머니에게는 일종의 편지 같은 것이었다. 못 본 시간만큼 보고 싶다고, 얼른 건강해져서 가까이에서 보자고, 너는 내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라고. 가사는 달랐지만 같은 고백이었다. 할머니 입에서 자식도 손주도 아닌 '친구'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이 조금은 어색했지만, 할머니의 그런 표정 또한 처음 보는 것이었기에 나는 무언가 아주 대단한 일을 해낸 것처럼 느껴졌다.   


명절을 보내고, 어르신들이 등산용으로 많이 가지고 다니는 휴대용 오디오를 주문했다. 트로트가 300곡 들어있는 SD카드가 포함된 오디오였다. 할머니 일상에 조금이라도 활력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어떤 노래들이 들어있는지,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파일도 만들었다. 1번부터 300번까지 곡목과 가수 이름을 쓰고, 프린트해서 파일에 넣었다. 엄마와 함께 외할머니댁을 찾은 날, 오디오 켜는 법, 끄는 법, 충전하는 법까지 알려드리고 오디오 위에 붙어있는 번호를 누르면 그 노래를 들을 수 있다고 할머니에게 설명해주었다. 거기엔 <보약 같은 친구>도 있었다. 할머니는 "고맙다"라고 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전에 써준 그거, 그거를 못 줬다. 병원 간다드만, 그질로 갔어. 집에도 한 번 못 오고. 한 번만 더 보고 갈 거 아이가. 야속크로." 


'보약 같은 친구'라던, 친구가 떠났다는 말이었다. 비슷한 나이에 시집 와 한 동네에서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서로를 보아온 친구. 그런 친구가 떠났을 때의 심정이 감히 상상이 가지 않아서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백내장 때문에 자주 눈물을 흘리던 할머니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 시린 듯 눈을 깜빡였다.     


오디오의 수명은 오래가지 않았다. 할머니도 이내 집을 떠났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언제나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날이 좋을 때는 갯벌이나 밭에 있었고, 그도 아닐 때는 마당을 좌로 우로 누비며 밭에서 거둬온 작물들을 가리고 다듬느라 바쁜 사람이었다. 가만히 앉아있는 법이 별로 없었고, 내내 손을 움직이며 거두고 부리고 만들고 먹이던 사람이었다. 그랬던 할머니가 어느 날부터 우두커니, 가만히 누워만 있어야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이유 없이 시작된 두통 때문이었는데, 아주 나중에서야 할머니 머릿속에 종양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오랫동안 두통이 반복되고, 두통은 어지럼증으로, 어지럼증은 밥 한 술 뜨기 힘든 상태로까지 할머니를 몰아갔다. 입원과 퇴원이 반복되었다. 중환자실은 하루 두 번만 면회를 할 수 있었고, 외손녀인 나는 외손녀라는 핑계로 할머니를 만날 수 있는 날을 스스로 줄여 나갔다. 




자식보다 자네가 좋고 돈보다 자네가 좋아 

자네와 난 보약 같은 친구야 

아아아 사는 날까지 

같이 가세 보약 같은 친구야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할머니가 보고 싶어질 때면 시골집에서 있었던 여러 장면과 함께 <보약 같은 친구> 가사를 써주던 밤이 생각난다. 사인펜으로 최대한 크게 써 내려갔던 가사, 그 한 글자 한 글자를 도장 찍듯 천천히 꾹꾹 눌러가며 보던 할머니의 눈. 트로트가 아니라 마치 시를 읽는 것 같던 눈. 그 눈에 서려있던 순수한 노인의 감정들이 내게도 물 밀듯 밀려 들어오던 밤. 그런 기억을 떠올릴 때면 '자식보다 좋고 돈보다 좋다'는 흔해 빠진 가사가 더 이상 흔해 빠지지 않고 세상 더없이 서글픈 시구가 되어 마음을 때린다. 노인이 되었다고 그리움이 없는가, 노인이 되면 슬픔이 멀어지는가. 친구를 그리워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이 노래와 함께 내 마음에 지금도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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