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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미 Sep 03. 2021

필터

 핸드드립으로 딸아이가 커피를 내린다. 온 집안이 똑똑 떨어지는 커피 향으로 꽉 채워진다.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표정으로 바지런하게 움직이는 손동작이 꽤 능숙한 바리스타 같다. 


에스프레소는 포터 필터에 분쇄한 원두를 담아 그룹 헤드에 장착시키면 30초 안에 추출되는데 핸드드립은 열 배의 시간이 소요된다. 핸드드립은 드립 포트로 분쇄된 원두에 일정하고 세밀하게 물을 부어 성분이 잘 용해되어 균형 있는 맛을 낸다. 조금 느리지만 혀끝에 감기는 부드러운 맛을 보려면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 역할을 종이필터가 하고 있었던 것이다. 불필요한 것은 흡수하고 필요한 것만 내려 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순간 내가 겹친다. 

 

 ‘내가 하는 말들이 저 종이필터처럼 촘촘해서 꼭 필요한 말만 빠져나가면 실수를 덜할 텐데.......’ 

  늘 그랬다. 내 말은 포터 필터처럼 채가 커서 빠르게 통과한다. 상대방이 나와 다르다는 견해를 수용하지 않은 까닭이다. 순간 평생을 급한 성격 때문에 필터에 갇힌 채로 살아야 할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왔다.  

  

어제는 친구와 유쾌한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햇빛 한 줌 들지 않는 요즈음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 내릴 기회였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영양가 있는 수다는 우울과 슬픔을 말려버릴 최고의 도구가 된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기대에 부풀어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가는 길목에 담벼락 사이로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능소화와 부드러운 바람이 무디어진 감성을 자극한다. 비가 온 후라 계곡 물소리에 맞춰 커피 한 잔 하면 더 즐거운 시간이 될 것 같았다. 그 길은 내가 자주 다니던 곳이라 익숙한 곳이지만 그녀들은 이곳이 처음이라고 했다.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세계를 만난 것처럼 신기한 눈빛이었다. 장소를 잘 택한 것 같아 내심 안심이 되었다. 두 사람의 미소는 따뜻하면서도 넓었다.   

 

한 참 대화가 무르익어 갈 무렵이었다. 한 친구가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스치듯 지나갔기에 분명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 심기는 불편했다. 내 가슴에 꾹꾹 박혀 있는 상처되는 말들에도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는데 마음 언저리에 계속 화가 쌓여갔다. 

 

 사고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난다고 했던가. 벌써 말할 타이밍은 놓친 채였다. 그런데 이게 무슨 영문인가. 내 입에서는 엉뚱한 말이 걸러지지 않은 채 흘러나왔다. 며칠 전 강연 듣고 와서 혼자 행복에 취해 단체 톡에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고 있었던 것을 나무라고 있는 게 아닌가. 문화생활을 즐기고 싶어도 시간과 여유가 없어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을 텐데.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앞섰던 것이다. 

 

나도 강연이나 공연을 누구보다도 좋아한다. 살다 보니 여건상 갈 수 없는 상황이 빈번하다. 내게 어려움이 닥쳤을 때야 그 이면에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먹고 사느라 여유 없는 친구들에게 흥에 겨워 오롯이 나만 바라봤던 실수담을 사례로 타인의 마음도 헤아리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까슬하게 날을 세워 재생 테이프 돌리듯 반복할 필요는 없지 않았는가.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 아니었는데........ 상대방 마음 상하지 않게 에둘러 표현하지 못해 결국 초점을 잃어버렸다. 

  

그녀는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은 친구다. 단체 톡에 사람들을 누구보다 잘 챙기고 잘 이끌어 간다. 공연이나 강연을 갔다 오면 그 열기를 단체 톡에 쏟아내며 후끈한 에너지를 나누어 주는 것이 삶의 행복이었다. 그 얼마나 낭만적이고 멋진 삶인가. 나 또한 그렇게 살고 싶었기에 우리 만남의 끈이 된 것이 아니었던가.    

  

오해의 매듭을 풀지도 못한 채 출근을 해야 해서 나는 회사로 무거운 발걸음을 놓았다. 가는 길에 ‘에너지 얻으려고 만났다는’ 그녀의 말이 계속 회오리바람을 일으켰다. 마음이 불편해서 일이 손에 잡힐 것 같지 않았다. 깊이 있는 언어를 새기지도 못한 채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마음이 편해졌는지 가벼운 농담도 하면서 기분이 꽤 괜찮아 보였다. 문득 지금이 말할 수 있는 적기란 생각이 들었다. 서로 오해한 것은 비우고 부족한 부분은 채우고 소통의 장을 열면 될 것 같았다.  얼마나 대화 속에 젖어 있었을까. 서로 수긍하면서 화해로 돌입했나 싶었는데 돌연사 그녀의 거친 숨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조금 전의 부드러움은 사라지고 들숨날숨을 교차해가며 무거운 감정을 쏟아내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보이듯 역력했다. 여태 쏟아냈던 내 언어는 제 몫을 하지 못하고 급속도로 나락으로 떨어졌다.

  

돌이켜보면 회사 업무 중이라 감정을 고르지 못하고 속사포처럼 빨리 말을 끝내려고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겉은 거울 보듯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찾으려고 했던 것이 아이러니가 되어버렸다. 가까울수록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탓도 있겠다.

  

말이라는 것이 때로는 칼보다 오래 가슴에 상처를 남긴다는 것을 새긴 날이었다. 여러 날이 걸려도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을 때 다가갔으면 좋았을 텐데. 상대의 말을 경청하기보다는 하고 싶었던 말만 일방적으로 건네준 꼴이 된 셈이다. 어쩌면 대화가 아니라 서로 엇갈리는 독백처럼 서로에게 진심이 묻어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듯 무슨 말을 할지 무서워서 다시는 만나지 못하겠다고 했다. 어쩌면 나보다 더 가시 돋쳤던 말을 참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불같은 내행동과 말로 인해 그녀는 마음에 문을 굳게 닫아 버렸다. 좋은 관계란 대화로 만들어지는데 속내를 알 수 없으니 갑갑하기만 하다. 사람 사이에 소통이 되지 않는 것만큼 힘든 일이 또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의 만남은 겉으로만 친절을 베풀었을 뿐 서로를 포옹할 수 있는 아량과 이해심이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상처가 많아서 약함을 내 보일 수 있는 진짜 용기가 없었는지 모르겠다. 

  

갓 내린 커피 식는다고 아우성인 딸의 말에는 아랑곳없이 커피 내린 필터를 자세히 살펴본다. 필터는 커피분말을 통째로 내 보내는 게 아니고 진액만 걸러서 맛을 결정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말도 마찬가지다. 말은 특유의 온도가 있어서 듣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서 따스하게 들릴 수도 얼음처럼 차갑게 들릴 수도 있다. 필터처럼 거르고 걸러서 꼭 필요한 말만 해야 할 이유가 여기게 있다. 

 

 나는 성격은 급해도 어디에서나 잘 어울리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깊이는 없고 개성만 강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모든 것을 끌어당겨 제 품속에 담을 수 있는 재량이 없는 것을 보면 말이다. 

  

미래를 알고 싶으면 과거에 어떻게 살았는지 알면 된다는 말이 있다. 자꾸만 내 삶이 팍팍해지는 것은 내가 뱉어낸 험한 말이 나에게로 스며든 것은 아닐까 싶다. 때론 말보다는 침묵이 더 낫다는 것을 아로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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