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음식

<네 가족 둘러앉은 옥상 밥상과 엄마의 된장찌개>

by 틈새의 희망

1995년 찌는 듯 한 무더운 여름, 선풍기를 강풍에 놓아도 더위를 쫓을 수 없었다.

덕분에 우리 가족만의 무더위 피서법이 생겼다. 아빠를 따라 돗자리, 모기향, 시원한 수박 한 통을 들고 온 가족이 옥상으로 올라갔다. 우리집 옥상은 반여동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이 훤히 내다보였다. 덕분에 밤에는 반짝이는 도시의 불빛과 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마주할 수 있는 풍경을 자랑했다.


아빠의 월급날, 아빠는 삼겹살과 시원한 막걸리를 사왔다. 그 날은 옥상에서 가족들끼리 밥 한끼 하는 날이었다. “대충 삼겹살이나 옥상 가서 구워먹자.” 아빠는 대충이라고 했지만, 엄마는 분주했다. 사실 옥상까지 반찬을 옮기고, 먹고 치우는 일 까지 생각하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엄마는 삼겹살을 그릇에 옮겨 담고, 삼겹살 구이에 곁들일 양파 무침을 만들기 시작했다. 양파를 얇게 썰어 식초, 참기름, 설탕을 조금 넣고 버무리면 엄마표 새콤달콤 양파무침이 완성되었다. 치익- 삼겹살이 익는 소리와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옥상이 어둑어둑해 질 때쯤이 되면 빨래 건조대를 거치대 삼아 조명 하나 밝혀놓고 네 식구 모여 앉아 밥을 먹었다. 어둑어둑한 밤하늘과 주황 조명 가득한 옥상의 야외 밥상은 특별한 반찬 없이도 꿀맛이었다. 잘 익은 김장 김치를 삼겹살 옆에 나란히 올려두고 황금색을 띌 때 까지 기다렸다 서로의 밥 위에 올려주기 바빴다.


삼겹살이 바닥을 드러낼 때 쯤 엄마는 다시 집으로 내려가 낡은 양푼 냄비에 된장찌개를 한 솥 가득 끓여왔다. 아빠는 고기를 먹은 뒤 꼭 된장찌개와 밥을 찾았다. 아빠의 유별난 된장찌개와 밥 사랑 때문에 엄마의 노고는 배가 되었다. 오도독 씹히는 미더덕과 잘 익은 감자, 두부를 푹 떠서 밥에 슥슥 비벼 잘 익은 김치 한 점 올려 입에 넣으면 세상에 이 보다 맛있는 것은 없었다. 엄마의 양파무침과, 된장찌개, 노릇노릇 잘 익은 삼겹살, 잘 익은 김치까지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엄마의 된장찌개는 옥상 밥상에서 뿐 만 아니라, 우리 집 아침 단골메뉴이기도 했다. 엄마는 제 손으로 식구들의 밥을 챙기는 것이 의무라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었다. 새벽부터 나가는 아빠부터 두 딸의 아침 밥상까지 오롯이 엄마의 몫이었다. 어제 먹다 남은 밑반찬 몇 가지를 꺼내고 밥통에서 따뜻한 밥을 떠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래도 국이 있어야 밥이 넘어가지” 엄마는 아침엔 된장 국물이 최고라며 삼삼한 된장찌개를 자주 식탁에 올렸다. 심지어는 딸의 도시락 반찬 맨 아래 칸에도 된장찌개를 담아주는 엄마였다. 된장 국물 흐른다고 그렇게 싫다고 했지만 그럴 때 마다 도시락을 감싸는 랩이 두꺼워졌을 뿐 엄마의 된장국은 빠지지 않았다. 투덜거리긴 했어도 된장 국물 하나면 밥 한 공기 뚝딱하는 나를 엄마가 제일 잘 알았으리라.


집에 에어컨이 설치 된 후, 무더위를 식히며 밥을 먹자고 시작했던 우리 집의 특별한 옥상 밥상은 사라졌다.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돈 주고 사먹는 편이 훨씬 편하고 쉬워진 덕분이다. 옥상 밥상의 둘러 앉은 네 식구는 각자의 삶을 위해 흩어졌다. 부모님은 거제도로 나는 서울로 동생은 부산 집을 지키고 있다. 부산 집을 떠나 서울 생활을 하며 가장 그리운 음식은 엄마의 된장찌개다. 엄마의 레시피를 몇 번이나 들어도 직접 담근 엄마의 된장을 받아서 찌개를 끓여도 그때의 맛은 나질 않는다. 내 음식 실력이 부족해서 인지 엄마만의 비법이 있는 것인지 사실 잘 모르겠다. 서울 살이 하는 고된 딸이 안쓰러운 엄마는 내가 부산에 가겠다고 정한 날이 다가오면 매번 전화 걸어 똑같은 질문을 한다. “딸 오는데 뭐 먹고 싶노?” 나는 그럴 때 마다 엄마의 된장찌개를 찾는다. 어느 곳에서도 맛 볼 수 없는 엄마의 된장찌개는 내겐 늘 최고다.


아침에 혼자 일어나 출근하기도 바쁜 요즘 식빵 한쪽이라도 잼에 발라먹고 나가면 다행이다. 회사에서 점심을 때우고 저녁도 인근 식당에서 해결하면 하루 세끼가 금방 간다. 오늘처럼 무더운 여름, 일에 치이고 사람에 지쳐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을 열면 엄마의 된장찌개 냄새가 집안 가득했으면 하고 바란다.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부터 구수한 된장 냄새가 새어 나오던 그때가 그립다. 어쩌면 나를 맞이해줄 사람이 그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가족에게 흔하게 함께 했던 하루 세끼가 요즘은 시간 맞춰 특별하게 먹는 밥상이 되었다. 시의 한 구절처럼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가족과 둘러 앉아 먹는 그 밥 한 끼와 소소한 저녁 일상의 소중함에 더욱 감사했으리라 뒤늦은 그리움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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