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함께 주문을 건다.

무엇이든, 더 나아지는 마법.

by 으네다

당신과 제주를 여행하던 몇 해 전의 일이다. 저녁을 먹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었기에 우린 바다가 보이는 카페로 향했다. 하늘은 노을이 물들 준비를 하듯 어슴푸레 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카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잠시 바다를 구경하다 카페가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역시 식사가 아닌 커피를 마시기엔 애매한 시간이라 한산했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주 작은 고양이 급식소가 보였고, 카페 한 켠에는 제주도를 주제로 한 아기자기한 소품 판매대가 있었다. 우리는 바다가 한눈에 펼쳐지는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무엇을 마실까 고민하지만, 우린 좀 한결같은 구석이 있다. 당신은 따듯한 아메리카노 나는 아이스라떼가 고정 메뉴이다. 여러 카페들의 시그니처 메뉴를 먹더라도, 결국 회귀하듯 그 메뉴로 돌아간다. 우린 마실 걸 고른 후 메뉴판에서 조금 인상적인 문구를 발견한다. '우주 최강 당근 케이크' 얼마나 맛있길래 우주 최강일까? 이런 고민 끝에 메뉴를 주문하러 간다. 곧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케이크까지 먹을까,라고 조금은 망설였던 것 같다. 그러다 문득 계산대 옆에 쇼케이스가 눈에 들어왔다. 눈에 띄던 그 케이크가 단 한 조각 남아있었다. 우리는 망설임 없이 당근 케이크도 함께 주문했다. 다시 오게 될지 모르는 낯선 카페에 남겨진 단 한 조각의 우주 최강을 자랑하는 당근 케이크였기에. 시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우리가 주문한 메뉴가 나왔다. 커피를 마시기도 전에 기대에 가득 찬 마음으로 포크를 들어 한 입 맛보았다. 뭐랄까, 기대한 만큼의 맛은 아니었다. 맛이 없다는 게 아니라. 그냥 평범한 맛이었다. 그런데 포크로 한 입, 한 입 먹을 때마다 맛이 변했다. 우리 다음에 들어온 손님은 '솔드아웃'이라 주문하지 못한 그 케이크를 쟁취했다는 뿌듯함에 포슬 한 시트가 입 안을 부드럽게 했다. 시원하게 트인 창에서 보이는 예쁜 하늘과 바다의 향이 베어 입에 함께 퍼졌다. 그러다 보니 '맛있다'라는 말이 나왔다.


" 당근 케이크 생각보다 맛있는데요? "

" 그러게, 많이 달지 않고 맛있어요. "


꾸덕한 크림치즈가 올라간 당근 케이크를 한 입 먹고, 고소하고 시원한 아이스라떼를 한 모금 마셨다. 이름과 상관없이 이 케이크는 우리에게 이미 특별해졌다. 당신과 내가 함께 '맛있다'라는 주문을 걸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일상에서 알게 모르게 그런 주문을 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주문은 제법 잘 걸린다.


그 마법은 어느 해 추운 겨울에도 걸렸었다. 금요일 저녁 데이트 겸 재개봉한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를 봤었다. 영화는 좋았는데,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이라 버스는 끊겼고. 택시도 잡히지 않아 결국 우린 집까지 걸어갔다. 두툼한 패딩 사이를 파고드는 추위에 덜덜 떨면서도 '우와 진짜, 이런 경험 언제 해보겠어요?'라고 말하며 내 눈에는 눈물이 줄줄 흘렀고 (난 추우면 그렇게 운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집에 갔다. 진짜 추웠는데, 견딜만했다. 당신의 잠바 주머니 속에 넣은 손의 온기가 오래도록 남아있었다 . 그 때 했던 말처럼 그 날은 인상깊게 기억 속에 남아 우리의 추억이 되었다. 더불어 그 한파를 이겨내 집까지 걸어갈 힘도 주었다. (물론, 걷지 않으면 안되었지만)


말도 안 되는 우리만의 유행어를 만들며 웃는 날은 힘들었던 회사에서의 일이 견딜만해지기도 했다. 남들은 그저 그런 동네 분식집은 우리만의 아지트가 되기도 하고. 여행지마다 잊지 않고 사모으던 스타벅스 시티 머그컵은 보물처럼 소중해진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이 조금 더 나아지는 건 '맛있다' '좋아' '행복해' '오 좋은 선택인데?'라는 주문이 걸리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매일이 그렇게 특별하진 않다. 그냥 그런 날도 있다. 그럼에도 우린 알게 모르게 일상 속에서 주문을 건다. 그리고 주문을 거는 이유는,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자주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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