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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KAVIA Feb 27. 2024

슬라맛 빠기, 굿모닝 짱구

비치러버들의 아지트


멋진 배럴을 통과하는 서퍼들의 역동적인 모습, 서퍼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보았을 장면. 거기에 아름다운 석양을 감상하며 시원한 빈탕 맥주를 무제한 마실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분명 그곳은 천국일지 모르겠다. 검은 모래가 모래사장을 만들고 화이트 톤의 라임스톤으로 치장된 비치프런트 클럽들과 레스토랑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대나무로 만든 펜졸(깃발)을 길게 달고 서퍼 아니 비치러버들을 유혹한다. 짱구라는 귀여운 이름과는 달리 파도는 크고 거칠다. 짱구의 매력은 해가 뜨기 전 새벽에 만날 수 있으니, 짱구에 가시걸랑 새벽 녁 산책을 즐겨볼 것을 권하고 싶다.  


About Canggu by  SUKAVIA


Canggu Beach ⓒ Photo_SUKAVIA



'히든플레이스의 변화'


한때는 발리 최고의 히든 플레이스로 꽁꽁 숨겨져 있었지만 지금의 짱구는 하루 종일 서핑 보드를 들고 바다와 카페를 들락거리는 서퍼들과 이런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는 사진작가들, 서퍼들의 친구, 연인, 가족들이 모여드는 거대한 서퍼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하루가 멀다고 새롭게 문을 여는 비치 클럽과 카페, 숙소들까지… 지금껏 알고 있던 발리와는 조금 다른 서퍼들의 플레이그라운드, 짱구(Canggu)다. 


짱구로 향하는 길은 매우 특별하다. 그랩이나 고젝, 택시, 가이드 차량 어떤 방법을 이용하던 상관없지만 짱구만의 매력을 만나보려면 오토바이로 가야 한다. 차량이 오가는 길과 오토바이로 갈 수 있는 길이 다르고 현지인들만 이용하는 지름길도 있으니 말이다. 발리의 소박한 로컬 풍경을 직접 볼 수도 있고 힌두 양식으로 지어진 사원이며 건축물들도 만나볼 수 있다. 


짱구는 발리의 서쪽 해안에 인접한 지역으로 쿠타와 스미냑에서 약 10Km가량 떨어진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다. 복잡하고 번잡스러운 중심부와는 달리, 더욱 여유롭고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들과 서부 중심의 문화가 어우러져 또 다른 매력을 감추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짱구 지역은 거대한 블록 형태로 바투 볼롱(Batu Bolong)브라와(Berawa)에코 비치(Eco Beach)세세(Seseh)페레레난(Pererenan) 등의 작은 마을 단위로 다시 나뉜다. 



Local Surfers. ⓒ Photo_SUKAVIA



그중 짱구는 오래전부터 발리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곳이다. 처음 짱구를 방문했던 1990년 대에는 지금의 모습은 아니었다. 매해 아주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더니 코로나19 이후에는 제대로 개발 열풍이 분 모양이다. 빈티지한 풍경의 캐주얼한 레스토랑 그중 짱구의 대표적 명소인 에코 비치는 파도가 크고 거칠어 서퍼들의 인기 서핑 스폿으로 손꼽힌다. 이를 증명하듯, 매년 크고 작은 서핑 대회가 열리는데 대회 기간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서퍼들을 가까이서 만날 수도 있다. 


짱구 지역 주변으로는 장기 서퍼들을 위한 저가 방갈로들과 인기 와룽(Warung_현지 식당)들이 자리하고 있어 유난히도 서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짱구는 발리에 거주하는 외국인 거주자(Expat)가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들을 위한 멤버십 짱구 클럽과 수입 식료품을 판매하는 짱구 델리, 소소한 부티크 상점들과 카페들도 여전히 익스팟들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Canggu Beach ⓒ Photo_SUKAVIA


서퍼들이 좋아하는 발리의 서핑 스폿인 짱구, 그래서 항상 서퍼들로 붐빈다. 사실, 나에게 짱구는 ‘넘어야 할 산’과 같은 존재였다. 발리에서의 서핑 라이프를 하루하루 일기처럼 끄적이던 그때, 유일한 소통 창구이자 자랑거리는 다름 아닌 싸이월드였다. 지금처럼 블로그가 활성화되기 전,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이 등장하기 전에는 그랬다. 사진의 크기는 640, 480에 최적화되던 시절의 그때의 이야기다. 당시 나의 목표는 짱구와 울루와뚜 같은 스폿에서도 능숙하게 파도를 탈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것이었다. 서핑에 조금씩 자신감이 붙을 무렵, 짱구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강하고 빠른 파도는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 로컬 서퍼들과 호주, 일본 서퍼들 사이로 라인업을 해 파도를 기다렸다. 짱구는 서퍼들이 사이에서도 텃세가 심한 편이다. 실력이 있는 서퍼들이 몇 명만 있어도 나 같은 초보 서퍼들은 파도를 잡기는커녕 욕만 먹고 쫓겨나기 일쑤다.



Sufers in Canggu Beach. ⓒ Photo_SUKAVIA

 


서퍼들은 서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무지 좋아한다. ‘이 구역은 네가 올 곳이 아니다. 꾸따로 돌아가려무나’라고 말하는 듯한 기분을 자주 느꼈다. 그렇게 좌절하고 구박받으면서 짱구에서 쫓겨나기를 수 십 번, 그럴 때마다 파도가 조금 작고 약한 브라와 비치(Berawa Beach)에서 마음을 달랬다. 


한 번은 짱구에서 파도를 잡기 위해 패들링을 하던 도중 버텀 턴을 하던 중 호주 서퍼와 부딪칠 뻔한 적이 있었다. 누가 봐도 피할 의사가 없는 행동으로, 나는 본능적으로 덕 다이브를 하면서 물속으로 피했고 녀석의 보드 핀이 내 머리 위로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것을 목격했다. 


물 위로 올라와 육두문자를 날렸고 함께 서핑을 하던 로컬 친구들까지 합세해 녀석을 바다에서 쫓아냈다. 물론 비매너적인 행동으로 바다에서 쫓겨났지만 녀석은 짱구는 떠나는 순간까지 화를 감추지 못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실력도 없는 것들이’... 


Surf in Canggu Beach. ⓒ Photo_SUKAVIA



파도가 큰 날 짱구의 모습은 평온함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그 날이후 한동안 짱구에서 서핑을 하지 않았다. ‘실력도 없는 것이…’ 라며 퍼붓던 녀석의 말이 귓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서핑이 아니라도 살다 보면 비슷한 경험을 하곤 한다. 특히 내가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제아무리 멘털이 좋다고 하더라도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그런 말을 해야 하는 상황도 이해한다. 아무튼 그날의 아찔했던 경험은 나의 서핑 라이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Surf in Canggu Beach. ⓒ Photo_SUKAVIA


그로부터 얼마 후 짱구 서퍼 한 명이 크게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러시아였는지, 중국이었는지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보드 핀에 베어 큰 상처를 입고 병원으로 갔다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 있던 서퍼들이 많았지만 누가 상처를 입혔는지 알아낼 수 없었고 부주의에 의한 부상 정도로 마무리되었다고 했다.


‘경고 한번 제대로 했구나!’ 그해에 나의 서핑 실력은 짱구에 갈 정도가 되지 못했다. 말처럼 쉽게 되지 않는 일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짱구 인근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며 서핑을 했다. 짱구를 정복하리라던 당찬 포부도 어느 순간 그냥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하게 변해갔다.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Chillout Canggu Beach. ⓒ Photo_SUKAVIA



'그래, 꼭 서핑을 해야만 짱구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야!'


하루중일 해변 앞 벤치에 앉아서 서핑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여행자들이 주로 머무는 꾸따나 스미냑에서 짱구까지는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면 된다. 서핑 스폿이라고 해도 모든 서퍼들이 서핑을 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에코 비치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파도가 크고 거칠다. 중급 이상의 실력을 지닌 서퍼들, 발리의 서핑에 어느 정도 적응한 서퍼들에게 추천한다. 물론 서핑을 하지 않더라도 짱구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비치프런트 클럽에서 식사를 할 수 도 있고 바닷바람을 쐬며 잠시 여유를 만끽해도 좋다. 복잡한 꾸따 비치에서 벗어나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여유와 낭만을 만끽하고 싶다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랑하는 짱구 해변으로 지금 바로 발길을 돌려보자.






출국을 위해 부랴부랴 코로나 백신접종을 했다. 불과 9개월 전까지만 해도 발리는 2차 접종까지 완료해야 방문할 수 있는 국가로 분류되어 있었다. 코로나 영향으로 항공편은 취소와 운항을 반복했고 함께 터진 대한항공 마일리지 개편안까지 겹쳐 발리행은 매우 아슬아슬하게 진행되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는 백신접종 제한도 사라지고 마일리지 개편안도 원래대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나만 바보가 된 것처럼. 마치 꿈을 꾼 것만 같았다.


Bali Denpasar International Airport. ⓒ Photo_SUKAVIA



한 달이 조금 안 되는 기간 동안 발리에 머물렀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 발리의 모습은 정말 달랐는데 가장 큰 변화는 꾸따의 몰락이었다. 단어가 조금 과격하지만 어울리는 단어를 찾지 못하겠다. 발리 내 다른 지역과는 달리 관광객 의존도가 높은 꾸따는 호텔, 레스토랑, 상점들이 폐업을 한 채 흉물스럽게 변해있었다. 반면 의존도가 비교적 낮은 우붓은 사람이 몰리며 인프라가 확장 중이었다. 



Bali Beer Cycle ⓒ Photo_SUKAVIA



그 많던 꾸따의 업체들은 과연 어디로 간 것인가라는 의문이 여행 내내 따라다녔는데 일정의 마무리 단계에서 궁금증이 풀렸다. 모두 짱구로 이동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규모가 작은 순으로 순차적으로 이동 중이고 현재도 진행형이다. 여행의 일정 중 짱구는 한국으로 귀국 전 마지막 일주일에 포함을 시켰다. 꾸따를 시작으로 울우와뚜와 짐바란, 우붓을 거쳐 마지막 일정으로 스미냑과 짱구를 잡았다. 그렇게 몇 년 만에 다시 방문한 짱구. 여전히 친구들이 있다. 꾸따 베네사리 골목 서핑 수리점에서 일하던 로컬 친구도 짱구에 자기 숍을 작지만 하나 열었다. 낡고 허름하던 숙소들은 엔젤들의  오너들의 투자를 받았는지 세련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소식통을 통해 뒷이야기를 들어보니, 셀럽들의 제주살이를 열풍처럼, 코로나 기간 인도네시아 본토의 유명 셀럽들이 발리로 이사도 하고 머물며 부동산들을 많이 사들였단다. 그래서인지 전보다 많은 인도네시아 로컬 브랜드들이 눈에 띄었다. 자카르타 인기 체인점, 매장들이 속속 발리에 문을 열었다. 



Morning in Berawa Beach. ⓒ Photo_SUKAVIA



짱구의 숙소로 체크인을 하고 난 뒤로의 기억은 사실상 별로 없다. 머무는 내내 리조트와 브라와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새벽 5시에 기상해서 브라와 해변 산책을 나선다. 내가 머물고 있는 스와르가 리조트(구 헤이븐) 리조트에서 걸어서 1분이면, 브라와 해변에 도달한다. 진정한 비치프런트. 이미 해변에는 새벽 파도를 타러 나온 부지런한 서퍼들이 가득하다. 오전 6시가 되면 요가를 클래스 회원들도 해변으로 모여든다.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나온 사람들도 하나둘 나타나면 해변은 조금씩 분주해진다. 오전 7시 무렵이 되면 비치클럽의 직원들도 하루 일을 시작한다. 



Surf in Canggu. ⓒ Photo_SUKAVIA



오며 가며 'pagi~'를 외치며 아침인사를 건네다 보면 금세 친분을 생겨난다. 브라와 해변 근처의 핀스비치클럽, 아침마다 로컬 친구들에게 인사를 건넨 덕분인지 비치클럽에 가게 되면, 먼저 아는 척도 해주고 무척 반갑게 대해준다. 매일 아침 해변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시 만나게 된다. 식당에서, 스파에서, 상점에서...



Bintang Radder lemon. ⓒ Photo_SUKAVIA



한두 시간 산책을 하고 돌아와 리조트에서 조식을 먹는다. 방에서 조금 쉬다가 인근 로컬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풀장에서 더위도 식히고 객실 발코니에 자리 잡고 하루종일 해가 떨어질 때까지 빈탕을 마시고 또 마신다. 이번 여행은 빈탕 오리지널이 아닌 라들러 레몬에 미쳐 지냈던 것 같다. 



Swarga Resort in Berawa Beach. ⓒ Photo_SUKAVIA



발리에는 정말 많고 많은 숙소들이 있다. 숙소의 선택은 철저히 개인 취향이다. 발리에서 나의 취향은 무조건 선셋을 감상할 수 있어야 한다. 운이 좋게도 꾸따, 레기안, 스미냑, 짱구 등 발리의 유명 해변들은 거의 대부분 서쪽을 향하고 있으니 해변 지역의 숙소들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대부분 선셋을 감상할 수 있다. 오션뷰는 곧 선셋뷰다. 물론 우붓과 같은 내륙 지역은 논외다. 반대로 짠디다사, 아멧 등의 동부 지역은 매일아침 선라이즈를 감상할 수 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날 자신은 없지만 매일 저녁 해가 지는 광경은 놓치지 않을 자신이 있기에. 우기가 아닌 건기에는 언제나 서부 해안가에 숙소를 잡곤 한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서부 해안, 브라와 비치 앞에 위치한 숙소를 찾다가 윈도우 시트와 개별 발코니, 선셋을 위한 선데크까지 갖춘 리조트를 찾다가 이곳을 찾았고 예상대로 만족도는 높았다. 무엇보다 매일 짱구의 아침을 나만의 방식으로 만끽할 수 있어서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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