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빌라의 숨은 반전 매력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불평불만이 많았던 발리의 숙소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체크인할 때부터 구글 지도에 표시된 위치와는 달리 골목으로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했다. 위치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온라인 속 사진과는 달리 실제 모습은 노후된 시설과 전체적으로 떨어지는 컨디션. 샤워기에서는 소금물에 가까운 짠물이 나왔고 인터넷을 접속마저 자꾸만 끊겼다. 야외를 제외한 모든 곳에서 쾌쾌한 냄새가 났다. 각종 스위치와 버튼도 제대로 붙어있는 것이 없고 덜렁덜렁, 콘센트도 뽑히기 일보직전, 아슬아슬하다. 하얀색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파라솔은 이제는 빛이 바래 브라운 톤이 되었고 얼마나 세탁을 맡겼는지 비치 타월은 뽀송함이 전혀 없다.
어찌 보면 실패에 가까울 정도의 선택.
그런데...
높게 자란 야자수는 프라이빗 빌라답게 완벽한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고 볕이 잘 드는 방향으로 빌라를 지어 하루종일 따뜻한 햇살이 쏟아진다. 노후되었다는 것은 다시 말해 오래전에 지어진 빌라라는 점. 당시의 부동산 가격은 알 수 없지만 요즘에 이 정도 사이즈 풀을 갖춘 빌라를 지으려면 돈깨나 들 것이다. 그래서인지 프라이빗 풀은 사이즈가 커서 수영도 가능하다. 냉장고는 온도 조절이 불가능한 탓에 하루동안 맥주를 넣어주면 아주 시원해진다. 따뜻하게 볕이 들어오는 시간에 차가워진 맥주를 들고 풀장으로 들어가서 야자수 바람에 몸을 맡기다 보니, 그 어떤 곳보다 좋다. 야외에만 있으면 말이다. 덕분에 풀 사이드에서 먹고 마시며 시간을 보낸다. 조금은 엉성하니, 내 마음 가짐도 엉성해지고 편안해진다.
부족한 시설과 약간의 실수.
두 손 모아 미안하다고 하면 그만인 발리에서 불평불만을 해봤자 나만 손해가 아닐까. 쾌쾌한 냄새가 나는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햇살 가득한 풀 사이드 데크에서 음악을 들으며 맥주를 마시며 책도 읽고 사진도 찍고 이렇게 글도 쓰고 있으니, 좋다. 빈땅 맥주 몇 병을 낮부터 마신 덕분에 정작 이른 저녁부터 뻗어버렸다. 쾌쾌한 냄새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오랜만에 푹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