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12일, 오전 10시 27분, 화창, 7도, 봄이 다가오고 있는 겨울
호주 캔버라 우리 집 책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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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나가서 아침 식사를 하고 왔다. 오늘 글을 올릴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아침을 먹다가 문득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오늘은 해야지, 해야지 했던 걸 하고 싶어지는 날인 걸까? 혼자 나가서 아침을 먹는 것도 호주에 도착하기 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호주는 사람들이 일찍 일어나는 걸로 유명하다. 그리고 나가서 아침을 먹는다. 오전 7시면 여는 카페들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모여있다. 카운터 앞에는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출근하는 듯한 사람들이 줄지어 있고, 테이블에는 삼삼오오 앉아 커피 한잔과 계란이 올라간 토스트 등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
호주 카페는 2-3시면 문을 닫지만, 그전까지는 늘 사람이 바글바글한데, 그래서인지 호주의 브런치 카페들은 메뉴가 참 다양하다. 동네 카페 같은 오래되고 친숙한 카페는 수프나 호주의 빅브렉퍼스트 같은 친숙한 메뉴들을, 트렌디한 카페들은 메이플시럽과 스리라차 소스로 마무리한 닭다리 튀김이 올라간 와플(내가 좋아하는 메뉴다)이나, 색색깔 야채들이 들어가 꼭 비건 카페에 온듯한 느낌이 드는 신기하고 참신한 메뉴들을 판다. 미트파이나 소세지롤, 레이즌 토스트 같은 메뉴들은 브런치를 하지 않는 커피 위주의 카페에서도 살 수 있는 메뉴다.
거진 10년 전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할 때도 그건 마찬가지였고, 그 후로도 종종 호주에 왔을 때도 카페에서 좋았던 기억 때문에, 다시 호주에 살게 되었을 때 나도 나가서 호주식 아침을 먹어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웬걸, 막상 혼자 나가서 아침을 먹자니 뜻밖에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막상 아침에 나가려니 귀찮기도 했고, 또 요리하는 걸 귀찮아하는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게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거다 보니 사먹기보단 해먹고 싶단 마음도 들었고. 하지만 무엇보다 그 사이 엄청나게 오른 물가가 제일 큰 걸림돌이었다. 지나가다 쓱 메뉴판을 들춰보니 아침 한 끼에 2만 원 가까이 내야 했다. 2만 원을 내고 토스트 하나에 베이컨 한 장 계란 하나 먹을 생각하니 마음이 영 꺾여버렸다.
(물론 처음 호주에 도착해서 짐조차 풀지 못했을 때는 나가서 레이즌 토스트를 종종 사 오긴 했다. 하지만 그건 내가 하고 싶었던 테이블에 앉아 여유로운 아침을 즐기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맛은 참 좋지만서도.)
#1. 여하튼 그래서 결론은 호주에 살기 시작한 지도 3개월이 넘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나가서 아침을 먹고 왔다는 거다. 집 근처에 점찍어두었던 카페가 있어 그곳으로 향했다. 에그와 베이컨이 들어간 브리오쉬 번으로 만든 버거 하나와 락토스프리 라떼 하나를 주문했다. 18.4 호주 달러. 약 만 칠천 원. 다시 살짝 마음이 꺾이려 했지만 이왕 나왔으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침 9시 반 즈음이었는데도 역시나 카페에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한 6-7 테이블 정도는 자리가 차 있었고, 근처 회사에서 단체로 왔는지 테이크 아웃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한 스무 명 정도 있었다. 이들 말고도 한두 명씩 계속 손님이 왔다. 주방 안쪽이 훤히 보여 아침을 먹으며 직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가 한 명, 브런치 메뉴만 만드는 직원이 한 명, 각종 일을 보조하고 서빙을 맡은 직원이 한 명 있었다. 스무 명 단체 때문이었는지 세 명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쉴 새 없이 커피를 만들고, 주문을 받고, 요리를 하는 이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워킹홀리데이를 했을 때가 떠올랐다.
워킹 홀리데이를 했을 때 나도 호주 카페에서 일했었다. 아침식사와 브런치를 파는, 꼭 오늘 내가 아침을 사 먹은 곳 같은 곳이었다. 다만 그곳은 좀 더 오래된 동네 카페 같은 분위기로, 대부분의 손님이 나이가 지긋한, 매일 같이 카페에 와서 신문을 보고 담소를 나누는 중년들인 곳이었다. 그 카페는 커피와 과일 주스, 각종 파이 등의 기본 메뉴는 물론이고, 서브웨이처럼 직접 안의 토핑을 선택해 만들 수 있는 샌드위치와 빅 브렉퍼스트나 치킨 버거 등의 브런치 메뉴들도 파는 곳이었다. 당시 나는 커피를 만들 줄 잘 몰랐기 때문에 주로 샌드위치를 만들거나 가게 안쪽 주방에서 요리를 했다. 베이컨과 소시지를 열심히 굽고 집에 오면 옷에서 소시지 냄새가 났던 기억이 난다.
그때를 떠올리면서 에그 베이컨 버거를 베어 물었는데, 분명 이미 철판에 묻어있었던 듯한 작은 그을음 같은 게 군데군데 묻은 게 보였다. 굉장히 작은 크기긴 했지만 제법 여러 군데 보이는 게, 거슬리려면 거슬릴 수 있었을 텐데도 어쩐지 반가웠다. 내가 일했던 그 카페에도 저런 철판 위에서 베이컨을 굽고 계란 프라이를 만들었었는데, 아무리 청소를 해도 바쁘게 일이 돌아가다 보면 그런 작은 부스러기가 남아있고는 했다. 정말 까맣게 잊고 있던 부분이었는데, 이런 것까지 같다니, 웃음이 나왔다. 괜스레 그때가 그리웠다. 그땐 정말 그 순간에 집중해서 살았었는데, 어째 날이 갈수록 오늘을 살아가는 게 힘든 것 같다. 일에 좀 여유가 생기면 정말 카페 알바를 알야 보아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아침을 먹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집으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