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4일 오전 9시 57분, 먹구름, 11도, 쌀쌀해서 담요를 두른 봄
호주 캔버라 우리 집 책상에서
#0
비가 내린다. 날씨에 먹구름을 쓰고 장소를 써 내려간 한 줄의 시간 동안 먹구름은 비로 바뀌었다. 무섭도록 비가 온다. 바람도 분다. 날씨 앱은 비가 오후 4시쯤 그칠 거라 한다.
장소를 써 내려간 한 줄의 시간, 이라고 했지만 사실 장소를 쓰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일기에 장소를 쓰는 이유는 내가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사주에 역마살이 끼어서일까. 종종 내 집은 다른 곳이 된다. 그 이동들을 기록하고 싶었다. 실제로 나는 지난번 일기를 쓴 8월 12일부터 약 3개월의 시간 동안 여기저기 참 잘도 돌아다녔다. 그렇지만 웬걸, 그렇게 바쁠 때는 일기를 쓸 정신이 없다. 브런치에 올리는 일기 말고 실제로 쓰는 일기장도 꽤나 오랜 쉬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 세어보니 달랑 6번 일기를 썼다. 일이 바빠서 일기를 쓸 여력이 없었는데 일기를 못쓰니 마음도 바빠져서 힘이 들었다. 자신을 돌보지 못한 시간이었다.
#1
그간 나는 한국에 다녀왔다. 여행기간은 딱 두 달이었지만 일기를 못썼던 기간처럼 마음은 세 달 정도 한국에 있었다. (나는 여행 전후로 일상의 리듬을 되찾기까지 최소 여행의 반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에 있던 내내 "최선을 다해도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다."는 문장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시작은 일이었다. 몸과 마음을 불태워 일을 마쳤다. 성공적이었다. 일을 잘 마쳤다는 뿌듯함, 모든 것을 해냈다는 (어쩌면 과도해진) 자신감, 그리고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내야 했다는 약간의 억울함이 더해져, 조금 성급하게 말을 뱉었다. 혹은 그랬다고 여겨졌다. 결국 최선을 다했지만 돌아온 건 실망했다는 말과 기대와는 다른 보상이었다.
다음은 친구들이었다. 외국에서 살게 된 후 몇 번의 한국행을 거치며 배운 것이 있었다. 지난 한국행에서 바쁜 일정 속에 친구들을 보려니 불쑥불쑥 억울한 마음이 들었었다. 나의 노력을 친구들이 충분히 알아주지도, 충분히 되돌려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껴서였다. 나만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오랜 시간을 이 기분이 사실에서 왔는지 아닌지를 가리는 데에 썼다. 그런데 문득 이게 사실이건 아니건, 전부 다 나 좋자고 만나는 것인데 이런 고민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 모든 것이 내가 친구들을 사랑하고 보고 싶기 때문이라는, 나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새겼다. 마음이 밭아지지 않도록 절대 무리하지 말자고도 다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은 예상보다 훨씬 바빠졌고 여유는 다시 사라졌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되돌이표였다. 친구들은 서운해했고, 나는 미안하기도 억울하기도 했다.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결국 다 만나지 못해서, 내게 잘 해준 사람들에게 그만큼 돌려주지 못해서, 나와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기쁘게 응답해주지 못해서, 그런데 그게 내 최선이었어서, 속상했다.
피날레는 가족이었다. / 이 문장 사이에 있었던 일을 주욱 써 내려갔다 지웠다. 모든 것을 꺼내어보기는커녕, 내가 직접 내 상처를 들여다볼 만큼의 회복도 안 된 것 같다. 커다란 일이었다. 따져보면 다른 결의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똑같은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그럼에도 나는 부족했고, 그래서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었다.
왜 때로 최선의 노력은 최선의 결과와 반대말이 되는 걸까. 그 부조리함이 받아들이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