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헐적 아침일기 #5 외국인으로 살아남기

by 수카 Sukha

2025년 11월 6일, 오전 8시 8분, 청명한 맑은 날, 8도, 햇살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아침

호주 캔버라 우리 집 책상에서


#0. 새벽 6시 30분에 일어나 요가를 하고 왔다. 요가/필라테스 스튜디오를 끊은 지 벌써 3주째. 조금씩 활력이 돌아오는 게 느껴진다. 12주 연속 멤버십을 등록했는데 갑자기 여행 계획이 생겼다. 요가가 끝나고 데스크에 가서 멤버십을 잠시 stop 할 수 있냐고 물었다. 데스크의 직원은 멤버십을 suspend 하려는 거냐고 되물었다. 그런데 순간 단어가 들리지 않았다. 직원이 친절히 풀어서 설명해 준 후 웹사이트에 있는 Suspend the Membership을 보여주며 여기서 신청하라고 한 후에야, suspend가 중단하다, 유예하다는 뜻이라는 게 기억이 났다.


창피했다. suspend 같은 쉬운 단어를 못 알아들은 게 창피했고, 아는 단어인데 순간 안 들린 거라고 변명하고 싶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 suspend라는 단어를 나는 단어장에서 달달 외운 적만 있을 뿐 단 한 번도 말해 본 적 없다는 게 기억났다. 적당히 흘려듣거나 읽었던 것 말고, 실생활에서 의식해서 단어를 들은 것 역시 처음이었다. 집에 와서 사전을 찾아보았다. suspend의 뜻 "매달다, 걸다 / 유예하다, 중단하다 / 연기하다, 유보하다" 세 가지 모두 외우고 있는 뜻이었다. 다시 내게 물었다. 이 중 하나라도 실제로 써본 적 있어? 아니라는 대답이 나왔다. 결국 난 suspend라는 단어를 몰랐던 거다.


#1.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화자로서 살아가는 건 쉽지 않다. 솔직히 처음 호주에 도착했을 때는 너무 좋았다. 파리에서 살던 (프랑스어를 거의 못하는) 나에게는, 영어를 하는 호주 사람들이 고맙기만 했고 더 이상 슈퍼마켓에 갈 때 심호흡을 하며 대사를 중얼거려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안도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 마음은 그대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영어로 살아간다는 건 또 그 나름대로 힘이 든다. 높아진 수준에 맞는 새로운 장애물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2. 업무 미팅이 있었다. 호주에서 처음으로 있는 미팅이었고, 새로운 기회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생각과 미팅을 하는 상대방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어 한참 전부터 마음이 두근거렸다. 잘 보이고 싶었다. 새로운 일도 얻고, 친구도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어로 일을 한 지는 한참 되었지만, 나와 같은 영어가 외국어인 사람들 말고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과 정식으로 일해본 적은 없었다. 거래처 등 잠깐잠깐 일한 적이야 있긴 했지만, 한국이나 프랑스에서 영어로 일을 하는 것과 영어권 국가에서 영어로 일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기대치도, 문화도, 그에 따른 내 미숙한 영어에 대한 포용력도... 이런 생각들에 갈수록 긴장이 됐다. 미팅 내용에 대한 걱정과 별도로 영어를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지가 걱정됐다. 호주 악센트가 엄청 세면 어쩌지, 슬랭을 많이 써서 못 알아들으면 아는 척을 해야 하나 아니면 솔직하게 모르는 티를 내야 하나, 말할 때 실수가 없도록 조심해야 할까 아니면 어차피 나 외국인인 거 아는데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게 좋을까 등등 별 생각을 다 하다가, 리서치 중 미팅 상대방이 나온 팟캐스트를 우연히 발견하고 목소리를 들어본 후에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다행히 호주 악센트가 엄청 센 사람은 아니구나, 적응기간 없이 바로 들리겠다 싶어서였다.


하지만 미팅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결국 새로운 일자리를 얻는데도 인간적 호감을 사는데도 실패했다. 미팅이 끝나고 한 일주일 정도를 괴로워했다. 가장 괴로운 건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전혀 감을 못 잡겠다는 거였다. 내가 제안한 내용이 별로였는지, 일할 때 필요한 일정이나 조건 등이 안 맞았는지, 내 영어가 일하기에 부족해 보였는지, 혹은 내가 긴장해서 뱉은 말 중에 무례한 말이 있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가장 괴로웠던 건 내가 무례했던 거 아닌가 하는 우려였다. 내 말에 상대방의 표정이 굳어졌던 것 같은 순간들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가 않았다. 더 신중히, 더 조심해서 말했어야지 같은 자책이 계속됐다. 한국 사람들과 미팅을 해도 유려하게 말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어떤 단어는 무례하게 들릴 수 있고, 어떤 질문이나 대답은 선을 넘는 것이니 하지 말아야 하는지 같은 사회적 가이드라인은 잘 알고 있다. 그건 배운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때로 전혀 의도하지 않고 이 나라의 선을 넘어버린다. 한국에서는 당연한 질문이 이곳에서는 선을 넘는 질문이 되고, 한국에서는 자연스러운 태도가 이곳에서는 예의 없는 것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아무도 내게 내가 잘못 했음을 알려주지 않는다. 나는 외국인이니까. 사람들은 그저 이해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은 미팅처럼 나는 조용히 선 밖으로 밀려난다. 밖에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선의 밖으로. 그리고 나는 그렇게 멀어진채 결국 무엇이 이유였는지를 알 수 없어 모든 것을 이유로 만든다. 외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끝없는 과민한 자기의식과 자책의 반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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