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로

by 나를


저녁 식구들이 차례로 들어오면 나는 밥을 차린다. 밥과 국이나 찌개, 고기나 생선 요리, 나물 반찬이다. 이것도 이른 새벽부터 틈틈이 준비해야만 한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다음 날 먹을 식재료를 새벽배송으로 주문한다. 머릿속으론 내일 음식 준비와 해야 할 집안일을 계획한다. 물론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가끔 아무 생각 없이 일을 하다 보면 생각지도 않게 더 많은 일을 한 경험이 자주 있다. 그래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마음을 편하게 먹자고 다짐하지만 다시 나의 오랜 습관으로 돌아온다.


계획을 세우면 마음에 긴장이 자리 잡는다. 완벽하게 하려는 마음이 강해서 그런지 어떤 일을 시작할 때는 그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플랜 A, B까지 세우며 최대한 실패를 줄이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몸이 경직되어 있고, 강박적인 행동까지 생겼다. 가스는 잠갔는지, 현관문은 잠갔는지 특히 자기 전에 열 번 이상 확인한다. 나 스스로 강박 행동을 인지하지만 이 행동에서 놓여나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횟수를 줄임으로써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


어느 순간 '나는 왜 이렇게 최선을 다하려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몸이 못 버텨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인정 욕구 때문이라 짐작한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나를 위한 삶도 누구를 위한 삶도 아니었다. 그 순간의 만족감은 결국 나 자신의 부재감으로 귀결되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맞춰 주어야만 내 마음이 편했다. 그 결과 마음의 공허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몸살이 나도 몸져눕기 전까지 몸을 움직였다. 오죽했으면 남편은 나에게 죽을 만큼 아파야 쓸고 닦는 일을 멈춘다고 하였다. 그 소리에 나는 남편에게 내색하지 않았지만 내심 서운했다. '나는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지?' 그런 사소한 말들로 내 마음속에는 서운함, 분노, 외로움이 점점 자라나고 있었다. 날 위한 말인 줄 알지만 고깝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 서운함마저도 내색하지 못하고 속으로 삼켰다.


그러고 보면 내 부지런함은 어린 시절 집안일을 하면서 시작됐다. 무서운 아버지도 야무진 나에게 곧잘 칭찬을 하셨다. 어린 나는 칭찬이 고팠던 것 같다. 더 열심히 집안일을 했다. 게다가 엄마가 생계를 책임지셨기 때문에 나는 엄마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흘렀으니 집안일에서 손을 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요즘 시대에 맞춰 나도 배달 음식을 자주 시켜 먹는다. 특히 아이들이 원하기도 해서 집밥만 줄 수 없다. 이제는 너무 잘하려는 마음보다 상황과 내 몸 상태에 따라 유연하게 행동한다. 더 이상 나 자신을 갉아먹지 않으려고 한다.


몇 년 전부터는 체력이 더욱 약해져 가급적 무리하려 하지 않는다. 일하다가도 아프면 눕고 괜찮아지면 다시 일을 시작한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 누군가와의 인연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을 내어주는 일이 나를 더욱 우울의 늪으로 빠지게 한다고 생각했다.


뒤늦게서야 나를 챙기기 시작했다. 그동안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나 자신을 괴롭혔는데 다시 책을 읽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나 자신에게로 걸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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