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의 여정

by 나를

나는 내 아이를 낳고 세상의 엄마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최소한의 모성애는 어떤 것인지 깊은 물음을 간직하고 살고 있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출산을 하고 엄마에 대한 마음이 더 애틋해진다고 한다. 나는 아이를 낳고 보니 이 아이가 험한 새상에서 살아갈 생각에 마음이 저려왔다.


같은 배에서 나왔지만 아이의 성향은 너무도 달랐다. 큰 아이는 극내성적인 아이고 둘째 아이는 내가 낳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성격적인 면에서는 닮은 구석이 없었다. 오빠랑 비교하며 손해 보지 않으려고 때마다 얄미웠다. 아픈 손가락이 있듯이 나에게는 아들이 그랬다. 이들에게 신경을 많이 쓰다 보니 딸은 야무지고 활발하니까 신경을 덜 쓴 점도 있었다. 딸은 아토피 질환, 천식으로 내내 힘들어한다. 대학 입학후에는 집에서 타지역으로 통학을 이어가고 있다. 아토피, 천식이 심해서 아무래도 집에서 지내는 것이 심적이나 건강면에서 일상 생활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보다 가족과 지내는 것이 마음에 안정을 주는 것 같다.


우리 시대 부모님들은 먹고 살기 바빠서 자식에게 다정하게 대하질 않으셨다.

나의 엄마는 알코올 중독자 남편과 살면서 애 셋을 키워야 했으니 그 누구보다 인생살이가 외롭고 가시밭길이었을 것이다. 여자로서 엄마의 일생은 오로지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살아야 했다. 그 고단함은 말하지 않아도 나만큼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의 고단함을 덜어주려 집안 일을 도맡아 했다. 어린 나이에 불평 없이 집안일을 한 나를 생각하면 지금 생각해도 참 마음이 성숙한 아이였던 것 같다. 오히려 지금 중년의 나이의 내 모습에 실망할 때가 있다. 세상의 모순과 절망 앞에 때론 모난 모습을 보일 때가 가끔 있으니... 지나고 그 일을 생각했을 때 그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게 최선이었을까? 라며 반문한다. 그래도 참다가 참다가 최대한 감정을 억제하고 한 말이었으니 괜찮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런 어린 시절의 나는 모든 상황에 내색하지 않고 남에게 상처를 안 주려고 애쓴 아이였던 것 같다, 그런 것들이 습관이 되어 점점 나라는 사람의 이미지는 늘 참고 웃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비치는 것 같다. 어느 순간 삶의 통증이 견딜 수 없을 때 스스로 감정이 메말라감를 느꼈다. 도대체 내가 태어난 이유가 무엇일까? 왜 인생은 이리도 고달플까? 끊임없이 생각했다. 결국 정답이 없다는 것을 알 것 같았다. 그냥 사는 거구나... 삶을 바라봐야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힘든 환경이어도 어렸을 적 내 마음에 사랑을 받는다는 마음이 채워졌다면 나는 세상에 대한 시선이 너그러워졌을까? 최소한 내가 힘들 때 언제든 엄마를 생각할 수 있지 않았을까?

엄마를 생각하면 따뜻함보다 내가 엄마한테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

씁쓸하지만 현재 감정을 부정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내 자식에게 나도 좋은 엄마가 될 수 없을 것 같다. 살면서 내 감정에 휩쓸려 아이들을 대했던 적도 많다.


딸이 잘 할 거라 생각하며 더 많은 사랑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 자식과 함께 하는 이 순간이 소중하고 빛의 속도로 지나가는 순간임을 자각하며 더 사랑을 주려 한다.

삶은 늘 불완전하며 우리는 매 순간 우리의 불완전함을 자각하며 살 수밖에 없다. 상황은 바뀌지 않고 나 또한 바뀌기 힘들다. 그렇다면 현상을 바라보고 느끼는 힘이라도 키워보는 건 차선책이라도 될 것 같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마음 성숙도는 점점 좋아질 것이다. 불완전한 세계, 불완전한 내가 엄마 가족관의 관계 속에서 나를 인정하고 상대를 배려하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봐 주는 노력으로도 인생의 난이도를 조금은 낮춰줄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