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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khyun Lee Jan 28. 2018

심블리의 탄생 :: 1화, 정치불신에 무한도전

자의식 과잉의 서사를 넘어

정치 홍보는 정치불신에 맞서는 일


연재를 시작하며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말이자 누군가 정치 홍보에 대해 물어올 때면 버릇처럼 발사되는 문장이다. 미국 정치컨설팅의 대가 딕 모리슨이 한 말, 이면 좋겠지만 그냥 내가 한 말이다. 정치 홍보의 모든 콘텐츠는 이 출발선 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콘텐츠 전국시대의 경쟁자들


이미 우리는 압도적 물량의 콘텐츠에 깔려있다. 다 아는 얘기지만 기본 환경을 설명하는 차원에서 한단락만 할애하여 쓴다. 쏟아지는 뉴스 기사에, 감각 터지는 온라인 콘텐츠에, 어쩜 이 해학의 민족은 매일 같이 재밌는 짤/드립들을 양산하는지, 세계로 뻗어가는 TV 드라마는 얼마나 훌륭하며 매달 만 2천 원만 내면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고퀄 미드들도 놓칠 수 없다. 이 와중에 이번 주 '썰전'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다더라, '무한도전'에 '나 혼자 산다'에 누가 나왔는데 재밌었다더라 하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여기에 취향에 따라 영화/음악/소설/웹툰/라디오/팟캐스트/웹드라마 등의 콘텐츠까지 포함하면 산너머 산이다. 이 마당에 정치 콘텐츠를 쓰윽 끼워넣어야 한다.

밑도 끝도 없지만 지난해 최고의 예능은 '효리네민박' 이었다고 생각한다.

'정치불신'이라는 또 하나의 허들


물론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홍보 마케팅과도 비슷한 환경이다. 이 수많은 콘텐츠들 사이에서 나름의 생존 방식이 필요할 거다. 그런데 정치 홍보의 경우 그에 앞서 또 하나의 허들을 넘어야 한다. 바로 뿌리 깊은 정치 불신의 정서다. 1700만 촛불이 불의한 정권을 끌어내린 시대에 무슨 이야긴가 싶을 수 있다. '정치'라는 것을 나쁜 것으로 여기니 마니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치인의 메시지와 콘텐츠를 대하는 일반적인 시선에 대한 이야기다.


그 인식이 옳든 그르든, 그리고 그 정서를 누가 혹은 어떤 것이 만들어냈든, '우리 세금 받고 일하는 요 것들이 밥값은 하고 있나', '보나마나 지 뭐 했다 티내는 거겠지', '또 지 잘난 척이겠지' 등의 부정적 시선은 엄중히 그리고 대단히 강력하게 작동한다. 이는 진영을 막론하고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조차 상수로 적용되는데, 지지자들이 직접적으로 말을 안해서 그렇지 아무리 좋아하는 정치인의 메시지/콘텐츠라도 되도않는 것에는 단호히 외면과 무시로 대처한다. 그만큼 정치인의 무언가를 대하는 일반적인 정서란 무척 냉정하고 냉혹한 출발선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정치인의 모든 홍보 행위는 일종의 '죄인' 포지션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이 분께는 내가 대역죄인이다

놀랍게도 이 점을 간과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정치불신 정서에 대한 조금의 고려 없이 근거 없는 자의식을 폭발시키는 분들, 그렇게 얼마되지 않는 핵심 지지자분들만 꾸준히 반응할 콘텐츠를 주구장창 올리는 정치인 계정이 상당수다. 이는 정치 홍보에 별 의미를 두지않는다는 선언이거나 (요즘 이런 정치인은 거의 보지 못했다) 아니면 거칠게 말해 수용자에 대한 기만이라고 생각한다. '대충 이정도 하면 좋아해 줄꺼지?'류 대단히 게으른 태도다. (이순간 거명하고픈 수많은 유력 정치인들의 계정이 떠오르나 심상정 홍보는 또 얼마나 그렇게 잘해왔나 싶어 잠시 성찰의 묵념을 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왜 정치 홍보를 하는가 (feat. 유승민)


정치 홍보가 '정치혐오에 도전하는 것' 이라는 인식은 이내 '왜 정치 홍보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결국 정치 홍보의 목적은 기존 지지자들을 포함, 그러나 그 너머에 있는 유권자들에게까지 도달하기 위함 아닐까? 그렇다면 그 너머 유권자들의 정서를 직면하고 그에 따른 화법/태도/시선 등을 고려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 이 고생을 사서 하나. 아주 많게 봐야 수천 수만의 핵심 지지층 DB구해서 '나 이번에 뭐뭐 했어요~' 문자나 팡팡 뿌리면 될 것을.


심상정, "나 생각해서 팬클럽 좀 만들어 주라!! 나 쓸쓸하다 진짜!!!" (오해영 패러디) by 심상정 선대위

기존 지지자 너머의 분들이 매일같이 덕통사고 당하시길 간절히 기원했다

화법, 자의식 과잉의 서사를 넘어


이를 위해 심상정 홍보를 하며 가장 신경 써 온 부분은 화법이다. 언제나 제1과제는 '정치인에 대한 1차적 거부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였고, 포스팅의 짧은 문구하나를 쓸 때에도 어디선가 삐딱한 시선으로 타임라인을 훑고 있을 유권자의 얼굴을 매순간 떠올렸다.


과도한 자의식을 드러내지 않는 것부터 시작했다. 영상/이미지 콘텐츠는 물론, 이를테면 일반 정치 메시지를 올릴 때에도 '저는', '제가', '저의' 등 스스로의 존재감을 구태여 짚어내는 대목은 최대한 잘라냈다. 온라인에서 만큼은 공식 논평이나 기자회견문과 애초부터 접근 방식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식 원문과 조금 달라지더라도 온라인에서는 수정하여 업로드한 경우도 많았는데 온라인 업로드 그 자체가 별도의 정치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르치려 드는 듯한 어투가 되지 않는 것도 상시 검토 대상이다. 이른바 'should (~해야한다) 문장'의 향연이 되지 않으려 노력했다.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정치 메시지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경우도 많았지만 가능하면 한 군데라도 어투를 틀거나 어미를 바꿨다. 아울러 우리끼리만 낄낄 대는 것처럼 보일만한 콘텐츠나 표현은 극도로 자제하거나 우회하여 표현했는데, 늘 지지자 너머의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음을 상정한다면 당연한 일이다.


'쓰리쿠션'의 미학


정치불신의 허들을 넘기 위해 네이티브 광고의 방식을 지향했다. 이미 수많은 온오프라인 마케팅이 채택하고 변주하고 있는 방식인데, 당구에서 '쓰리쿠션' 치듯 여기 치고 저기 치고 마침내 메시지로 도착하게 하는 식이다. 정치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강요하기보다 스리슬쩍 감상의 길을 내어놓는, 일종의 준비된 길 터주기다. 이 과정이 매끈하면 하해와 같은 마음의 수용자들이 알면서도 넘어가준다. 이를테면 가볍게나마 싸드 문제를 환기시키기 위해 성주 참외를 엮어 심블리를 악덕 상사(!)로 묘사제보하기도 했다. (못난 스탭을 둔 심상정에게 미안하다)

의원이 직접 과일을 깎는 장면은 탈권위 코드에도 부합한다. 물론 권위니 탈권위니를 떠나 그는 늘 탕비실에서 과일 두어개를 깎아 홀연히 방으로 사라지곤 한다.

3인칭 시점, '탈권위' 코드는 기본


무한도전의 자막이 그러하듯 한발짝 떨어진 시선으로 정치인을 묘사하는 것도 정치불신 정서에 대응하는 한 방법이다. 이를 위해 인스타그램 계정 이름을 심파라치 (sim+paparazzi)로 명명하기도 했다. 여기서 핵심은 수용자의 시선에 맞는 '탈권위' 코드다. 그는 홍보담당자에게나 ‘의원님’이지 일반 수용자들에게는 호칭따위 생략되는 정치인 A다. ("야, '심상정' 요즘 뭐하냐?") 간혹 어설프게 공익광고협의회 같은 말랑한 아부 멘트를 써놓고 '탈권위' 코드를 건드린양 하는 경우가 있는데, 안 하니 못한 정치불신 유발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웃길 자신이 없다면 드라이한 상황묘사만 붙이는 게 나을 수 있다. 참신한 유머를 담은 '쓰리쿠션'이 어렵다면 담백한 상황 묘사를 붙인 '오오마와시' ('크게 돌려치기'를 의미하는 당구용어) 정도로 마무리하는 게 낫다.

사실 이건 기획된 콘텐츠도 아니다. 원장 선생님이 안오시자 그는 지체없이 드라이기로 돌진했다.

유권자를 대하는 정치집단의 자세


이 글을 통해 정치불신 정서의 근원을 따지거나 가치판단을 늘어놓을 생각은 없다. 나로서는 정치업계에 들어온 이유이기도 한 매우 중요한 문제이나 이 글에서 쉬이 미주알고주알 할 수 있는 주제는 아닌 것 같다. 다만 정치홍보 담당자들에게는 현실이 그러하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언컨대 정치인의 어떠한 메시지/콘텐츠도 이 '정치불신'이라는 허들 옆을 경유하여 질주할 수 없다.


따지고 보면 홍보에 국한된 이야기도 아니다. 유권자를 대하는 정치집단의 자세에 관한 문제다. 당신 (유권자)께 사려깊게 다가가겠다는 마음가짐, 우리끼리만의 방언 파티를 하지않겠다는 겸허한 태도, '대충 이 정도 하면 당신의 호감을 얻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느슨한 마음가짐과의 전쟁.


특히 이 주제를 첫 화에 이렇게 장황하게 쓴 이유는 자못 의도적인데, 수많은 정치인 계정이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매일같이 콘텐츠를 발산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정치 홍보를 무슨 화려한 영상 기술이나 웹자보 제작 능력, 혹은 참신한 드립의 영역 정도로 한정하여 취급하는 일부 시선 때문이다. 그런 식의 시선이 이내 정치 홍보 담당자들을 경직된 콘텐츠 자판기로 만들고 결국 촌스러운 콘텐츠의 주인이 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정치 홍보가 하나의 영상, 하나의 웹자보, 혹은 하나의 유머 콘텐츠 제작의 수준을 넘어 유권자를 대하는 해당 정치집단의 자세를 드러낸다는 점, 그래서 보다 사려깊은 고려의 영역이 되어야 한다 점을 이 연재를 통해 계속 주장해 나갈 예정이다.


/끗/


다음 편 예고: 2화, 심상정 홍보 성장판 체크 – ‘before 심블리’의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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