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향한 여정
안녕하세요, 오늘은 특별한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지난 주말, 저는 생일을 맞아 서울에서 KTX를 타고 대전에 계신 84세 어머니를 만나러 갔습니다. 창밖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64기 낭디꿈 독서모임 지정도서인 '신이 부리는 요술'을 읽었습니다.
기차 안에서 만난 책
서울역에서 KTX에 오르며 설렘과 약간의 긴장이 교차했습니다. 오랜만에 어머니를 뵙는다는 기대감과 함께, 처음으로 세족식을 해드릴 생각에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가방에서 '신이 부리는 요술'을 꺼내 펼쳤습니다.
이 책은 우리 64기 낭디꿈 독서모임의 이번 달 지정도서였습니다. 사실 바쁜 일상 속에서 미처 다 읽지 못했는데,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이 KTX 안에서 책을 마저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페이지를 넘기며 책 속에 빠져들었습니다.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 속에서 삶의 의미와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부모와 자식 간의 복잡한 감정을 묘사한 부분에서는 문득 제 자신의 이야기를 읽는 것 같았습니다.
KTX가 빠른 속도로 달리는 동안, 창밖의 풍경은 계절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초록빛 들판과 첫 번째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 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습니다. 마치 제 인생의 시간들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와 함께한 유년 시절, 독립해서 서울로 올라온 청년 시절, 그리고 지금... 이 모든 시간들이 '신이 부리는 요술'처럼 신비롭게 얽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를 향한 여정
기차 여행의 한 시간은 어머니를 향한 마음의 여정이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자주 찾아뵙지 못했는지, 일상에 쫓겨 전화도 드물게 드렸는지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그리고 온통 어머니에 대한 기억으로 가득 찼습니다.
어릴 적 아플 때면 밤새 제 이마에 손을 얹고 지켜주시던 어머니, 중학교 입학식 날 새 교복을 입은 저를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히시던 어머니,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셨던 어머니...
책을 읽다가 문득 창밖을 바라보면, 그 풍경 속에서도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이런 감정의 흐름 속에서 대전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마음이 뭉클해져 있었습니다.
대문 앞에서 기다리시는 어머니
택시를 타고 어머니의 집으로 향하는 길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습니다. 동네는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지만, 어머니의 집만은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저를 기다리는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멀리서도 보였습니다. 대문 앞에 서서 이리저리 거리를 살피시며 딸을 기다리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한참을 그렇게 서 계셨는지 다리가 아프실 텐데도, 서울에서 내려온다는 말에 전화드린 그 순간부터 대문 밖에 나와 기다리고 계셨다고 합니다.
"하룻밤 자고 갈 것 왜 오냐고" 하시면서도, 못 오면 보고 싶고, 왔다 가면 또 서운하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웃음 짓게 됩니다.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겠지요. 다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 표현해도 다 담지 못하는 사랑.
밤이 깊어가는 대화
디톡스 하느라 저녁을 먹지 않자 어머니는 찹쌀모치 3개로 저녁을 대신했습니다. 밤이 깊어가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제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셨고, 저는 서울에서의 일상을 나눴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많은 것이 변했지만, 어머니의 사랑만큼은 변함없이 그대로였습니다. 그 사랑이 제게는 가장 큰 힘이자, 가장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밤이 깊어가도록 어머니의 말은 계속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듣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대화할 상대가 없으니 얼마나 힘이 들까하는 생각을 하니 목이 메어 옵니다.
근검절약의 밥상
세족식 전, 어머니는 정성스럽게 차려진 밥상을 내오셨습니다. 고기 요리와 쌈 채소, 검은콩, 양배추 등 정성 가득한 음식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미역국을 싫어한다고 한 어머니.
"어머니, 제가 차려드려야 하는데 그랬어요. 힘드셨죠?" "아이고, 괜찮다. 네가 오니까 힘이 나서 한 거야." 친정에 오면 항상 어머니가 밥상을 차려줍니다.
밥을 먹으며 어머니의 손을 바라봤습니다. 쭈글쭈글하고 갈라진 손, 검버섯이 피어나 있는 손. 그 손으로 평생 저희 형제를 위해 밥을 지으셨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맛있는 것을 사드리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극구 사양하셨습니다. 딸이 돈 쓸까 봐 걱정하시는 모습에서 평생 근검절약으로 살아오신 어머니의 모습이 그대로 보였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힘들어 하셨던 어머니. 싸우더라도 옆에 있을때는 외롭지 않았는데 혼자서 사니 말할 사람도 없고 외롭다고 하셨습니다. 평생 오남매를 키우느라 밤잠을 못주무신 어머니의 강인함과 검소함이 이제는 습관이 되셨나 봅니다.
"어머니, 이제는 좀 편하게 사세요. 저희가 다 컸잖아요." "이게 편한 거야. 네가 돈 쓰는 게 더 불편해."
그 말씀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화려한 선물이나 비싼 음식이 아니라, 이렇게 검소하면서도 정성 가득한 밥상으로 표현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시도한 세족식
아침을 먹고난 후, 세족식을 해드리 위해 물을 데웠습니다. 어머니는 처음에 당황하시며 "이게 무슨 장난이냐"며 손사래를 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용히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 오늘은 제 생일이에요. 그동안 저를 위해 고생하신 어머니의 발을 한번 씻겨드리고 싶어요."
조심스럽게 어머니의 양말을 벗기고, 주름진 발을 처음으로 물에 담그는 순간, 묘한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84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새겨진 발. 저를 낳고 키우시느라 얼마나 많은 길을 걸으셨을까요. 그 발로 저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하셨을까요.
따뜻한 물에 어머니의 발을 담그고 부드럽게 닦아드리는 동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사함이 차올랐습니다. 어머니는 처음엔 쑥스러워하시다가 점점 편안한 표정으로 변하셨습니다. 발가락 사이사이를 정성껏 닦고, 굳은살이 박힌 발바닥을 마사지해드리며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어머니, 이 발로 저를 얼마나 많이 업어주셨어요. 얼마나 많이 뛰어다니셨어요." "그때는 힘들지 않더라. 네가 웃으면 그것만으로도 힘이 났어."
어머니의 말씀에 눈물이 차올랐습니다. 평생 자식을 위해 헌신하신 어머니께 드릴 수 있는 작은 효도였습니다. 그 순간 '신이 부리는 요술'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삶에 요술을 부린다." 정말 그랬습니다. 어머니는 제 삶에 가장 큰 요술을 부리신 분이었습니다.
소일거리가 없어 힘들어하시는 어머니
어머니는 요즘 일상에 대해 쉬지 않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즘은 할 일이 없어. 옛날엔 너희들 뒷바라지하느라 바빴는데, 이젠 그것도 없고... 시간이 안 가."
소일거리가 없어 힘들다고 하시는 어머니의 말씀에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일평생 자식을 위해 살아오신 어머니에게 이제 자식들은 멀리 떨어져 살고, 할 일도 없어진 노년의 시간은 얼마나 외롭고 힘들까요.
"어머니, 취미 같은 거 찾으시면 어떨까요? 요즘 복지관에서 프로그램도 많이 하던데..." "내가 그런 거 해본 적이 없어. 한글도 모르고, 뭘 할지도 모르겠고..."
노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하시는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서울과 대전, 물리적 거리는 멀지만 마음만은, 마음만은 언제나 어머니 곁에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더 자주 찾아뵙고, 전화도 더 자주 드려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어머니의 작은 행복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머니의 소소한 행복들도 알게 되었습니다. 아침마다 동네 한 바퀴를 돌며 만나는 이웃들과의 인사, 작은 화분에 키우는 고추와 상추, 가끔씩 옛 지인과 이모와 나누는 통화.
제가 찾아온 오늘, 어머니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환한 미소가 피어났습니다.
"네가 오니까 집안이 환해지는 것 같다."
그 말씀에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신이 부리는 요술' 책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서로에게 작은 기쁨이라는 요술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이별의 시간
다음날 점심시간 고속버스를 타기 위해 집을 나서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떠나는 저에게 챙겨줄 것이 없다며 미안해 하셨습니다. 늘 빈손으로 보내지 않고 뭐라도 챙겨주시는 어머니. 차비와 함께 가면서 먹으라고 찹쌀모치와 군것질거리를 가방에 넣어 주셨습니다. 받아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어머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제가 자주 찾아올게요." "그래, 너도 몸 조심하고. 밥 잘 챙겨 먹어."
대문 앞까지 배웅 나오신 어머니와 작별 인사를 나눴습니다. 어머니는 저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때까지 그 자리에서 손을 흔들어주셨습니다. 모퉁이를 돌아서며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저를 발견했습니다.마음은 어머니 곁에 있고 싶은데 몸은 떨어져 있으니 그 사랑을 어찌 표현할 수 있으리요.
고속버스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다시 '신이 부리는 요술'을 펼쳤습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어머니와의 만남과 이 책이 묘하게 어우러져 깊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책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삶은 서로 얽히고설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그것이 바로 신이 부리는 요술이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어머니와 제 삶은 떨어져 있지만 끊임없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서로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생일날 받은 가장 큰 선물은 어쩌면 어머니의 발을 씻겨드릴 수 있었던 그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 순간 우리는 서로에게 가장 큰 사랑의 요술을 부렸습니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길 기원합니다, 어머니. 그리고 다음에는 더 자주, 더 오래 함께하겠습니다.
이번 생일은 어머니와 함께, 그리고 '신이 부리는 요술'이라는 책과 함께 특별한 의미로 남을 것 같습니다. 모든 어머니들께 감사와 사랑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