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당연 한건 없다

by 이숙자


결혼한 여자들이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먼저 물어보는 말이 있다." 자녀가 몇이 되나요? 하고 묻는다. 사람들은 왜 그게 궁금한지 모르겠다. "나는 아들 딸이 몇 명인 데요." 대답을 하고 서로 자녀 이야기가 술술 풀린다. 자녀들 이야기부터 시작되는 대화는 그저 일상 속에 자녀들과의 관계부터 이야기한다.


나는 아들은 낳아 본 적이 없는 딸만 넷을 낳은 친정엄마다. 사람들에게 딸이 넷이라고 말하면 비행기 탓일 만 남았다고 말을 한다. 맞는 말이기는 하다. 딸이 넷인 덕에 비행기는 많이 타 보았다. 딸들이 많아 좋은 점도 있다. 사람 사는 일은 언제나 백 프로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딸만 있어 힘든 부분도 있으니까.


딸들이 직장 생활을 하면 친정엄마가 해야 할 일이 많다. 결혼은 했지만 아이를 낳지 않는 막내딸만 빼고는 언제나 친정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게 딸들이다. 세쨋딸도 외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엄마를 자주 부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 찾아오면서 살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지난해부터 일 년을 함께 살았다. 그때부터 친정엄마인 나는 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바쁜 딸 대신 살림은 거의 내 몫이었다.


살림도 재미있게 할 때가 있다. 나이가 많아지면 부엌에 들어가는 일이 힘겨워 자꾸만 살림과 멀어지고 싶은 게 당연해진다. 그래서 예전에는 며느리와 함께 살면서 며느리 밥을 먹고살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세월은 흘러 세상이 많이 변했다. 지금 세상은 어림없는 소리이다. 요즘 며느리 들은 시 부모 모시는 사람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며느리가 시부모를 모시지 못하는 이유도 있다. 사는 게 힘들어 부부가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세상 살아가기가 너무 어렵다. 예전처럼 남자가 가족을 책임지고 혼자서 생계를 유지하기는 어림없는 세상이 되었다. 그만큼 사는 것이 복잡하고 아이들 교육도 신경 써야 할 일이 많다. 나는 아이들 넷을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은 체, 혼자 어떻게 키웠는지, 생각하면 아득한 날들이다. 구비구비 사연도 많다. 다시 젊음으로 돌아가기는 싫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힘겹다.


큰 딸은 90년도 미국 유학을 하고 학업을 마친 후 직장을 직장생활과 결혼도 딴 나라에서 했다. 직장일이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하는 일이다. 큰딸은 몇 년 일본에서 살았다. 딸에게는 쌍둥인 애들이 둘 있었고. 포토그래퍼인 사위는 아이들 둘을 돌보기도 한다. 그러다 가끔 사위도 출장 가는 일이 생기면, 그럴 때면 한국에 있는 나를 호출한다. 엄마는 언제나 딸들의 오분 대기조라는 말이 맞는 말이다.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날아가야 한다.


말도 안 통하는 일본에 가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한다. 일본은 아무리 세가 비싸도 집이 너무 좁다. 사람이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에서 생활을 한다. 특정인 빼고는 그렇게 산다고 했다. 딸이 살고 있어 세 번을 일본을 다니고 여행도 겸해서 하면서 일본의 문화를 느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일본 사람들은 참 친절하고 청결하며 부지런하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싫지만 우리가 배워야 할 점도 있다.


멀리까지 가서 아이들을 돌보고 힘은 들지만 자식들을 위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나는 감사하고 다행이라고 여기곤 했다. 사람이 할 일 없을 때, 하지 못할 때 오는 무력감은 쓸쓸하고 외롭기 때문이다. 나는 내 건강이 허락하고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음에 축복이라 늘 생각했다.


일본 사람은 영어 발음이 안된다고 한다. 일본에 가면 영어 하는 사람이 드물다. 일본을 갔을 때 제일 난감한 것이 언어 문제이다. 차라리 영어라면 더듬더듬 알아듣고 영어를 읽으며 어느 정도 감은 잡는데 일본말은 전혀 모르기 때문에 혼자서 움직일 수가 없다. 일본을 가더라도 옆에 안내하는 사람이 없으며 꼼짝 할 수가 없고 집안에 서 아이들하고 있다가 슈퍼만 다니 곤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자기 인생을 살아낸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삶이 힘든다. 자꾸만 세상이 변화하고 사람들 삶도 복잡하다. 그러한 만큼 부모가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해 줄 때 자녀들의 삶에 짐을 덜어 줄 수 있는 일이다. 부모는 자녀들을 고향 같은 곳, 삶의 쉼터 같은 곳이다.


올해 코로나 때문에 중국에 살던 딸이 그곳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우리 집에 함께 살게 되었다. 아무리 자녀라도 성인이 되고 가족이 있게 되면 나이 든 세대인 부모와 사는 게 여러 가지 쉽지 않은 면이 있다. 서로의 생활방식이 다르고 세대 간의 생각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둘째 딸도 직장생활을 해야 했다. 아이를 낳고 3주 후 손자를 집으로 데려와 7년을 키우고 학교 들어갈 때 서울 집으로 보내 주었다. 요즈음 여자들도 가정생활만 할 수 없다. 모두가 사회생활을 하게 되니 도와주어야 할 부분은 친정엄마인 내 몫이다. 부모이고 엄마이니까 당연히 도와주어야 사는 게 부드럽고 힘이 덜 든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딸들에게 섭섭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친정 엄마는 온 힘을 다해 도와주어도 그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는 듯하다. 나도 이제는 나이가 많아지면서 힘겹고 편하고 싶다. 사람 사는 것은 다 나이와 비례하는 듯하다. 나도 오분 대기조가 아닌 자유롭고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다.


딸들아! 친정 엄마도 당연한 건 없다. 너희들 인생이 있듯이 나도 내 인생이 있다. 내 나이 팔십이 내일모레 다가오니 이제는 친정엄마란 이름에 반기를 들고 싶은데, 또 자식이 부탁하면 거절 못하는 게 엄마 마음인 듯 해 참 부모 자식이란 모르는 사이이다. 자식을 위해 우렁이 껍데기처럼 되고 마는 게 부모 아닌가 모르겠다.


부모는 사는 게 온통 마음이 자식에게 가고 있으니, 너희들도 너희 자식에게 그리 살 것이다. 그러나 부모는 항상 살아있는 게 아니다. 너희 부모 마음도 헤아려야 한다. 나는 큰 것 바라지 않는다. 엄마 이기전에 같은 인간으로 존중받고 살고 싶다. 따뜻한 말 한마디로 공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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