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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자 Dec 23. 2024

선물 같은 하루, 겨울 여행

토요일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하늘은 잔뜩 흐리고 금방 눈이나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씨다. 간밤에 비가 내렸는지 창밖으로 보이는 대지가 물에 흠뻑 젖어 있다. 바람조차 몹시 불고 날씨가 사납다. 이럴 어쩌나,  오늘은  '한시예' 시 낭송 회원들이 연말을 마무리하기 위해 겨울 여행을 가기로 약속된 날이다.


예상대로 선생님 한분이 염려가 되어 톡이 온다. 이런 날 여행을 가도 되나, 자가용으로 움직여야 해서 걱정이 될 법도 하다. 남편도 옆에서 한마디 거든다. "이런 날 무슨 여행" 하여간 이런 때는 남편이 좀 야속하다. 얼마나 벼르던 여행인데, 위로는 못 할 망정 말을 미웁게 하고 있으니 더는 거들기 싫어진다.


날씨 때문에 망설일 듯해서 회장님에게 확인 전화를 했더니 그대로 진행한다는 대답이다. 날씨가 춥고 바닷가에 갈 텐데 나는 완전 무장을 했다. 두툼한 패딩잠버와 모자 목도리 장갑 챙길 건 다 챙겼다. 거기에 보온병에 차까지, 차로 이동 하고 걷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을 테니 안심해도 되겠지 가지전에 걱정을 하면 될 일도 안된다.


"잘 될 거야" 면을 건다.  역시 리더는 멘털이 강해야 한다. 아니면 죽도 밥도 안된다.


우리는 집합장소에 모여 승용차에 나누어 타고 여행지로 떠났다. 군산에서 변산 채석강을 향해서 달린다. 변산은 군산에서 1시간 거리라서 멀지 않아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다. 새만금을 가로질러 달리는데 언제 하늘이 흐렸나 싶을 정도로 해가 반짝인다. 바다에 햇살 부서지는 풍경들이 아름답다. 참으로 자연은 알지 못하는 신비다.


우리는 가다가 잠깐 바다를 바라보면서 가지고 간 따뜻한 차를 한잔 마시며 숨 한번 크게  쉬고 호흡한다. 겨울은 겨울답게 추워야 제맛이다. 겨울은 어쩌면 쉼의 계절이 아닌지,  모든 사물들이 멈춰 쉬고 있는 듯 하지만 사실은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는 겨울잠 속에 생명의 움직임이 있다. 말 없는 자연의 숭고함에 매번 놀라곤 한다.

음식은 먹는 대로 계속 나온다

한 시간 남짓 달려 변산 채석강에 도착해 예약해 놓은 식당에  모여 만찬을  시작했다. 회장님의  덕담 건배사에 우리는 목소리 높여 파이팅을 외친다. 바다에서 나오는 건 모두 식탁에 올라오는 듯하다. 회에서부터 음식이 쉴 사이 없이 계속 나온다. 오늘은  맛있는 건 다 먹는 날이다. 역시 사람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행복하다. 서로가 덕담을 하면서 먹기에 여념이 없다.


채석강 풍경 절벽이 마치 수만 권의 책을 쌓아 놓은 모습


헤일 수 없이 많은 세월 피도에 씻겨 만들어진 절벽이 수만 권의 책을 쌓아 놓은 형상이다.  격포 채석강은 유네스코 세계지질 공원으로 인증된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유산이다.  파도가 얼마나 센지 하얀 포말이 눈을  쏟아 놓은 장면이다. 파도는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바닷가 방파제를 걸었다. 바람이 어찌나 부는지 사람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여행은 우리만 온 것이 아니었다. 이 처럼 추운 날씨에도 사람들이 간간이 보인다. 엿도 사서 입에 넣고  우리는 깔깔거리며 소녀들처럼 웃고 떠들고 사진을 찍고 오늘 내게 주어진 시간을 즐긴다. 혼자가 아닌 같이 하는 동료가 있어 즐겁다.



바람이 거센 파도치는 포말이 마치 하얀 눈을 쏟아부어 놓은 것 같다. 수 만년 그렇게 사 계절을 보내는 바다는 말이 없지만 그 안에 무수한 생명을 안고 있다. 그 생명들이 인간들을 살려내고,  삶이란 돌고 돌아 서로의 생명을 연결 지어 주는 건 아닌지.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나는 태곳적부터 이어져 왔던 바다와 우리 인간관계의 뿌리를 생각해 본다


추워도 너무 추워 얼마쯤 걷다가 우리는 커피숍으로 피신했다. 다른 회원들도 벌써 커피숍에 모여 앉아있다. 차 한 잔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이런 잠깐의 쉼도 괜찮다. 다른 회원을 방파제 끝 등대까지 다녀오는 기염을 토한다. 용감들 하다. 나는 만약에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조심스러워 커피숍으로 피신해 왔다.


또다시 움직여 우리는 부안에서도 유명한 휘목 미술관에 도착했다. 겉에서 보기엔 건물은 낡아 보이지만 이도 콘셉트처럼 근사하다. 널따란 마당에는 아름다운 조각작품들이 우리는 반겨 주는 것 같았다. 이곳저곳  사진을 고 내부로 들어가니 고급진 가구들과 멋진 카페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커다란 티브이에서는 목소리 고운 가수의 음악이 흐르고 있다.


 마음 시린 어느 날 이곳에 와서 차 마시며 쉼을 해도 좋을 듯한 분위기였다.


미술관 카페 내부

정원에 비치된 조각 작품들

휘목 미술과 풍경들


우리는 우아하게 앉아 음악 감상도 하고 나서 그림 감상도 하고 너무 좋은 시간이다. 겨울여행이란 밖에 자연물을 바라보지 않아도 마음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생각할 수 있는 여행도 참  여유롭다.  삶을 통찰하고 사색할 수 있는 겨울여행이 주는 매력이 아닐까.


삶의 자세는 안으로 안으로 나를 챙겨야 내 삶이 더 단단해진다. 남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면 내 인생이 사라진다. 거듭거듭 챙겨 볼 일이다.



다시 이동을 하여 군산대 평생 교육원에서 수업을 하고 계시는 교수님 댁을 방문했다. 산자락 아래 고즈넉이 자리한 집은 소박했지만 그 안에 들어가니 아득하고 난방을 잘해 놓아 아주 따뜻했다. 많은 차 도구와 옛날 물건들을 많이 모아 놓아 아주 편안한 분위기다. 차와 차 도구만 바라보아도 마음이 편하다.


 차 나눔을 하는 공간은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이 있어 차와 함께 하는 널따란 차 방은 아늑했다.


팽주가 앉은자리에서 마주 보이는 산자락이  아름답다.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주변 풍경에 마음이 차분하고 숙연해진다. 교수님은 "봄 산 벚꽃이 필 때면 아름다워요."  그  말씀에  수긍이 간다. 봄이 오면 다시 와 차 한잔하고 싶다.   삶이란 소소한 일상 속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도 큰 행복이리라. 내가 꿈꾸던 삶을 교수님은 실행하고 계신다.


팽주가 우려 주는 녹차 맛은  부드럽고 포근포근한 이다.  창밖에는 흰 눈이 송이송이 떨어지고  참 평화롭고 행복하다.


차 나눔을 한 뒤 교수님은 옆방에 가시어 책을 한 아름 안고 나오신다. 부안이 낳은 신석정 시인의 시집이다. 시집을 선물 받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우리는 시 낭송가다. 신나는 일이다. 거기 모인 분들이 자연 스레 석정 시인의 시를 낭송하기 시작했다. 시는 시인이 쓰시지만 거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시 낭송가들이다.


어쩌면 신석정 시 낭송을 듣고 있노라니 마음의 움직임에 놀랍다. 서럽고 안타깝고 애잔하고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들이 시 낭송을 하며 덧씌운다.  참 멋진 장면이다. 누가 잘하고 못하고 순번이 가려지지 않는 저마다의 색깔로 시에 옷을 입혀주고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오늘의 시 낭송은 분위기  때문인지 낭송하는 시어들이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시와 삶의 이야기들, 그 진솔함에 울컥해 온다. 시를 알고, 글을 알고, 그림을 알아가는 과정은 내에게는 삶의 균형을 잡는 일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는 내 안에 잠재하는 화두다. 열심히 시와 가까이하려는 마음을 내어 보는 선물 같은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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