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석정 문학관에서 시 낭송을 했습니다
임께서 부르시면 / 신석정
가을날 노랗게 물들인 은행잎이
바람에 흔들려 휘날리듯이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호수에 안개 끼어 자욱한 밤에
말없이 재 넘는 초승달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포근히 풀린, 봄 하늘 아래
굽이 이 하늘가에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파아란 하늘에 백로가 노래하고
이른 봄 잔디밭에 스며드는 햇볕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마치 임께서 부르시는 듯 신석정시인의 시어들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몇 날을 기다려 온 오늘, 신 석정 문학관에서 실시하는 '제11회 전국 신석정 시 낭송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부안으로 향했다. 가을이 익어 가는 날, 하늘은 맑고 햇살은 보송보송 아기 볼을 만지는 느낌이다. 가을 들판은 황금색으로 벼들이 물결친다.
3000번을 외워야 시 낭송 대회에 나갈 시가 몸에 베인다는 말을 듣고 놀랐지만 모르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주변의 권유에 못 이겨 처음으로 시 낭송 대회에 신청했다. 미리 예선을 거쳐 본선인 낭송 대회를 오늘 참여한다. 떨림은 없는데, 9월 말 예기치 않은 많은 일들이 나를 힘들게 했다. 하지만 한번 도전하기로 다짐했기에 담담한 마음으로 참여를 했다.
상을 타고 싶다는 욕망은 누구나 바라는 일이지만 꼭 내가 상을 타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고 다른 시 낭송가들은 어느 시를 어떻게 낭송하는지, 듣는 것도 공부가 될 것 같았다. 나는 평소에 신석정 시인의 시를 좋아한다. 누구도 흉내 낼 없는 목가적인 시들과 자연 속에 사시면서 그 느낌을 시로 표현해 내는 감성의 시인, 사람 마음을 녹여낸 시들을 낭송하며 위로받고 서러움을 녹여내는 경험을 해왔다.
신석정 시인은 한국의 시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기신 분이다. 부안 시에서는 그분의 시 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석장 문학관을 건립하고 시를 좋아하는 많을 분들이 그분의 시를 사랑하며 방문객이 많이 찾아온다는 소문이다. 시 낭송 수업을 시작한 지 몇 년 되었지만 지금도 시 낭송은 어렵다. 시인이 써 놓으신 시를 온몸으로 채득해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무려, 시 한 편을 3000번을 외워야 대회에 나가 시 낭송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입에서 술술 나오고 몸에서 체득되기 때문일 것이다. 감정, 고저장단, 장음 단음. 발음 시를 표현해야 할 부분이 참 많았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려고 노력을 했다. 최선을 다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침 운동할 때, 길거리를 걸어가면서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을 때, 잠자기 전 수없이 시 하나가 내 몸에 베이도록 낭송을 하고 또 했다. 내가 낭송해야 할 시는 짧지 않은 시다. ' 영구차의 역사' 슬픈 감성도 마음을 울리는 아련함도 모두 표현해야 했다. 내 나이 82세, 어느 날 곧 마주해야 할 내일 이기에 더 절박한 마음이었지도 모르겠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모두가 화려한 의상으로 갈아입었고 머리는 미장원에서 화려한 코르사주도 꼽고 한껏 멋들을 냈다. 나는 원래 다도를 하면서도 그래 왔듯 머리 손질도 내가 하고 의상은 영구 차의 역사와 맞는 하얀 모시옷을 다림질해 입었다. 다도 할 때는 그냥 입었지만 시 낭송을 다르다 하여 치마 속에 베치를 입으니 초라함이 덜 했다. 아, 그래서 속에 베치를 행사 때는 입는구나 하고 알았다.
마침 날씨가 맑아 다행이었다. 나는 그 순간에도 차를 우려가 옆에서 긴장하는 분들에게 나도 나누어 드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시 낭송을 했었다. 떨리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내가 시 낭송을 할 때 앞에 앉아 계시는 심사 위원장님이 미소를 지으며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여 주셔 자신감이 생겨 내가 생각한 것보다 잘하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참가 한 분들은 24명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고 대회는 끝났다.
곧 심사를 마치고 상을 타는 사람들을 호명한다. 제일 긴장이 되는 시간이다. 맨 처음 부르는 상은 동상이었다. 그중에 내 이름도 올라 무대에 올라갔다. 내 생각해도 나는 입상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조금 건망진 생각인지 몰라도, 다른 분들 시 낭송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이란 으레 예상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대상, 금상. 은상이 발표되고 행사는 끝났다. 동상은 상장과 시 낭송가 인증증을 받았다. 지금까지 면허 없이 운전을 했다면 이젠 시 낭송가라는 면허증을 받은 느낌이었다. 그동안 수고했던 피로가 가시는 것 같았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은 한 분도 없었다. 동상이지만 금상 못지않은 무게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같이 가셨던 선생님과 함께 받은 동상이 더 빛났다. 또 다른 일행은 입상을 하지 못해 아쉬웠다. 하지만 어떻게 내 마음대로 세상이 흘러가겠는가.
이제 한 고비 고개를 넘기고 9월을 마감하다. 너무 바쁘고 너무 힘들었던 9월이 가고 있다. 10월은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설렌다. 언제나 그러하듯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