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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보내고

by 이숙자

추석 명절, 잔잔한 바다 물결이 거센 파도가 몰아 치듯 그렇게 며칠이 지나갔다. 침묵으로 덮여 있던 노 부부만 살던 집엔 활기가 돈다. 딸만 있는 우리 집은 음식 만드는 일은 모두가 내 몫이다. 딸들이 멀리 살기도 하고 모두가 직장생활로 바쁜 탓도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습관처럼 익숙한 우리 집 명절 풍경이다.


명절이 돌아오기 며칠 전부터 시장을 보고 김치를 종류별로 담가 놓는다. 그래야 딸들 집으로 돌아갈 때 가져가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반세기기 넘게 큰집에서 지내던 제사는 큰댁 형님네 부부가 돌아가신 후 멈추었다. 우리 세대는 이제는 지나간 세대다. 앞으로 일은 우리 후대가 알아서 할 일이다. 우리가 살던 데로 너희도 그렇게 제사를 해야 한다고 강요는 못한다. 젊은 세대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명절이면 삼 형제 가족이 모여 북적이며 정을 나누던 그 시절, 몸은 힘들었지만 그때가 정스럽고 좋았다. 이제는 3형제가 모이는 일은 없다. 모두 각자 알아서 성묘를 다녀오고 가야 한다. 왠지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해 온다. 아직 적응이 되지 않은 까닭도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큰집에 모여 함께 송편도 빚고 전도 부쳤지만 우리 집도 이젠 음식 준비를 해야 한다. 팔순이 넘은 남편의 도움을 받아 가며 천천히 음식 준비를 해야 했다. 나 편하자고 아무것도 준비를 하지 않는 다면 명절 분위기가 나지 않아 쓸쓸할 것 같아 해야 할 것은 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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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부터 분당에 살고 있는 셋째네 가족이 오기 시작하면서 명절이 돌아온 걸 느낀다. 명절에 찾아갈 곳이 없는 사람은 많이 외롭고 쓸쓸할 것만 같다. 반가운 사람과의 만남은 기쁨이다. 일 년 중 가장 즐거운 것이 가족들과 만남이다. 아무 일 없이 살고 있는 지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무탈한 삶이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아직은 몸이 움직일 수 있어 감사하고 다행이다. 셋째 딸 가족은 군산에 6시간 걸려 도착했다. 보통 때 같으면 2시간 30분이면 충분히 오는 거리지만 추석 명절은 언제나 차가 밀린다. 타지에 살고 있던 자녀들은 너도 나도 고향 찾기 때문에 차가 밀릴 수밖에 없다. 고생스러워도 고향을 찾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음 날은 막내딸 가족이 집에 도착을 했다. 잠 못 자고 새벽부터 출발했지만 막내네 역시 5시간이 넘게 결렸다고 한다. 하늘은 흐리고 비가 오락가락한다. 차 한잔 마시고 잠깐 쉰 후 우리는 딸네 가족들과 함께 시댁 선산 조상님들과 시아버님, 시어머님, 지난해 돌아가신 시숙님 부부가 함께 계시는 산소를 찾았다.


막내 사위는 결혼 후 처음 가보는 산소다. 비 온 뒤 산길이라 미끄러질까 조심조심 산 위를 오른다. 예전에는 큰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큰집 가족 시동생네 가족 3형제의 가족이 함께 산소를 와서 성묘를 하고 같이 점심을 먹고 헤어졌는데 큰 집 시숙과 형님이 돌아가시고 이제는 각자 알아서 산소에 다녀간다. 세월이 흐르고 모든 것은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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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님 좋아하시는 막걸리, 시어머머님 좋아하시는 환타와 과일, 전, 송편을 묘 상석에 올려놓고 절을 하면서 그분들을 기억하며 옛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으로 우리 조상 산소에 온 막내 사위는 낯선 광경에 말이 없다. 산을 내려오면서 산 밤이 떨어져 있어 밤을 주웠다. 산밤은 작지만 맛은 있다. 밤을 주울 땐 먹을 때 보다 재미있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밥상 차리는 게 힘들다고 시골 동네 맛집 막국수 집이 들어가 메밀 전과 막국수, 꿩 만두에 곁들인 막걸리 한잔을 하면서 남편은 즐거워하신다. 평소에 적적해하고 말수가 없던 남편은 자녀들이 모이니 함께 즐기는 시간이 좋으신가 보다.


카페에 가서 차도 마시고 여유로운 시간을 즐긴다.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 먼저 온 딸 먹을 반찬을 한가득 짐 싸고 보내고 다음 날 막내네도 떠나고 그다음 날 둘째 딸 가족이 온다. 모두 하룻밤씩 와서 자고 떠난다. 마치 릴레이 하듯 딸들 가족이 오고 또 떠났다. 며칠 동안 가족과의 따뜻했던 기억을 안고 우리는 또 각자의 삶을 잘 살아갈 것이다.


모두 떠난 집은 적막 만이 감돈다. 마치 파도가 한 바탕 휩쓸고 지나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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