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만난 작가 (1)
풀꽃 시 나태주 시인과 만남
일 년 전 봄이었다. 글쓰기를 하면서 부터 서점을 오가는 일이 많아졌다. 서점에서 책을 볼 수도 있지만 여러 작가들의 강연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동네 한길문고는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 서점 지원 사업'에 선정된 서점이었다. 작가가 서점에 상주해 있고 서점을 다니는 우리들은 동네 주민들과 문화 혜택을 고스란히 누릴 수 있어 너무 고맙다.
서점에서는 작가들의 강연을 듣고 우리는 학교에서 인문학 공부를 하는 학생으로 돌아간 거 같았다. 서점에 오시는 작가마다 그분들의 살아온 삶을 엿볼 수 있고 글쓰기의 기법과 문학에 대한 폭 넓은 공를 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나이탓인지 듣고 돌아서면 잃어버리고 만다.
공부도 해야 하는 때가 있나 보다. 살아가는 날들이 많아서 일까, 자꾸만 기억력이 줄어든다. 그래도 나는 강연을 듣고 에너지를 얻을 수 있어 강의 시간이 즐겁다. 콩나물을 기를대 물을 주면 물은 밑으로 빠지고 말지만 콩나물은 자란다. 나도 그럴것이다.
그날도 개나리가 막 피기 시작하는 봄밤이었다. 서점에 나태주 시인이 강연 오는 날, 나태주 시인이 온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전주, 익산에서 까지 팬들과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서점에서 이토록 많은 사람을 만나기는 처음 있는 일이다. 마치 잔칫집처럼 사람들이 웅성거렸고 떠들썩했다. 코로나 오기 이전 일이었다. 나태주 시인을 좋아하는 팬들이 많았다.
하얀 블라우스에 까만 치마를 단정히 차려입은 시 낭독 회원들도 왔고, 분위기가 마냥 들떠 있었다. 나는 개나리가 피는 계절이 오면 노란색 블라우스를 꼭 챙겨 입는다. 봄을 제대로 느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계절을 즐기는 방법이기도 하다. 오동나무 꽃이 필 때면 꽃과 똑같은 보라색 옷도 입는다. 행복이란 아주 소소한 삶의 곳곳에 관여를 해서 우리를 반긴다. 즐거움의 선택은 내 몫이다. 별일도 아니지만.
나는 노란 블라우스에 검정 정장을 입고 행사장에 가는 사람처럼 서점으로 갔다. 약간은 설레는 마음으로. 강연하는 곳에는 나태주 시인 시집이 쌓여 있고 사람들이 줄을 서서 시집을 사고 있었다. 나도 왠지 꼭 사야만 할 것 같아 시집 한 권을 사고서 자리에 가서 앉았다. 모두가 들뜨고 분위가 가 술렁거렸다.
은은한 조명 아래 시 낭송이 시작되니 마치 구름 위에 내가 앉아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감미롭고 마음은 말랑말랑 해졌다. 나는 원래 소녀 시절부터 시를 좋아했었다. 시를 읽고 있으면 맑은 시어들이 감성을 깨워 주었다. 시를 좋아하고 문학의 세계를 동경한 것은 중학교 때부터였다. 마음이 외롭고 힘들 때면 항상 시를 외우며 정신적으로 위로를 받곤 했었다.
항상 들고 다니는 가방 안에는 시집을 한 권씩 넣어 가지고 다녔다. 시간이 날 때면 시를 읽곤 마음의 여유를 찾곤 했었다. 잠들기 전 꼭 시를 한편씩 읽고서 잠이 들면 마음이 편안하고 포근한 기분이었다. 시를 읽고 있으면 시어들이 마음을 다독여 주 듯 '괜찮다' 고 위로해 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 낭송 회원들 낭송이 끝나고, 모여 앉아 있는 관객 중 시 낭송 희망자는 손을 들라고 했다. 그 말이 끝나자 바로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다도를 하면서 가끔 다시를 사람들 앞에서 낭송을 즐겨했었다. 다시 낭송하는 시간이 좋았다. 내가 만족하는 즐거운 시간이다. 그날 웬 용기였을까, 부끄럼도 없이 당당하게 무대에 올라 시를 낭송하고 내려왔다.
목소리가 예쁘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아나운서는 타고난 목소리를 지닌 사람인가 보다. 가끔이면 목소리 예쁜 사람이 좋아 보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내가 시를 낭송하는 모습을 본 배지영 작가님은 굉장했다고 말했다. 작가님은 '환상의 서점' 이란 책을 출간할 때, 내 이야기를 한 챕터 썼다. 아마도 나이 든 내가 그런 용기가 있으리란 예상을 못한 놀라움에 대한 표현이었으리라 짐작을 해 본다.
그날은 갑자기 이루어진 일이라 마음에 드는 시를 선택할 시간도 없었다. 시집을 넘기고 아무 시나 낭송을 했었다. 그날 낭송한 시가 오늘 다시 읽으니 포근하고 좋다. 여기에 낭송한 시를 다시 한번 옮겨 적어본다.
이 사람을
몸아 아파 죽을 날을 생각하니
걱정이 많아져
사다 놓고 신지 않은 양말이 몇 켤레
고무장갑 몇 개
꺼내놓고 세어보면서 아까워했다는 이 사람
하나님! 이 사람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남편 밥은 누가 해주며
방 청소는 누가 해줄 거냐며
울먹였다는 이 늙은 아낙을
하나님!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그냥 소박한 짧은 시다. 지금 다시 읽고 쓰는 순간, 마음이 먹먹해진다. 나이 탓 일까... 죽기 전 남편 걱정을 했던 순간을 시로 표현했을 것이다. 사람이 죽으려는 순간은 가장 절박하고 진실해진다. 아마 부인은 남편 걱정을 먼저 했으리라 본다. 오래 살아온 노 부부의 애틋한 심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
사람의 마음이란 다 거기서 거기 비슷한가 본다. 내가 만약 병상에 있어도 그렇게 생각을 했을 듯하다. 그저 담담히 써낸 시인데 그 안에 진한 부부애와 인간적인 따스함이 담겨있어 마음이 뭉클했다. 나태주 시인은 꾸밈이 없고 소박하고 따뜻한 사람이다.
서천 시골에서 태어나 공주에서 학업을 마치고 오랜 교사생활을 하면서 시인으로 살고 있다. 시인은 평범하고 투박한 시골 이웃집 아저씨같이 친근하다. 서천 외가 외할머니에게 자라면서 외로웠고 자연 속에 자라면서 풍부해진 감성이 시를 쓰게 되었다고 말한다. 첫사랑의 실연은 그리움과 모자란 결핍이 시를 쓰는 자양분이 되었다고 말하는 시인. 시인은 말을 참 쉽고 재미있게 하는 분이다. 인생을 달관하신 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자가용이 없이 사신다니 얼마나 검소한 삶을 사시나 싶다. 이름이 '나 태 주', ' 나 좀 태워 줘'란 뜻이란다. 남의 차를 타며 하는 말이라니 재미있는 이름 풀이다. 그렇게 말씀하시고, '허허' 너털웃음을 지으신다. 강연을 할 때도 절대로 먼저 강연료를 말씀 안 하시고 주는 대로 받는다고 하시니, 돈에도 달관하셨나?
시인의 소망은 세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 시인되는 것. 두 번째 예쁜 여자와 결혼하는 것, 세 번째 공주에 사는 것, 소박한 꿈을 꾸고 소원을 이루고 살고 있는 시인은 행복한 분이다. 병환으로 생과 사의 고개를 넘고 다시 건강을 찾은 시인은 새로 태어난 기분으로 풀꽃을 노래하고 자연에서 영감을 받고 시를 써서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해주고 살고 있는 시인의 삶이 존경스럽다.
너무 알려진 시, 정말 간단하면서도 많은 사람이 위로를 받는 시다. 대표적이 시가 풀꽃 시다.
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아주 짧으면서 다른 사람이 읽으면 묘한 위로를 받는 시다. 풀꽃 그림을 그리고 풀꽃 문학관이 있는 공주에서 살아가며 노년을 자유롭게 살고 계시는 시인. 내가 산 시집에 사인은 풀꽃 시를 써 주셨다.
나태주 시인의 사인
시인은 말씀하신다. 행복은 오늘이라는 선물이 최고의 인생이라고.
"행복이란 돌아갈 집이 있고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면 행복한 것이다. 최고의 인생은 날마다 맞이하는 일이지만 지금 하는 일이 가장 좋은 일이라 생각하고 지금 만나는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라 생각하면 당신의 하루하루는 최고의 인생이 될 것이다"라는 말을 하신다. 아주 소박한 행복, 그 말씀에 나도 위로를 받는다. 행복을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아주 커다란 것이 아니다.
"오늘이라는 선물을 받고 그대가 곁에 있어 행복하다. 아침에 일어나 맞이하는 햇빛과 새소리 맑은 바람소리도 하루의 선물이다." 시인이 말하는 행복은 별다른 게 아니다. 내가 마음으로 느끼게 되는 소소한 일이다.
사람 사는 일은 별스럽지 않다. 내 행복은 내 마음 안에 있는 것이다. 작은 것 가지고도 충분이 행복할 수 있다. 우리 곁에 이런 시인이 있어 나는 오늘 행복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오늘 여기 오신 분들도 행복하신가요? 나는 묻고 싶다. 나는 서점에서 나태주 시인을 만나고 오늘이란 선물을 받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