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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자 Apr 09. 2021

봄이 오면 진달래 화전을 부치고 봄 마중을 한다

매년 봄이면 화전을 부치고 나는 소소한 행복을 노래한다

봄이 오면 산에 진달래 피는 날만을 기다린다. 올해는 지난해 보다 꽃 소식이 빨리 왔다고 다른 지역에서는 말하지만 내가 사는 곳은 봄이 항상 뒷걸음을 치듯 늦게 걸어서 온다. 요즈음 공원 산책을 할 때마다 유심히 주변을 살펴보며 길을 걷는다. 진달래꽃은 어디에 숨어 있을까. 술래를 찾듯 두리번거린다.  


지난주 금요일이었다. 드디어 산책길에 활짝 핀 진달래를 보고 반가움에 기다리던 친구를 만난 듯 기뻤다. 산책을 같이 간 남편은 꽃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남편에게는 호수가 의자에서 기다리라는 말을 하고서  나는 꽃이 핀 언덕으로 올라가 사진을 찍으며 진달래꽃과 눈을 마주친다. 일 년 만에 만나는 꽃.


진달래은 내 오랜 친구 같다.  매년 봄이 오면 진달래 꽃을 따다가 화전을 부치고  삶의 풍요를 누린다. 이젠 부러운 게 아무것도 없다.  오직 즐거운 것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소소한 행복이다. 이 나이에  무엇을 바랄 것인가. 자연이 내어 주는 데로 자족하면서 살면 그만이다. 나는 봄이 주는 축제 같은 나날을 즐긴다. '긴 겨울 추위를 견디고 예쁘게 꽃을 피워낸 진달래꽃', 기특하고 고맙다.  진달래 꽃은  그리움의 대상이다.


그런데 그날은 아쉽게 꽃을 따서 담을 그릇이 없는 빈손이라서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마음만 졸인다. 오후에 또 진달래꽃을 따러 갈까 망설이다가 생각을 멈춘다. '그래 내일 가서 따면 되지'라고 생각하면서. '꽃이 하루에 다 지고 말지는 않겠지' 하면서 마음을 다독인다.



야속하게 주말 내내 비가 내렸지만  


다음 날 주말에는 야속하게 비가 오고, 또 다음날도 비가 왔다. 나는 진달래꽃이 지지 않을까 염려가 됐다. 빗속에라도 달려가 진달래꽃을 따서 집으로 가져오고 싶은 마음에 조급해졌다. 꽃이 지지 않을까 초조하고 염려가 되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 느껴지고 지루한 이틀을 보냈다. 진달래꽃은 꽃잎이 약해서 하루아침 비바람에 속절없이 떨어지는 꽃이다.

           

                   따가지 온 진달래 꽃은 수술을 제거하고 꽃잎만 다듬어 놓는다


월요일, 시니어 클럽을 다녀오면서 집으로 가지 않고 가방을 들고 외출복을 입은 채 월명산을 올랐다. '꽃은 괜찮겠지'라는 마음으로 발걸음이 바삐 움직인다. 다행히 꽃은 완전히 시들지 않았지만 지난 금요일 보았던 꽃만큼 싱싱하지 않았다. 그래도 지지 않고 나무에 달려 있어 기뻤다. 꽃잎이 진하고 예쁜 것만 골라 땄다. 2~3일 정도 지났는데 꽃은 벌써 시든 모습이다.


사람 사는 일도 한순간 마음을 놓으면 때를 놓치고 낭패를 보기 쉽다. 수많은 날 세월은 가고 계절은 바뀌어 봄은 다시 찾아온다. 계절은 순환을 하고 겨울이 지나면 봄은 찾아와 제자리에서 어김없이 꽃을 피워 낸다. 삶에 지치고 우울했던 우리들에게 화사한 모습으로 기쁨을 선물한다. 아무 일 없이 일 년을 살아온 우리도 감사하다.


 누구는 말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예전 젊은이들이 사월에, 결연히 나라를 위해 숨져간 영령들의 슬픈 이야기는 잊히지 않아  마음이 아려온다. 먼 곳에서 라도 부디 평안하기를 빌어본다.  


진달래를 따다가 화전을 부쳐 한 잔의 차를 마실 때가 느끼는 충족감은 삶의 기쁨이고 계절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환희다. 잠자고 있던 대지도 온통 푸르름으로 새로운 생명이 깨어난다. 갖가지 꽃들은 피어 봄은 마치 천연물감을 풀어놓은 듯 아름답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 겨울 동안 움츠렸던 마음도 부풀어 오르고 환해진다. 산다는 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삶이란 순간이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다 자기만의 정해진 때가 있다. 그때를 놓치면 자기의 몫은 소멸하고 만다. 봄이 오면 나는 가슴부터 두근거린다. 봄에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자칫 마음을 놓으면  지나가 버리는 일들, 긴장을 하고 시간을 붙잡는다. 화전을 부치는 일도 그중에 하나다.

            


              동그랗게 만들어 놓은 새알 화전 하기 전 만들어 동그랗게 만들어 놓은 것



                      프 라이 팬에 올려놓은 화전 풀라 팬에 서 기름을 넣고 지진다


 화전을 부치는 것은 의외로 쉽다. 찹쌀을 3시간 이상 물에 불린 후 방앗간에 가서 빻아온다. 그다음 팔팔 끓인 물로 반죽을 한다. 그런 다음 팥죽 새알처럼 동글하게 만들어 동그랗게 늘려 프라이 팬에 기름을 두른 다름 지진다.


한쪽을 익힌 후 뒤집은 뒤 다듬어 놓은 꽃을 올리고, 아래 부분이 익으면 화전이 된다. 그럴 때 재빨리 꺼내 꿀을 바르고 예쁘게 담아 먹으면 된다. 생각보다 쉽다. 매년 하다 보면 숙련이 되어서 재미있는 봄놀이다.


화전을 부친다, 화사한 봄이 온다

           

                             만들어 놓은 화전 완성된 화전 접시에 예쁘게 담아 놓는다


                                 만들어 놓은 화전 사각 접시에 담아 놓은 화전


나는 매년 화전을 부치고 봄 마중을 하듯 계절을 보낸다. 살면서 내가 몇 번이나 이 봄을 맞이하고 화전을 부칠까, 나이가 들면서 하루하루 보내는 시간이 소중하다. 오늘이 지나면 오늘이 오지 않을 것처럼 살아간다. 내일 일도 모르고 사는 게 우리네 삶인 것이다.


화전을 부치는 일은 마음만 내는 되는 일, 나는 '봄이 오면' 노래를 흥얼거리면 살아가는 시름도, 코로나의 아픔도 눈 녹듯 사라진다. 인생이란 사는 게 별 건가, 하고서 마음속으로 중얼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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