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혼 54년 차, 황혼을 바라보는 세대다. 어떻게 이 처럼 오랜 세월을 같이 살아왔는지, 내가 생각해도 놀랍기만 하다. 내 나이 20대에 선을 보고 4개월 만에 결혼을 했다. 남편의 나이 32살, 나는 26살이었다. 남편의 나이가 노총각이라 마음이 바빴던 이유였다. 지금은 말도 안 되지만 그때는 32살도 노총각이었다.
남편의 권유에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이 엉겁결에 결혼을 하고 살던 곳을 떠나 새로 시작하는 결혼 생활은 모든 것이 낯설었다. 남편과 만남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니 결혼은 했지만 남편은 서먹하기만 했다. 더군다나 남편은 말이 별로 없어 더 어려웠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되는 옛날이야기다.
내 삶의 궤적을 되돌려 보면 말도 안 되는 그런 시절을 살아냈다. 그때는 그렇게만 사는 줄 알았다. 결혼 후 바로 시댁에서 보름 정도 살다가 셋방을 얻어 살림을 새로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변이 생겼다. 시골 사는 둘째 시누의 아이들 셋을 나에게 맡겼다. 밥해주고 도시락을 세 개 싸주고 , 생각하면 어이없는 경우였다.
내가 아이를 낳고 난 후, 나는 단호히 말했다. " 나 힘들어, 당신 누나 애들 밥 못해 주어요" 결혼 후 2년이 지나고 난 후였다. 그때는 남편도 어쩔 수 없는지 누나에게 말해서 애들은 방을 얻어 독립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일은 참으로 어이없고 화가 나는 일이다. 세월이 가면서 잊히기는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무례한 일이었다.
행복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그냥 매일 삶의 굴레 안에서 일상들을 살아 냈다.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단지 내가 해야 하는 삶의 무게를 견뎌낸 세월이다. 아이들 하나 둘 낳고 살아가면서 어느 날부터는 결혼이란 것이 내가 안정을 하고 살 수 있는 따듯한 둥지라는 것을 알면서 결혼이 주는 안정감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나를 지켜 주는 버팀목이구나'라는 생각에 남편이 고맙고 한편 든든해졌다.
남남인 사람들이 부부로 만나서 자식 낳아 기르고 결혼까지 시키고 반백 년을 살아 냈으니, 긴 긴 세월이다. 말을 하자면 사연이 많기도 하다. 그 수많은 날들의 사연을 말로는 다 할 수 없다. 서로가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생각하는 가치와 취향이 다른 사람이 한 집에서 완전히 한 마음이 되어 살아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부부는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서로 맞추어 가며 살아가는 삶의 동반자다.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존중과 배려가 없는 관계는 쌓았다 허물어지는 모래성과 똑같다. 존중과 이해가 동반되어야 평화롭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부단히 참고 인내하므로 성숙한 인격체로 살아갈 수 있다.
내가 이 만큼 살아보니 부부란 평행선을 달리는 기차 철로와도 같다. 그래야 만 목적지까지 잘 도착할 수 있다. 젊어서는 서로의 생활 패턴이 달라 싸우고, 생각이 달라 싸우고, 취향이 달라서도 싸웠다. 우리 세대 남자들은 절대로 여자에게 져주지를 않는다.
항상 우리 가정의 주도권은 남편이 가지고 있다. 나는 남편에게 가정에서 존재가치를 가지도록 자리를 만들어 준다. 경제권도 주고 일부러 돈도 달라고 해서 쓴다. 그래야 남자는 힘이 있다. 지갑에서 돈 내어 줄 때 남자는 가장이라는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한다.
이기려고 싸우면 힘든다. 결국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그게 진리다. 사람 관계도 마찬 가지다. 이기려고만 하면 절대 지지 않으려고 갈등만 초래하고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부부가 잘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고 어려운 일이다. 무단히 노력을 하고 인내를 할 때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살아오면서 느낀 점이다.
누구 한 사람이 져주고 존중할 때 원만한 관계가 이어진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지키려는 자존감이 있으므로 나를 비워 내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오랜 시간 치열하게 다투고 갈등 관계에서 벗어나 서로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인생의 마무리를 같이 해야 할 사람, 곧바로 남편은 내 인생인 것이다.
그 사람의 삶을 이해해 주고 서로 자기 역할을 분담하면서 살아가는 일도 중요한 일이 될 수 있다. 집안일도 나눠해야 하지, 혼자만 하도록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일은 상대를 힘들게 하는 일이다. 이제는 다툼을 피하는 방법도 알게 된다. 나이가 들면서 서로 소중함을 알아가는 과정이라서 더 그렇다. 서로가 애틋해진다.
남편은 호랑이 나는 원숭이. 원숭이가 호랑이를 이기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나이가 들면서 내려놓고 나를 조율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사람 사는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사는 것은 견디는 일이다. 혼자 살 용기가 없으면 같이 사는 사람에게 잘 적응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야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나는 이제 방관자가 되었다. 남편이 하고 싶은 대로 살도록 무심하게 두고, 내 할 일만 찾아서 한다. 마음을 비우니 평화롭다. 예전에는 마음대로 못하고 사는 것이 그토록 힘들었는데 이제는 참아내니까 견딜 만하다. 남편이 살아 있는 자체로 감사하고 고맙다. 남편 나이가 팔순이 넘어가면서 주변에서 자꾸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아지고 아니면 아파서 누워 계시는 분들이 늘어난다.
날마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면 새로 만난 사람처럼 반갑게 남편에게 인사를 한다. " 잘 주무셨어요?" 나이가 들면 부부는 서로 의지하는 동반자이면서 친구와 같다. 하루 일과를 거의 같이 시간을 보낸다. 말을 하지 않지만 한 공간 안에 사람이 같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사람이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하고 의지가 된다. 남편은 거실에서 TV 하고 놀고 나는 서재에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며 논다.
이제 우리는 언제 서로 헤어질지 모르는 나이다. 나는 매일 남편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가 편히 지내도록 마음을 다 한다. 이날까지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한 사람, '인생 헛살지 않았구나' 생각할 수 있도록 마음을 채워주고 싶다. 사람이 살다 보면 왜 마음 상하고 미운 날도 없을까. 그래도 홀로 남았을 때 되도록 후회하지 않도록 살아가려 한다.
사람이 남남끼리 만나 부부가 되어 삶을 살다가 마무리하는 것은 인생이라는 연극을 한 편을 남기고 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하고 반세기가 지나고서야 나는 부부의 애잔하고 진한 정을 느끼며 인생이란 이런 거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남편이 내 삶에서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가를 생각하는 날이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