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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자 Oct 17. 2021

내년에도 오늘처럼 모일 수 있을까?

천안 친구 집에서 일 박 이일  추억 만들기


 2년 만에 천안 가는 버스를 탔다. 군산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고 천안 버스시간표가 바뀌어졌으면 어떡하지? 조금은 걱정을 하면서 버스표 사는 창구로 가서 물어보니 걱정과 다르게 시간표가 바뀌지 않았다. 군산에서 천안 가는 버스는 사람이 별로 없다. 천안 가는 사람이 많지 않아 혹시나 버스 노선이 없어지지 않았나 염려를 했었다. 버스를 탈 수 있어 다행이었다. 


오늘은 천안 시골 전원주택에서 오래된 친구 둘과 만나는 날이다. 


군산에서 출발한 버스는 장항에서 젊은이마저 내리고 커다란 버스는 나 혼자만  태우고 서천으로 향한다.  버스는 장항과 서천을 거쳐 천안까지 가는 노선이다. 서천에서 두 사람을 더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린다. 서해안 사람들은 천안 갈 일이 없나 보다. 이러다 버스 노선이 없어지지 않을까 살짝 염려된다. 


왜냐하면 나는 이 시간대 버스로 천안 친구 집을 다니기 때문이다. 정부의 보조금이 아니면 많은 적자가 날듯하다. 예전 자가용이 없던 시절은 모든 교통수단은 버스와 기차였다. 지금은 차 없는 집이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은 차가 많다. 나이 들면 대중교통이 편하다. 신경 쓸 일이 없어서다.


차창밖을 바라보니 들녘에 벼들은 누렇게 된 벼들도 있고 아직은 파란색이 가시지 않는 벼들이 조각보를 펼쳐 놓은 듯 아름답다. 누렇게 익어 고개 숙인 벼들만 바라보아도 마음이 풍요롭다. 창밖 멀리 산과 들녘 끝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이 정겹다. 사람들 사는 마을과 나무들을 바라보며 생각은 꼬리를 물고 지나간다. 저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아갈까? 혼자 사색을 하며 여행한다고 생각하니 퍽 기분이 좋다.


 농부들은 저 많은 논에 농사를 짓고 일 년을 살아 내고 또 이어지고 반복되는 삶을 살아 낼 것이다. 삶이란 쉼 없이 돌고 도는 인생의 수례 바퀴와 같다. 조상 대대로 이어온 일상들이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도시로 나가고 나이 든 세대가 세상을 뜨면 누가 농사일을 할까? 앞으로의 세상은 어떠한 변화가 올지 상상이 안된다.


 군산에서 2시간을 달리면 버스는 천안 터미널에 도착을 한다. 매년 봄가을 두 번씩 만나던 모임은 코로나가 오면서 중단되었다. 코로나 종식되기를 기다렸지만 멈출 기미가 보이 지를 않았다.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허전함을 견뎌야 하는 날들이었다. 가끔씩 전화로만 안부를 물어 오고 드디어 오늘 만나는 날이다.


코로나가 오면서 세상은 수없이 많은 고난을 겪었다. 이제는 담담히 현실을 직시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체념을 하면서 보낸 시간이다. 오늘 모이는 사람들은 거의가 80대라서 백신은 다 맞았다. 정부의 방역 방침이 백신을 맞은 사람에 한해서 8명까지는 모여도 괜찮다는 말을 듣고 모임을 하기로 했다.


 살아있는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만난다.


모임을 하는 사람들은 전주와 남원에서 버스를 타고 와서 천안 터미널에서 만난다. 이번에 만남은 예전에는 느끼지 못하는 기분이 든다. 우리는 10년 전부터 모임을 해 오고 있다. 벌써 한 사람을 세상을 떠나고 두 사람은 건강이 허락지 못해 참여를 못한다. 아무 일없이 살아서 만난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반가워 울컥해진다. 


살아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세월이 가면서 느끼는 마음이다. 


전주에서 온 나이 든 언니는 옛날 사람이라 먹을 반찬을 한 보따리 가지고 온다. "아니 노인네가 이 무거운 걸 왜 들고 다니셔? 하면서 나는 핀잔을 해도 다 받아 준다." 만나면 먹을 것이 있어야지." 고추장 된장 청국장 김치 전주의 유명한 콩나물도 한동이 통째로 사 가지고 온다. 어쩌면 이런 따뜻한 마음이 사람을 더 끈끈한 정으로  묶어 놓는 듯하다.  


우리는 모두 네 사람이 만나 택시를 타고 친구네 전원주택으로 간다. 매번 오지만 길은 낯설다. 나머지 두 사람은 서울에서 내려온다. 주인은 서울에서 살고 있지만 내일 내려온다고 한다. 처음 시작은 10명이었지만 지금은 7명뿐이다. 세월이 가면서 우리는 이별과 마주 하고 살아간다. 


 남원에서 오는 분은 도토리 묵 한 박스 김부각 한 박스 먹을 것 잔치다. 참 마음이 따뜻한 분들이다. 친구 집은 산아래 아늑히 지어 놓은 전원주택이다. 손님 맞을 준비를 항상 해 놓는다. 친구 집은 주인이 따로 없다. 우리가 가면 우리가 주인이 된다. 그곳에서 우리는 마음속 회포를 풀고 자연 속에서 마음껏 휠링을 한다.



산 옆에 지어놓은 명 안정 누각                             밤나무 아래 밥을 줍는다


텃밭만 나가면 야채들이 잔뜩이다. 가을 야채를 가지고 금방 요리를 하면 싱그럽고 맛있다. 우리는 산아래 밤나무 밑으로 밤을 주으러 올라간다. 가을밤은 먹는 것보다 떨어진 밤을 주을 때 더 재미있다. 가시 있는 밤송이 속에는 알밤이 들어있어 막대기로 밤을 꺼내여 줍는다. 토실토실한 밤알은 사서 먹는 밤과는 또 다른 맛이다.


저녁밥은 내 손맛을 나게 하는 좋은 기회다. 언제나 요리 담당은 내 차지다. 텃밭에 있는 연한 무 잎을 따다가 겉절이를 하고 또 시래기는 삶아 된장 고주장 갖은 양념하고 고등어 통조림 넣고 푹 끓이면 어떤 반찬도 필요 없다. 새로 사 온 오이도 상큼하무치고 따놓은 풋고추로 전을 부치면 맛있다. 금방 만든 몇 가지 반찬으로 사람들은  "맛있다" 탄성을 지르며 먹는다. 


금방 텃밭에서 재료를 가져다 만든 음식은 맛있다. 창찬해 주는  말에 신바람이 나서 팔 걷어 부치고 음식을 만든다. 아마도 음식 하는 사람 기분 좋으라 하는 거겠지 생각한다. 설거지 담당은 따로 있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저마다 특별한 달란트를 가진 사람이 있다. 말 잘하는 말 박사 언니는 노래도 잘하고 이야기도 어쩌면 그리 재미있게 하는지 그 이야기 속으로 사람들은 빠져든다.


산에서 주은 밤은 산밤이라 적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낮에 주어온 조그만 밤을 삶아 차하고 먹으며 온갖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옛날 과거를 다 아는 관계들이다. 거짓말을 할 수 없다. 첫사랑이야기는 항상 기본이고 결혼 생활 이야기부터 사는 이야기가 그치질 않고 밤이 이슥하도록 이야기 꽃을 피운다. 밤까 먹고  차마 시며 추억을 불러오는 시간이다.

 나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서 마음이 시큰해진다. 내년이면 오늘과 같은 날이 올까?


우리 삶은 매일 예측할 수 없는 시간 속에 살아가고 있다. 예전에 조금 미웁고 섭섭했던 사람도 이제는 다 사라지고 초연해진다. 미운 사람조차 소중한 사람으로 남는다. 내 편협된 모습이  달라진 것은 글을 쓰면 서다. 나 보다 상대의 마음을 바라보며 넉넉해졌다. 성숙한 모습으로 나를 조율할 줄 아는 변화가 찾아오고 마음이 평화롭다. 미운 사람이 없어졌다.


사람은 사람이 힘이다. 살면서 내 삶을 오랫동안 공유하고 추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감사하다. 다른 무엇보다 이런 멋진 쉼터 같은 공간을 마련해 놓고 많은 걸 베푸는 친구가 있어 너무 고맙고 복 벋은 사람들이다. 친구 집에서 먹고 자고 집에 올 때는 가방 가득 들고 온다. 떨어진 밤을 주워 한 봉지, 밭에 있는 요것 저것까지 가방 가득 가지고 돌아온다. 언제나 금일봉 넉넉한 차비 봉투까지,


모든 사람은 세월이 가면서 이별과 마주 한다. 아무리 거부해도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다. 살아 있을 때 만나며 삶을 충전하고 살아야 할 것만 같다. 만나면 서로에게 응원과 격려를 받고 헤어져 다음 만날 날을 기약한다.  우리는 만나면  삶의 위로이며 행복이다. 부디 모두 행복하고 오래오래 건강하길 두 손 모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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