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고 간결한 삶이 만드는 것
<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기에 꾸준히 인간관계를 해야만 한다. 날마다 마주하게 되는 남편과의 관계, 가족과 친구, 일상 속에서 함께하는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접하게 되는 게 우리 일상 모습이다. 그 관계 속에서 때로는 행복하고 때로는 아프고, 힘이 든다. 그 중심에는 말이 자리한다고 생각하면서 <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를 읽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로 불편한 말을 삼가며 부드럽고 상황에 알맞은 말로서 사려 깊은 처신을 하려고 노력을 한다. 배려가 상대와 원만한 관계로 유지하리라 본다. 나는 불필요한 오해와 힘든 상황을 피하고 갈등을 줄이기 위해 항상 말을 하기 전 조심을 한다. 같은 뜻이라 해도 상대가 들으면 기분 나쁘지 않게 말을 해도 될 터인데 꼭 자기 생각만 주입을 해서 말을 하면 기분이 좋지는 않다. 때로는 겪게 되는 일, 내 생각인데 너는 그렇게 해야 해, 하는 말은 명령문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몸과 마음을 '사리는 시대잖아'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몸과 마음을 사리고 예민해지고 조심스러워하고 쉽게 상처를 받고 너무 가까워지면 과한 기대를 한 만큼 실망도 클까 봐 지레 겁먹고 내가 마음 준 만큼 돌려받지 못하면 억울해하고.....
그러다 보니 일종의 인간관계를 처세술처럼 적절한 거리를 둬서 나를 지키겠다 같은 강박이 생기는데 그게 역으로 보면 그만큼 개입하진 않겠다는, 식의 발뺌처럼 느껴져셔 서운하고 외롭다. " 책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중에서
시대의 변화 흐름만큼 사람의 마음도 변화도 따라온다. 예전에는 남편이 직장 나가고 아이들이 학교 가고 나면은 친구와 전화로 시시콜콜 일기를 쓰듯 일상을 보고 하고 자기 마음의 상태까지 공유하고 서로 추임새까지 넣어가며 맞장구를 치고 그것도 모자라 만나서 시간을 보내며 정보도 나누고, 맛있는 것도 먹고, 소소한 일상들이 행복이라 생각하면서 살았던 때가 있었다. 외롭다고 느낄 시간적 공간이 없이 그냥 바빴다.
지금 현실은 모든 문화가 발전하고 살기 편리한 문명의 이기가 사람과 사람의 간격을 멀게 하고 삭막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서로가 마음의 벽을 쌓고 서로 상처 받지 않기 위한 마음으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기 일에만 몰두하고 살고 있다.
남을 위한 시간을 내어 주지 않는 야박하고 삭막한 현실이 되고 말았다. 그만큼 사는 게 복잡해진 이유이기도 하다. 아파트에 살면서도 앞에 사는 이웃과도 서로 차 한잔도 나누지 않는다. 세대다 다른 탓도있지만 절대로 남에게 내 시간을 내어 주고 신경을 쓰지 않으려는 마음도 있다.
"전화 통화보다도 문자 메시지를 선호하고 시간 내어 직접 만나는 번거로음 보다도 간결하게 순간순간 외로움을 해소해 주는 온라인 대화에 안주한다. 그러다가도 불쑥 막막할 정도로 고독 해지면, 나의 깊은 속 마음을 누가 먼저 알라 차려 주길 바라는 욕구는 커져간다. "
요즈음 대체로 자기의 마음에 벽을 만들어 놓고 타인과의 거리를 두고 외로움을 친구처럼 여기고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복잡함을 싫어하며 자기가 하고 싶은 자아 실현에 더 집중하며 바쁘게들 살고 있다. 생각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의 피곤함이 싫어 같이 시간을 보내는 끼리끼리 문화도 자꾸 줄어든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기를 지키고 살겠다는 자존감의 문제도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어떤 때는 이안진 교수의 에세이에 나오는' 지란지교'의 친구관계가 그립기도 하다. 아무 생각 없이 언제라도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아플 때는 위로의 말을 받으며 나의 허물까지도 다 받아 주는 사람이 아쉽다. 같이 사는 남편에게도 가려야 할 말이 있다. 본인이 이해를 못 하는 부분을 설득하려면은 충돌이 오는 경우 때문에 피해야 때가있다.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는 생각의 차이가 크고 성격적인 성향도 있다.
서로가 다름을 인정해야 하는데도,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의 시기 30대, 부터 70대까지 나는 거쳐온 세대가 길기도 하다. 지난 시대별로 어떤 관계로 어떻게 살아왔나 되돌려 생각을 한다. 변화된 세상만큼 사람들 생활 방식도 많이 달라져서 나는 지금 적응이 되지 않는 새로운 변화에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중이다. 예전 따스했던 아날로그 시대가 그립기도 하다.
30년 지기 오랜 인연도 예전에 거의 전화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인생을 꿈꾸고 활력을 얻고 살았지만 지금은 꼭 필요한 사무적인 연락만 하게 되는 메마른 상황이 가끔은 허전하기만 하다. 나이 탓인지 아님 간결한 삶을 추구하는 요즈음의 생활 패턴인지, 왜 그러냐고 묻기보다도 서로의 삶을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도 해 본다. 나이 때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복잡한 삶보다도 간결하고 조용한 삶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에너지를 축적하며 나답게 사는 삶이지 않을까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나의 캐랜시아를 찾아 즐기는 것이다.
가만히 앉았어도 세월은 간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변화가 오면 오는 대로 무심히 다 받아들이고 담담히 모든 걸 다 안으며 살아가야 하는 자세가 우리네 삶에 길이 아닌지 생각을 해 본다.
<가장 자기다운 삶을 살야 내는 것이 캐랜시아란 한다. 누군가 말했다. 인생은 쉼표없는 악보와 같기때문에 연주자가 필요 할 때마다 스스로 쉼표를 메겨가며 연주를 해야 하는 일이다.
인간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안에는 새로워 지려는 다시 생기를 얻으려는 본능이 있다. 삶이 메물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치유하고 온전 해 지려는 의지가 있다. 우리안에는 새로워지려는 본능이 았다. 사람의 의지와 꿈을 되찻게 하는일도 캐란시아에 있다
.자연과 연결되는 장소 자연과 하나되는 것처럼 우리를 회복시키는것은 없다. 삶에서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정신이 고갈되어 자신을 잃어 버릴때 자신의 캐핸시아를 찾아야 한다. 나의 캐랜시아는 어디인가 온전히 나 자신답고 나의 캐랜시아 같는 것이 나의 삶을 지키고 나를 찾는 것이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 보지 않느다.> 책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