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사람일수록 바람에 새기는 것이다

이영산 작가 강연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

by 이숙자



이 영산 작가는 재담이 넘치는 아주 재미있는 분이다. 작가 강연이 있는 날, 내가 만난 작가 중에 이렇게 유쾌한 분이 있었던가 싶다. 약속보다 5분쯤 늦게 강연 장소에 도착했고 지금 자기의 애마, 페라리를 타고 서해안을 날아왔는데 늦었다고 유쾌한 농담을 날린다. 키가 남달리 크고 파마머리에 얼굴은 장난기가 가득 넘쳐 난다. 어떤 말을 해도 재미있고 거부감이 없는 그런 분이다.



지난번 약속했던 강연 날에 갑자기 복막염으로 수술하고, 얼마 되지 않았는데 강연하기 위해 군산에 내려오게 되었다. 작가님 말이 재미있어 우리가 많이 웃으면 작가님은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많이 웃지 말라고 했는데" 하며 또 웃긴다. 사람 마음을 사로잡고 웃기는 것도 능력 중에 하나이다. 그러면서 자기는 우리나라 유명한 작가들도 두렵지 않고, 신경이 안 쓰이는데 여기 모인 분들이 두렵다고, 또 한 번 웃으며 멘트를 날린다.


강연하는 김영산 작가 몽골 사막 사진


왜냐하면 작가 강연을 기획하고 있는 이곳 배지영 작가와는 고향 동문이라서 사이가 막역하다고 한다. 두 분의 유모가 만만치 않다. 작가 섭외 메일을 보내면서, 이곳에 와서 강연할 때 강연 듣는 분들은 글도 잘 쓰고 책도 많이 보는 분이니 잘 알아서 신경 쓰라고 했던, 배 작가님 말에 긴장했다고 말을 한다. 우리는 또한 번 웃을 수뿐이 없다. 오늘 이곳은 강연 장소인지, 두 분의 유머 대회인지 알 수가 없다. 재미있고 유쾌하다.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 저자인 작가는 영광에서 태어나 전남대 법대를 나오고 여행차 멋모르고 찾아간 몽골 초원에서 원형의 인간성을 지닌 유목민을 만났고 그 대지와 사람에게 반해 몽골을 공부하고 여행하며 삶의 대부분을 보냈다. 몽골 현지 여행사를 운영하며 한몽 대학 유목 대축제 등 다수의 행사를 기획 진행했으며 현제 몽골 전문 출판사 꿈엔들 대표로 있다.


작가에게 꿈이 있다면 원주민의 곤혹과 딜레마에 무관한 여행자가 아니라 유목민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나는 몽골 하면은 떠오르는 생각은 드넓은 초원에 말을 타고 달리고, 낙타와 양과 염소들을 떠올리고, 가끔가다가 게르가 있고,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들이 아름답고, 가도 가도 끝없이 넓은 대지 위에 나무 한 그루 없이 추운 곳에서 살아가는 유목민의 고달픈 삶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영산 작가의 강연과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라는 책을 읽게 되면서 모르는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에 나오는 몽골인 비지 아가 주인공이면서 작가와 함께 몽골 여행을 하고 그의 삶을 통해 몽골과 유목민의 삶을 깊이 있고 넓게 펼쳐 놓는다. 우리가 몰랐던 인간 삶의 우주관, 세계관, 역사를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알게 되었다. 몽골에는 가도 가도 사람들이 보이 지를 않는다. 어쩌다 길을 지나가는 차를 보게 되면 10킬로가 족히 되는 길도 쉬지 않고 달려와 차를 막아서면서 인사를 나눈다.


"어디서 온 누구냐, 어디로 가는 냐" 그렇게 시답지 않은 질문과 대담을 주고받으며 담배를 두어 개비 함께 피우고 유유히 떠나간다고 말한다. 그 근방 사는 유목민이고 사람이 그리운 곳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인생에서 한번 만나면 다시는 못 만날 인연이라는 생각에 헤어질 때에도 작별 인사가 삽십 분쯤 걸리는 일은 다반사라 한다. 유목민들은 유목하는 곳은 자기 영지라 부른다.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그냥 보낼 수 없어 인사하러 달려온다고 하니 사람이 많이 사는 도시 문화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문화이다.


또한 유목민들은 자기 집에 오는 사람들을 그냥 보내는 법이 절대 없다. 꼭 음식을 먹여 환대를 하고 보낸다. 주인이 외출하고 없어도 식탁에 음식을 만들어 놓고 누구라도 들어와 음식을 먹고 갈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놓는다. 전통이라고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유목민은 척박한 환경에 살다 보니 음식은 생명을 유지하는 생존과 연관된다고 믿는다. 그들의 인생관이 가히 존경스럽고 지혜롭다.



그뿐만이 아니다. 물이 귀한 몽골에는 가끔가다 물이 나오는 우물 구멍이 있다. 그곳을 만나면 옆에 있는 구유에 물을 길어 유목하던 낙타와 말. 소, 염소와 양의 순서로 물을 먹고 초원으로 흩어지면, 두레박질을 계속해서 비어있는 구유에 넘실거릴 때까지 물을 채워 놓는다고 한다. 그건 야생동물의 몫이다. 사람을 헤치는 늑대와 여우에게 까지 정을 베푸는 유목민들의 인정과 사랑법이 고귀하다. 모든 살아있는 것에 대한 축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구유에 있는 물을 먹는 낙타들


" 사람만이 아니라 야생동물을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저 유목민들은 대단한 사람들이다. 내가 직접 보지 않고 누군가에게 " 아직도 지상 어딘가에는 그런 사람들이 살고 있다" 고 전해 들었다면 나는 결코 믿지 못했을 것이다. 지하철 출근마다 사람에게 치이고, 길을 가다가도 어깨에 부딪치고도 서로 모른 척 지나기 일쑤인 세상에 살다 보니 잊고 살았던 사람살이의 귀한 마음이 거기 있었다. 그곳이 오랑캐의 땅이란 말이다, "



"몽골 초원은 모든 게 아름다웠다. 하늘은 너무 푸르러 눈부셨고 땅은 너무 넓어 그 끝을 볼 수 없었다. 가끔씩 만나는 물웅덩이마다 소떼 말 떼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어디에나 양과 염소가 어우러져 풀을 뜯고 있었다. 그런데 그 소란스러운 움직임들이 넓고 넓은 대지에 갇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바람도 햇살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듯" ,



하늘과 땅 사이를 침묵과 고요가 가득 누르고 있었다. 아무 까닭이 없이 눈물이 나니, 사랑을 잃은 사람이 온다면 얼마나 좋은 땅인가, 아니 독방에 갇힌 듯 고독하여 자신이 돌 해지니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이에게 좋은 곳일지도 모른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외로운 길, 사막의 길, 그 넓은 500만 평에 흐드러진 보랏빛 엉겅퀴와 하얗고 소박한 파꽃은 장관이다.


"이 책의 주인공 비지 아가 태어난 마을은 알타이산의 주봉 이름을 딴 몽희 하이르항 솜인데 이천 명쯤 되는 마음 사람들이 모두 오리 앙카 지 부족민이다. 칭기즈칸의 정복전쟁 시대부터 청나라와 독립전쟁까지 활약한 몽골 기마병 중에서도 가장 용맹했던 부족의 후예인 것이다. 중국에서는 전쟁 때마다 선봉에서 달려오는 오리 앙카의 부족 때문에 이만저만 곤란한 것이 아니었다. 저주와 분노의 뜻이 한껏 담겨 오리 앙카 이는 '오랑캐'가 된다." p23


"많은 일을 경험해해야 사람이 되고 알타이 산을 넘어봐야 말이 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내가 진짜 유목민인 거지, " 그렇다. 비지 아는 이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인 것이다. 12세기 이후 인류가 이 지역 사람들에게 부여한 보편적 이름은 몽골리안이다. 가슴속에 알타이를 품고 어린 날 유목민으로 살았던 비지 아는 고등학교를 울란바토르에서 다녔다. 고등학교 졸업 후 유목생활을 하다가 늦은 나이에 몽골국립대 한국어 학과를 졸업했고, 지금은 한국의 C 도시에서 몽골학과 교수가 되었다.


"야호"는 누구나 산 정상에 오르면 탁 트인 세상을 향해 외치는 소리이다. 그러나 누구나 그 뜻을 알지는 못하는 말이다. 몽골어로 ' 가다'라는 '야(와) 호'가 된다. 정확한 발음을 한국어로 적을 수는 없지만 '야 아호' 또는 ' 야호'가 원음에 가깝다. 야- 호, 이 말도 몽골어의 '갈까요, 이 말에서 왔던 것이다." 이제까지 몰랐던 일이다.


몽골인들의 장례문화는 풍장이다.


" 그리운 사람일 수 록 바람에 새기는 것이다" 바람 속에 살던 삶, 그대로 바람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조촐한 장례를 치른다. 몇 잔의 술을 마시고 양고기를 나눠 먹고 하늘에 별이 가득할 무렵 나이 지긋한 노인이 달구지를 끌고 온다. 그리곤 하얀 천에 싼 시신을 싣는다. 화요일을 제외한 어느 길일 이어야 한다.



노인은 독한 보드카를 들이키며 덜그럭 덜그럭 울퉁 불퉁한 초원길을 하염없이 돌아다닌다. 노인이 만취하여 집으로 돌아올 즈음, 뒤에 실려있던 시신은 어딘지 모를 대지 위에 떨어지고 없다. 초원의 땅에서 바람과 같이 살던 사람은 바람 속으로 사라진다. 땅에 버려진 시신은 안내자가 늑대이다. 인간이 육신을 버리고 영혼이 되어 하늘로 오르는 일, 그런 장례문화가 몽골인의 풍습이다.



유목민들의 삶은 욕심이 없다. 돈을 모른다. "있는 데로 먹고 되는 데로 산다. 살면 살고 죽으면 죽는 거지" 삶에 연연하지 않는 초연함이 있다. 유목민이 생각하는 시간은 개념이 다르다. 늘 이사를 하는 사람들인 지라 그들은 거주지 개념이 미약한 대신 시간에 대한 개념은 철저하다. ' 밤과 새벽이 헤어지는 시간' 어둠이 뚜껑을 닫는 시간'이라는 표현을 쓰고 한 달의 시간, 일 년의 시간을 안다. P 335



"유목민에게는 스스로 자신의 죽음 선택하는 의식이 있다. 그 모습은 어쩌면 유목민의 세게 관을 보여 주는 정수처럼 느껴진다. 나이 들어 이틀 사흘 이삿길을 함께 하지 못할 정도가 되면 노인 스스로 죽음을 준비한다. 죽음을 앞둔 노인이 떡 벌어지게 차려진 음식상을 받는다. 가족과 친지들, 동네 친구까지 모두 모인 흥겨운 잔치가 벌어진다.



즐거운 술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주인공 노인이 잔칫상의 머리맡에 정좌를 앉는다. 노인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고기라는 양의 엉덩이 비계를 입에 넣는다. 눈을 감고 편안히 앉아 있는 노인 앞으로 걸음마를 막뗀 어린 손자가 다가선다. 그리고 입에 문 양의 넓적다리뼈를 툭 쳐서 비곗덩어리를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는다. 비계가 숨길을 막아 순식간에 노인은 죽음을 맞는다." p 338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우리가 생각하는 문화 하고는 상상이 가지 않은 비정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과 유목민이 사는 땅은 다르다. 바다와 강에 들러 쌓인 비옥한 지역이 아니다. 그들은 언제나 이동을 해야 하고 사냥을 못하면 굶어 죽는다. 척박하고 거친 땅, 기온은 영하 50도를 오르내리는 지역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들만의 삶에 조건을 찾아야 했다.



"적어도 유목민의 죽음은 고독사는 아니다. 부족한 데서 생긴 충만, 갇힌 데서 생긴 자유이겠지만 자신이 죽는 시간이 더없이 정직하고 인간적으로 행해진다. 잔인성의 안락사가 아니라 많은 사람 앞에서 치러지는 아름다운 안락사이다. 내가 죽으면 모두가 행복하다. 가장 사랑했던 손자가 나를 버리는 것, 아름다운 제도다. 인간이 신이 되는 찰나가 있다면 이런 순간이 아닐까? 고매하고 장엄하다." p 341



책을 읽고 이곳에 모든 것을 다 표현한다는 것이 어렵다. 초원의 유목민에 대해 많은 걸 통달한 작가의 글이다. 주인공인 비지 아와 생활하고 시달리고 생활하면서 얻어진 이야기의 깊이가 엄청나다. 풍부한 감성과 몰랐던 유목민의 문화를 접하고 감동이 왔다. 이 책의 이야기는 몽골의 며칠 여행으로 느끼기에는 가당치 않는 숨결이 숨어있다. 유목민의 처절한 외로움과 투쟁이 베여 있다. 초원에 반짝이는 별을 만난 듯 신선했다. 이 책은 나에게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갖도록 해 준 책이다.



위대한 유목민이란 자유로운 인간이나 다름없다. 가난할지언정 정착해서 사는 삶을 동경하지 않는다. 자신의 문화에 대해 정착 문명의 주인들보다 더 높은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책의 주인공 비지 아는 이제 몽골로 돌아가야 한다고 한다.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건너게 될지 IT 배낭을 메고 디지털 세상 속으로 걸어가게 될지 작가는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지구 상의 마지막 오랑캐인 비지 아는 유목민답게 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유목민이 항상 하는 말,


괜찮아, 배가 고파도, 날씨가 추워도, 조금 힘이 들어도,


"괜찮아" 소리가 귓전에 들려오는듯한다.


얼마나 여백이 있는 여유로운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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