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날씨가 덥다. 여름이 온 지 한참이 되었다. 계절이 바뀔 때면 언제나 옷장을 정리해야 한다. 일 년 사계절, 계절마다 옷이 다르다. 다른 때 같으면 진즉에 했어할 일인데 멈칫거리며 여태껏 미루다가 오늘에야 했다. 나이 듦이란, 순발력도 자꾸 떨어지고 외출도 귀찮아지는 현상이 생긴다.
사람 사는 일이 나이와 무관하지 않다. 매년 변해 가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생활습관도 달라진다. 나는 옷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지금은 예쁘고 멋진 못 보다는 편한 옷을 더 즐겨 입는다. 모든 것이 예전과는 다른 나를 보면서 생각이 많아진다. 사람과의 만남도 줄어들면서 관계도 시들해진다. 말이 줄어드는 현상 또한 당연한 일이다. 예전에는 사람을 만나면 무슨 말을 그리 많이 했을까?
옷장을 정리해 놓지 않으니 매번 밖에 나갈 때 뭐 입지? 혼자 말을 하면서 한 동안 눈에 보이는 몇 가지 편한 옷만을 입었다. 그럴 때마다 옷장 정리해야 하는데. 생각만 해 왔다.
다림 질 해 놓은 바지와 치마
봄 옷은 손질해서 넣어 두고 여름옷을 꺼내서 다림질을 해서 옷장에 걸어 놓았다. 나이 든 사람이지만 나는 옷을 좋아한다. 내 마음에 드는 옷을 입어야 마음이 흡족해진다. 나와 어울리는 옷, 옷이란 모름지가 자기를 나타내는 표현 이기도 하고 그 사람의 품격일 수 있다. 예전 서울 다닐 때는 옷 구경이 일상이었다.
다도를 하면서 검소하고 자연에 가까운 소재인 천을 찾다 보니 광목과 무명, 리넨을 좋아하게 되었다. 광목과 무명은 가격도 싸고 수놓기도 좋은 천이다. 내 옷은 손수 자수를 놓은 옷들이 꽤 된다. 차를 마시며, 어느 날부터 내 옷을 만들어 입는 걸 시도하기 시작했다. 손 바느질도 좋고 헌 옷을 하나 뜯어 천에다 재단해서 수선집에서 박아오면 옷이 된다. 집에서도 입기 쉬운 고무줄 치마, 밖에 나갈 때 입어도 손색이 없다.
니트를 좋아하는 나는 티나 조끼는 뜨개옷을 해서 입는다. 그 또한 재미있다. 사 입으려 해도 사이즈도 안 맞고 마음에 드는 옷은 엄청 비싸지만 내 몸에 맞는 옷이 드물다. 몇 번 사 입는 것을 시도하다가 뜨게 해서 입기 시작했다. 이제는 옷 만드는 뜨게도 멈추고 바느질도 하지 않는다. 모두가 한때였다.
나는 한 동안 수놓고 옷 만들어 입는 일에 몰두하고 지내왔다. 가만히 앉아서 그냥 놀지는 못하는 성격이라서 무엇인가 집중을 하고 도전하기를 좋아한다. 글을 쓰기 전에는 온통 시간을 차 마시고 수놓고 바느질하는데 시간을 보내며 살아왔다. 그 시간이 참 즐거웠다. 누구나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즐겁고 행복하다.
광목에 천연 염색을 하고 수를 놓았다. 위 옷은 손 바느 질 조끼
여름옷은 편하고 시원해야 입고 싶다. 옷 소제도 시원하고 가벼운 소제인 옷이 편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옷 스타일이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옷을 입을 때 오는 만족감이 자기를 자기답게 표현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옷은 나를 나답게 해 주는 표현 방식이다.
광목에 쪽 염색 초롱꽃 자수 위는 뜨게 조끼
나이 들면서 매번 생각하는 일이 간결하게 살고 싶다. 옷도 웃을 다림질 하면서 내가 이 계절에 이 옷을 한 번이라도 입을 수 있을까 생각을 해 본다. 옷을 좋아하는 내 옷은 비싼 옷은 아니지만 애정이 가고 내가 좋아하는 옷들이다. 광목에 천연 염색을 해서 수를 놓아 만든 옷들은 자연 물이라서 피부에 닿는 촉감도 좋다. 내가 좋아하는 색깔과 내가 좋아하는 수를 놓아 만든 옷은 자연이 애정이 가기 마련이다.
옷이란 모름지기 자기를 나타내는 표현 방법이기도 하고 그 사람의 인격일 수 있다. 계절이 바뀌고 옷장을 정리할 때 수놓은 옷을 볼 때면 예전 옷을 만들 때 추억으로 돌아간다. 천연 염색을 했던 그 날들, 같이 했던 사람들도, 수를 놓을 때 마음들도 내 안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내 삶의 흔적들이다.
오늘 옷장을 정리하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아마도 내가 만든 옷들은 내 삶이 끝날 떼 까지 나와 함께 할 것이다. 삶이란 반복의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