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일 같았던 코로나 확진, 내게도 찾아왔습니다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어요
지난 금요일 었다. 셋째 딸네 가족과 둘째 딸 아들인 손자가 군산에 내려왔다. 둘째 딸 아들은 군 제대를 하고 얼마 되지 않아 언제 외갓집을 갈까 기다리던 차에 셋째 딸네 아들과 함께 외갓집에 놀러 온 것이다.
셋째 딸 아들은 다음 달이면 미국에 있는 대학에 입학을 하게 되어 곧 떠나야 한다. 군산에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인사차 온 것이다. 단출하던 집안이 남자들 넷이 들어서니 정말 집안이 꽉 채워져 사람 사는 집답다. 요즈음 코로나가 다시 유행을 해 버스로 내려오지 않고 사위가 차로 데리고 왔다. 막내 작은 손자는 왔다 간지 얼마 되지 않지만 손자 말이 더 재미있다. " 방학에는 외갓집에서 좀 놀아야 해." 하고서 같이 내려왔다고 했다.
모름지기 사람 사는 집에는 사람이 드나들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집이 너무 쓸쓸하고 온기가 없다. 대학 가는 손자 나이 이제 열여덞, 그 나이에 혼자 부모와 떨어져 멀고 먼 나라에서 살아갈 생각을 하니 손자를 바라보는 것만도 마음이 짠해 온다.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외로움,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라고 어느 시인은 말했다. 어쩌랴 사람마다 각자 다른 자기만의 길이 있는 걸, 힘들고 외로워도 견뎌내야 한다.
나는 사위와 손자들을 위한 밥상을 정성을 다해 차렸다. 맛있게 먹는 손자와 사위를 바라보면서 마음이 그토록 흐뭇할 수가 없다. 사람 사는 재미가 이런 때 있다. 남편과 나는 자꾸 나이 들어가고 어리기만 했던 손자들은 몰라보게 자라고 성장해서 사회의 일원이 되어 간다. 이렇게 다 모이는 날이 몇 번이나 올까.
출국 준비를 해야 하는 손자는 여러 가지 할 일이 많다면서 사위와 하룻밤만 자고 토요일 밤에 서울로 올라갔다. 같이 더 있고 싶지만 일정이 많다고 한다. 그 날밤 올라가는 차 안에서 손자는 열이 오르고 코로나 증상이 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차 안에 있는 해열제를 먹이고 다음 날 검사를 하니 코로나 양성으로 나왔다는 연락이 왔다.
여태껏 매번 조심을 하고 버스도 태우지 않고 데리고 왔는데 이런 일이 있다니 참 알 수가 없는 것이 코로나 전염경로다. 좀 더 쉬어가려고 남아있던 셋째 딸도 서둘러 일요일 서울로 올라갔다. 온 집안에 비상이 걸렸다. 함께 있던 가족들도 모두 항원 검사를 해야 했다.
손자가 왔을 때 하룻밤만 같이 있고 다음날 점심은 밖에 나가 외식을 했을 뿐이다. 그 식당은 사람이 많은 곳도 아니었다. 그리고 장항 스카이 워크에 갔다 온일, 도대체 어디에서 확진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장항에서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었는데, 코로나 균은 아마도 바람 타고 날아다니는 건 아닐까?
오늘 손자는 이삼일 정도 아프고 많이 호전되었다는 소식이 왔다. 그러나 함께한 가족이 모두 확진이 되었으니 보통일이 아니다. 셋째 딸 네 가족이 모두 확진이 되어 지금 격리 중이다. 나도 그 여파에서 피해가지는 못해 결국 이상한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월요일 밤, 시낭송 수업을 마치고 9시가 다 되어 집으로 돌아온 뒤, 씻고 거실에 앉았는데 목에 이상한 느낌이 온다. 약간 따끔 거리는 증상이 있다. 이게 무슨 일이지? 감기는 아닌 것 같고, 예전에 감기가 오려면 항상 목부터 아펐었다. 차라리 감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심하게 아프지는 않아 그냥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목이 더 아프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만 참아야지 별도리가 없다. 일단 뜨거운 물 한 컵에 소금을 한 줌 넣고 휘휘 저어 목 가글부터 했다. 목이 아프면 고통스럽다. 목감기가 들 때면 약을 먹기 전 따끈한 소금물로 목을 한번 소독해 주면 조금은 괜찮다. 목 아픈 것 말고는 다른 증상은 없었다. 열도 나지 않고 단지 목만 약간 아플 뿐이다.
조심을 해야 했다. 혹시나 몰라서 아침밥도 남편과 따로 먹었다. 남편은 아무 증상이 없다고 한다. 다행이다. 이게 코로나 증상인가, 의심스러워 코로나를 먼저 앓고 난 동생에게 전화를 해 보았다. "코로나 걸리면 맨 먼저 어떤 증상이 나타나니?" 갑갑해서 동생에게 물어본 반응은 "응, 목도 아프고 열도 나고"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코로나에 확진이 된듯하다. 예방주사는 4차까지 맞았는데도 효과가 없나 보다.
남편과 함께 서둘러 신속 항원 검사를 하려고 보건소에 갔다. 한낮이라 그런지 날은 엄청 덥고 사람들은 줄을 서 있다. 나는 여태껏 신문이나 티브이에서 만 보아왔던 일을 나도 격게 되었다.
항상 코로나 확진자 뉴스가 나오면 내 이야기가 아닌 멀게만 생각한 일이다. 맨 먼저 휴대폰에 문진표를 작성하고 차례를 기다리다가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내일 아침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 준다는 말을 했다. 제발 음성이 나오길 마음으로 빌어 보면서 약국으로 향했다.
목은 여전히 견딜 만큼 아프다. 밤이 되면 더 아프기 때문에 급한 데로 약국에 가서 목 아픈 약과 해열제를 사 가지고 집으로 들어왔다. 내일 결과가 나오도록 기다리기에는 목 아픈 걸 참기 힘든다. 내가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코로나가 오기 시작한 지 3년이 다 되어 가지만 그동안 코로나에 안 걸리려고 얼마나 조심을 하고 또 조심을 했는데 이런 상황이 오다니 황당했다.
오늘 아침 8시쯤 보건소에서 문자가 왔다. "귀하는 코로나 19 검사 결과 확진( 양성 )으로 감염병 예방법 제41조와 제43조 등에 따른 격리 대상입니다. 추후 실거주지 보건소의 안내 시까지 자택에서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코로나 확진자라는 말이 주는 무게가 무겁다. 무슨 죄인이라도 된 듯한 느낌이다.
문자를 보고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것 같다. 세상에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구나, 남편과 둘이서만 살고 있는 집은 공간을 나누어 사용하기로 했다. 이 더운 날 집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다니 엄청 답답하다. 되도록 남편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여간 갑갑한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조심해야 하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우리 집은 모든 가족이 코로나를 확진을 받고 지나갔다. 미국에 있는 큰 딸네 가족부터 둘째, 새째도 지금 격리 중이고 막내네 가족까지도 코로나를 앓고 지나갔다. 우리 가족 중에 지금 남편 한 사람만 무사하다. 그러나 그 일도 아직은 모른다.
팥죽 좋아하는 나를 위해 동생이 팥죽을 사다 주고 간다
제일 연세가 많고 몸이 약한 남편만이라도 무사하기를 희망해 본다. 점심은 옆에 사는 동생이 내가 팥죽 좋아한다고 사서 넣어주고 갔다. 나는 마치 어느 섬에 격리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다. 꼼짝 할 수 없이 7일은 집에 갇혀 지내야 한다. 평소에 밖에 많이 나가는 걸 즐겨하지 않으니 그 일은 견딜만하겠지만 많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편과 나는 각각 공간을 분리해서 동선이 마주 치치 않으려 한다.
밖에 나가지 않은 격리의 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책을 읽는 일이다. 책은 우리에게 엄청난 위로와 깨 달음을 준다. 책을 읽다 보면 나를 둘러 쌓인 환경 나와 관계하는 사람 그리고 나를 지배하는 생각들이 새로운 방향을 찾을 수도 있다. 코로나 확진을 받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 나에게는 휴가처럼 보내보련다. 사람은 내 일 일도 모르고 살아간다. 내가 코로나 확진자가 되다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