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선택이다

요즈음 트렌드 트로트 노래가 좋다

by 이숙자


우리 집에서 리모컨 선택권은 단연코 남편이다. 하루의 시간중 운동산책 하는 시간만 빼고 거의 거실 소파에 앉아 계신다. 자연스럽게 리모컨을 가지고 티브이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거실은 남편의 취향 따라 어떤 물건이든 정리 정돈이 잘되어 각이 잡혀 있어야 하는 곳이다. 남자들은 나이가 드시면 밖에 나갈 일이 거의 없게 된다. 주변 친구들도 세상을 영영 떠나시고 아님 몸이 아파 요양원에 계신다.


살면서 어느 날부터는 만날 사람이 줄어들게 된다. 그때부터 나이란 외로움과 함께 우리 곁으로 찾아온다. 다행히 노년의 부부지만 같이 보낼 수 있는 동반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축복이다.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건강한 삶을 보내고 있다면 더는 바랄 것 없는 노년의 행복이다.


날씨가 따뜻한 계절에는 밖에 나가 산책을 하며 보내는 시간은 지루함이 덜 하다. 그러나 겨울은 춥고 또 봄이 돌아오는 계절이면 미세 먼지가 많은 날은 집에서 외출을 하지 못하고 지내는 날이 많다. 우리 부부는 각자 자기만의 공간에서 자기 취향대로 살아간다. 부부지만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대화가 없어도 한 공간에 사람이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외로움을 덜어 낼 수 있어 든든하다.


남편이 시청하는 TV 프로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정치 뉴스를 종편으로 보고 있다. 내 방에서 문을 닫고 책을 읽어도 글을 써도 귓가에 다 들리는 소리는 어쩔 수 없다. 정치인들은 허구 한날 싸움만 한다. 모두가 자기들이 옳다고 말장난들을 하고 있으니 그 노릇을 어찌해야 할지 하루 이틀도 아니고 눈만 뜨면 듣고 있다. 싫은 소리를 들어야 하는 나는 답답하다. TV소리가 안 들리면 좋겠지만 그것도 내 생각이다.


아무리 부부라도 삶은 자기 선택대로 살아간다.


<삶은 어떤 것이 좋다 나쁘다 잘라 말할 수 없다.

선택과 그것에 따른 책임이 있을 뿐이다.

이때 자기 선택에 대한 결과를 기꺼이 받아

들인다는 것이다. > 법륜 스님


법륜 스님의 행복론에 대한 말씀을 듣고 공감을 한다. 그래 사람은 저마다 다르다. 다름을 인정하고 저마다 선택은 자유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비운다. 내가 싫어하는 프로 보지 말라고 한들 안 볼 남편도 아니고 내 생각을 강요하면 그때는 마찰이 오기 때문에 참아야 한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부부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유를 구속 당 하는 걸 매우 싫어한다. 본인의 의지대로 사는 자유마저 없으면 어떻게 살아갈 건가...


다른 집에 가면 티브이가 두대가 있는 걸 종종 보았다. 서로 취향이 다른 부부가 싸우지 않고 티브이 시청을 하는 이유라고 한다. 그 말에 이해가 간다. 나는 티브이를 잘 안 보는 편이라 다행이긴 하다. 평소에 혼자 놀거리가 많아서 그렇고 티브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아깝다.


때때로 티브이 앞에서도 책갈피에 그림을 그리기도 다른 일을 하기도 한다. 남편은 밤 시간 내 방에서 컴퓨터와 노는 걸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눈이 나빠진다는 이유에서다. 그 말에는 나도 동조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길게 하려면 눈을 보호해야 한다는 걸 나도 안다. 운동도 내가 할 수 있는 양만큼은 하면서 하루를 넘긴다.



하지만 내가 양보 못하는 프로가 있다. 토요일 불후의 명곡과 일요일 진품 명품과 세계태마 기행 프로다. 또 하나 요즈음 내가 좋아하는 티브이 프로 하나가 더 늘었다. MBN에서 진행하는'불타는 트롯맨'과 TV 조선 미스터 트롯 2가 있다. 우리나라 젊은 이들이 이 토록 트로트를 잘 부르는 사람들이 많은 걸 티브이를 보면서 놀랐다. 나도 몰래 노래 속으로 빠져든다. 그러면서 요즘 말하는 팬덤이라 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도 좋아하고 응원하는 가수가 생겼다. 그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마음이 아주 포근해져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트로트 노래에 빠져들지 전혀 몰랐다. 트로트 노래 가사 속에는 우리의 삶의 애환이 다 들어있어 때로는 웃기도 하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마치 내 삶인 듯 동화가 된다. 아주 마음이 애틋해 온다. 그러면서 위로도 받고 활력도 얻는다.


몇 년 동안 코로나로 사람들은 우울했다. 긴장을 하면서 언제 코로나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가나 전전긍긍하고 살아왔었다. 그러나 코로나가 거의 끝나 가나 싶더니 이제는 고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티브이에서 전해 주는 뉴스는 우리에게 힘든 이야기만 전해 준다. 우리는 어디에서도 받지 못하는 위로를 트로트 노래를 들으며 받는다. 노래가 우리를 웃기고 울리기도 한다. 노래 한가락에 취해 사람들은 환호하고 있다.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 사연은 여러 가지다. 그 사연을 들을 때면 마음이 짠해 온다. 정말 혼신을 다해 노래 부르는 모습들이 멋지다. 끼와 재주들도 많다. 모두가 가수 못지않은 실력들을 가지고 있다. 누구를 떨어트린다는 것이 보는 사람도 안타깝다. 사람들이 왜 이프로를 보면서 환호하는가? 몇 년 동안 코로나로 우울했고 또다시 고 물가로 사는 게 힘들어진 사람들은 어디에서 라도 위로받고 싶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기쁘고 모든 시름이 사라진다. 그 노래는 우리 인생이다. 세상 모든 걱정이 사라질 정도다. 젊어서는 가곡만 좋아하고 언제 트롯과 친해질 수 있는 날이 별로 많지 않았다. 나도 내가 트로트를 좋아할 줄 몰랐다. 중년에 들어서 노래방이 생기고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끔씩 다닐 때 트로트 노래의 맛을 알았다. 나이 들어가면서 노래방 다니는 일이 거의 없어지고 자연히 트로트 노래와 가까이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내게는 트로트 노래에 대한 추억이 있다. 지금 기억나는 게 초등학교 시절이었을 것이다. 약주 좋아하시고 노래 좋아하셨던 끼 많은 아버지는 직장에서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실 때 약주 한잔 하시고 기분이 좋아지면


" 헤어지면 그립고 만나보면 시들하고 몹쓸 것 이내 심사" 구성진 노랫가락은 아버지의 삶이었다. 집안에 있어도 다 들리도록 " 숙자야" 하고 이름을 부르며 아버지는 집으로 들어오셨다. 그게 사랑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내가 맏이였기에 아버지 머릿속에는 내 이름만 각인되어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 마음과 그 노래를 이해하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흐른 뒤였다.


내 나이 80이 되어서야 트로트 노래에 푹 빠지다.


남편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프로라서 안방에 자려고 들어간 후 나 홀로 트로트 노래를 자정이 넘도록 들으며 내 젊은 날로 돌아가 온갖 상상 속을 헤맨다. 지난날 아팠던 사랑, 그립고 애달픈 사연들, 젊어 꿈만 꾸고 이룰 수 없는 아픈 기억들이 파도처럼 내 안에 밀려온다. 감동이 되는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훔치기도 하면서.


내가 살아온 날들을 영화 필름을 돌리듯 되돌아본다. 결혼도, 지금 이처럼 살고 있는 삶도 선택이다. 내가 선택한 삶은 후회하지 않으려 한다. 사람의 중심은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곳이 삶의 중심이라 한다. 내가 살아가는 모든 일은 내가 선택한 나의 삶이다.


오늘도 하루라는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이미 나는 나로서 괜찮다고 위로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그녀가 떠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