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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자 Sep 30. 2020

결혼 53년 만에 처음으로 추석 제사 안 해요

코로나라는 전염병으로 추석 제사를 안 하고 형제가 못 만난다

내일이면 추석이다. 올 추석엔 이변이 일어났다. 제사 지내는 걸 종교의식처럼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전통을 지키는 남편 집안이다. 그런데 코로나19라는 전염병으로 예상치 못한 변화가 왔다. 형제들도 큰집에  모이지 않고 제사도 큰집 가족만 간소하게 지내겠다고 한다. 결혼 후 큰집 제사에 가지 않는 일은 처음이다.


나는 올해 결혼 53년 차다. 결혼 53년 만에 처음으로 추석 제사를 안 하는 거다. 살다가 살다가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이다. 우리 집안으로서는 엄청난 사건인 이다.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사람들의 삶과 문화까지 송두리째 바꾸어 놓고 말았다.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나는 이번 코로나19를 계기로 새로운 의식 변화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세상은 자꾸 변해 간다. 사람이 전통도 중요하지만 지금 오늘을 살아가는 현실이 더 중하다고 본다. 우리 시댁은 오 남매의 형제가 있다. 누나는 두 분인데 큰 시누님은 돌아가시고 둘째 시누님도 나이가 많으셔 왕래를 할 수 없다.  제사는 삼 형제와 며느리, 손자, 손자며느리와 함께 제사를 모신다.


지난주 전주에 사는 시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 요즈음 코로나 2차 확산으로 모두가 비대면으로 추석을 보내라고 정부 시책이 그러니 우리도 이번은 따라야 하지 않을까?"라고  


 "응, 큰집 형님과 의논하고 그래야지." 남편의 대답이다.


결국 큰집 시숙과 의논 끝에 내린 결론은 올 추석엔 형제가 모여 제사 모시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 집안의 결정권은 시동생 의견이 많이 반영된다. 나이 든 형들보다 집안일에 신경을 많이 쓰고 판단력도 뛰어나서 형들이 오히려 동생에게 여러 도움을 받으며 동생 의견을 잘 따른다. 나이 든 형님들을 위해 배려를 많이 하고 절대 손익 계산을 하지 않는다. 말없이 큰 버팀목이 되어주는 시동생이 있어 항상 든든하고 고맙다.


우리 시댁은 종손 집안이다. 결혼 후 두 번의 명절과 시 어른들 제사 여섯 번을 합해서 여덟 번을 지내다가 몇 년 전부터 시부모님 돌아가시고 웃어른들은 합하고 시아버님, 시어머님 제사까지 세 번. 그렇게 지내도 일 년이면 양 명절과 세 번 제사와 모두 일 년에 다섯 번 제사를 모신다. 여자들은 제사 지내다가 세월이 다 가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간단히가 아닌 큰상 두 개가 모자랄 정도로 거하게 제사상을 차린다. 이건 너무 과하다 싶다.


                                                              예전보다 간소해진 제사상


나는 결혼 전 친정집은 제사가 없는 가정에서 자랐다. 결혼하고 보니 이건 맨날 제사 지내는 날이다. 사는 일상이 큰댁 일 도와주러 다니는 날이 너무 많아 스트레스가 엄청 쌓였다. 누구에게도 말 못 하고 가슴에 화가 올라오는 걸 견뎌내는 일이 결혼 초였다. 그때는 시어른들이 살아 계실 때였다. 어른들이 계시고 시골에는 일이 많아 큰집을 도와주는 일을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 남편은 가족 일이라면 거절을 못하고 온 정성을 다하는 효자였다. 마누라 생각은 항상 뒷전이다. 지금 같으면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젊은 날 아이들 키우면서 시댁을 오고 가고 힘든 날이 많았다. 시댁은 마치 제사가 집안 커다란 행사였다. 지금은 다 지난 세월이지만, 생각만 해도 까마득하다. 어찌 살아 냈는지.


시댁은 특별한 종교가 없다. 오로지 유교사상을 가진 전통적인 가풍을 지키고 제사를 마치 종교의식을 치르듯 살고 있는 집안이다. 지금은 세상이 변했어도 제사 방법은 그대로 고수하고 이어오고 있다. 예전에는 그렇게 사는 줄 알고 살았다. 거부할 수도 없는 일이다. 우리 나이 떼 여자들은 힘겹게 살아왔다.


힘든 며느리들이 때때로 반기를 들어보지만 우리 집 남자들은 요지부동인 채 우리 힘으로 변화를 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주어진대로 살아야 하는 일이 며느리 몫이었다. 요즘 세대들 같으면 어림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부분은 제사를 잘 지내도록 시아버님이 유산을 큰댁인 큰 아들에게 거의 다 주고 가셨다.  


큰댁은  제사를 잘 지내야 하는 책임감이 크고 다른 형제는 부모 유지니까 잘 받들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계속 제사를 잘 지낸다. 다행인 것은 형제끼리 불평하지 않고 화목한 게 신기하다. 며느리들은 서로의 역할을 분담해서 자기 일을 잘해 내고 불만이 없으니 형제애가 좋은 집이다. 이 집안 남자들은 마누라를 잘 만났다.


세월이 가면서 달라진 부분은 제사 때 모이는 인원이 좀 줄고 음식이 조금은 간 소화됐지만 지금도 여전히 다른 곳과 비교하면 거하게 차린다. 예전에는 종손 집안이라 제사에 모이는 숫자도 만만치 않았다. 지금이야 삼 형제와 조카들 몇 사람뿐이지만.


그런데 지금은 큰집 형님이 나이도 많으시고 몸이 아프시다. 큰집 형님네 며느리는 하나뿐, 그러니 어쩌랴 나는 칠십 중반을 넘어가는 나이에도 제삿날이면 일찍부터 큰댁에 가서 음식 준비를  도와야 한다. 작은집 동서는 교사 생활하다가 정년 후에야 제사 음식 만들기에 합류를 지 몇 년 안 된다. 나는 결혼 후 작년까지 그렇게 살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도 이 집안 문화에 적응이 되어서 괜찮다. 지금은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에 불평과 힘든 생각은 없다.


예전에는 아이들 키우면서 큰집에 제사하러 가는 게 엄청 스트레스였다. 요즘 젊은 사람들처럼 명절 증후군도 찾아오고 힘들었다. 동서 간에도 약간은 불편한 기류가 흐르고 불만도 있었다. 실은 요즈음 젊은 사람들이 명절에 힘든다고 말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젊은 사람들은 거의 맞벌이를 하고 살고 있으니 바쁘고 더 힘든다. 우리 때와는 다른 세상이다.


사람 사는 게 참 별스럽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 들어가면서 형님 동서와 정이 쌓이고 서로 삶을 이해하는 동지가 되어간다. 누구에게 말 못 하는 남편 흉도 싫건 보면서 서로 이해해 주는 내 편이 되어주는 것도 형님 동서 간이다. 세상사 모든 일은 꼭짓점이라는 게 있다.


그 시간이 지나면 힘든 것도 익숙함으로 견디게 된다. 집안일도 그랬다. 서로 익숙해지고 배려하고 사랑을 하게 되니 관계가 따뜻해졌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짐을 등에 져 주는 일이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 가족으로 찾아온 인연이기에 소중하고 감사하다. 이제 나이 들어 언제 세상과 작별할지 모르는 사이, 때때로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이 시려온다.


큰댁이 건재해서 명절과 제사 때 형제가 모여 조상을 추억할 수 있고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내는 에너지를 서로 나눈다. 평소에는 얼굴도 볼 수 없는 조카네 가족들까지 명절에 만나서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사람 사는 정보도 나누면서 살아왔다.


우리 부부는 올 추석이  쓸쓸해질 것 같아 지금부터 마음이 헛헛해 온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로 사람들을 못 만나 외로운데 명절에도 가족들조차 못 만나니 외로움이 더 깊어진다. 이번 추석을 계기로 우리 집 제사 문화도 바뀌기를 희망한다. 제사를 잊지는 말고 가족이 모여 밥 한 끼 나누어 먹고 간소하게 조상을 잊지 않는 날로 정했으면 싶다.  


제일 중요한 일은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어서 빨리 물러가서 마음 놓고 서로 대면하면서 사람의 정을 나누기를 소망한다. 가족들을 만나고 아이들이 깔깔대며 웃는 모습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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