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숙자 Jul 15. 2023

군산에는 지금 물폭탄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소낙비가 아침부터 세차게 쏟아진다. 이건 뭐 그칠 기미가 없다. 장마 라고 하지만 며칠 밤에만 비가 많이 왔지 낮에 이처럼 많이 오기는 올여름 들어 처음일이다. 무려 450m가 넘게 쏟아지는 비로 사람들은 놀라서 집안에 갇혀있다. 재난 문자도 계속 날아온다. 외출을 해야 하는데 심란한 마음에 계속 창밖만 바라보고 있지만 하늘은 나에게 어림없는 소리 말라고 말하는 듯 빗소리는 그치지를 않는다.


어쩔 수 없이 호위무사인 남편에게 부탁을 했다.

"여보 나 인쇄소 가야 하는데 나 좀 데려다주세요."

"이 빗속에,?  다른 날 가."

"아니에요. 내가 그림을 가져다주지 않으면 작업을 못해요."


차를 타기 위해 아파트 주차장으로 걸어 체 1분도 걸리지 않는데 옷은 어느새 흠뻑 젖었다.

빗속을 뚫고 운전을 하는데 길거리는 사람도 없고 운행하는 차량만 빨간 불을 켜고 조심조심 차는  거북이처럼 가고 있다. 인쇄소에 도착했고 사무실까지 걸어가는 시간은 2분도 채 걸리지 않은 거리지만  비가 어찌나 퍼붓는지 우산이 필요 없을 정도다. 옷은 이미 다 젖었고 머리까지도 젖었다. 


대표님과 용무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젖은 옷을 다 벗었다. 온통 다 젖었다. 별로 걷지 않은 남편도 옷은 젖었다. 샤워를 하고 따끈한 차 한잔 마시니 그 순간은 천국이 따로 없다. 오후에 또 학교 가야 하는데 벌써 걱정이 된다. 행여 비상 연락이라도 오지 않을까 기다렸지만  연락이 없다. 


점심을 먹고 1시까지 학교 도서관으로 다. 옷은 비 맞아도 빨리 마르는 가벼운 옷을 골라 입었다. 에어컨 아래 3시간을 앉아 있으려면 감기들 염려가 있으므로 미리 조심을 해야 한다. 학교에 도착을 하고 비는 여전히 물 폭탄처럼 퍼붓고 있다. 어쩌면 빗줄기가 가늘어지는 순간도 없이 비는 오고 있다.


문 닫고 앉아 있는 도서관은 평화롭다.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아무 느낌이 없을 정도로. 아이들은 책 읽고 우리도 아무 말없이 우리 일을 하고 있다. 3시가 넘어가고 밖을 보아도 비는 그대로 쏟아지고 있다. 웬만하면 걸어갈까 생각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다고 혼자  중얼거리고  있을 때  시니어 사무실에서 전화가 온다. 지금 곧장 퇴근하라 한다. 나이 든 노인들 이 빗속에 무슨 사고라도 나면 큰 일이다.


그래, 오늘 같은 날은 처음부터 대체 휴일로 하고 다른 날 근무를 했어야 했다. 사서 선생님도 연락을 받고 빨리 집으로 가라고 한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다시 데리려 오시라고,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기다리는데 감감무소식이다. 처마도 없는 남의 집 건물 앞에서 기다리는데, 남편은 다른 날과 똑 같이 4시에 퇴근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아니다고 어서 오시라 하고 우리는 기다렸다. 옷은 다시 이미 젖었다.


왜 이렇게 안 오실까.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하다. 곁에 짝꿍은 이제 어지럽다고 까지 한다. 나는 놀라서 가방 안에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던 초콜릿 2개를 꺼내여 입에 넣어 주었다. 일이 분이 지났을까 감겼던 눈이 떠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젖은 옷을 입고 3시간을 에어컨 아래 있어 감기 기운도 있고 혈당이 떨어진 것 같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또 한 번 젖은 옷을 벗었다. 하루에 두 번을,  일단은 시니어 사무실에 무사히 귀가했다는 전화를 하고 같이 일하는 짝에게도 다시 괜찮은지 점검을 한다. 혼자 사는 사람은 항상 마음이 춥다. 그분이 좋아하시니 나도 흐뭇하다.


사는 일은 오늘이 중요하고  지금 눈에 보이는 사람이 소중하다. 힘들 때 다정한 말 한마디가 필요한 때다.


이런 경험을 한 번도 없었는데 내게는 특별한 날처럼 기억될 것 같다. 또 샤워를 하고 오늘 할 일을 끝낸 홀가분한 마음으로 따끈한 차를 마시며 톡을 열어보니 여기저기 물난리라고 사진을 보내 주신 분이 계시다. 정말 사진을 보니 실감이 난다. 낮은 지역 아파트에 차 오르는 붉은 황토물, 심은지 오래되지 않은 모도 물에 잠겼다. 농부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계속 쏟아지는 비가 야속하다.


 차 한잔으로 몸을 덥히며 하루 있었던 일을 간결하게 카톡에 올렸다.


시 낭송 반 분들은 시를 많이 외워서 그런지 댓글도 시처럼 쓴다.


"역시 무서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는 80대 왕 언니

옷만 두벌 적시고 차로 마음은 말리고 편안한 시간 되세요." 따뜻한 댓글에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린다.

맞다. 나는 두려울 것도 무서울 것도 없는 80대 왕언니다. 80이란 나이가 내게 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여태껏 살아보지 않은 80 나이를 체험하며  나의 80대를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비야 이제는 좀 그치렴, 하고 속으로 주문을 외워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나이 80, 시 낭송 오디션을 보았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