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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자 Nov 14. 2020

창경궁의 만추를 보셨나요

서울 여행 첫 번째 날

지난 주말 새벽 6시 서울 올라가는 버스 안에 나는 있었다. 오랫동안 차 공부를 같이 해온 친구 두 명과 함께. 일 년이 넘게 만나지 못한 친구들이 반가웠다. 다도 공부를 멈추고 코로나로 서로가 조심하려고 보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고 지내왔었다.  긴 세월을 같이 해온 우리는 말을 하지 않아도 생각하는 것이 언제나 이심전심으로 통한다. 긴 말이 필요 없다. 곁에 있어도 위안이 되는 좋은 관계이다.


새벽 6시는 가을이 넘어가는 계절이라서 인지 날은 밝지 않고 어스 푸레 어둠이 걷히지 않았다. 한참을 버스는 달리고 서야 차창 밖으로 풍경이 보인다. 빈 들녘에 소들의 먹이인 벼 짚더미를 뭉쳐놓은 하얀  비닐 덩어리들만 군데군데 눈에 띈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들은 쓸쓸한 기운만 가득하다. 논은 자기 몫을 다하고 휴식에 들어갔다.


                                버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벼를 베고 난 들녘의 논


나는 서울에 올라온 지 언제였나 싶은 생각에 기억을 더듬어 보니 작년 겨울이었다. 지난 1월부터 찾아온 코로나 19로 살고 있는 곳에만 갇혀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고 일 년을 살아온 것이다. 딸들이 서울에 살고 있어 자주 올라오던 서울도 거의 오지 못하고 지나갔다.  오늘 서울 가는 버스를 타니 마치 여행 가는 기분이다. 마음이 살짝 설렌다. 이번 여행은 호텔에서 이박 삼일 묵는 일정이라서...


 여행이란 누구와 같이 가느냐가 중요하다. 서로 바라보는 방향이 같고 감성이 맞을 때 느끼는 즐거움이 배가 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걸 같이 좋아할 때 기분이 상승되는 이유이다. 


우리는 30년이 넘는 세월을 같이 차생활을 하고 많은 행사도 했다. 힘든 역경을 딛고 차 문화재단을 설립한 맵버들이다. 우리 모임의 가장 어른이신  구십이 넘은 회장님은 우리의 기둥처럼 든든한 역할을 해내시고 나머지 사람들은 각자의 역할을 소리 없이 잘하는 호흡이 척척 잘 맞는 관계이다.


이번 여행은 제일 어른이신 회장님의 자녀분이 마련한 호텔 숙박으로 편안히 여행하도록 배려를 해 주었다.

사람이 주변에 귀한 인연이 있으면 귀한 대접을 받는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구십이 넘은 어머니가 귀하게 여기는 젊은 친구가 있으니 어머니를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나이 많은 회장님은 정정하시고 멋지신 어른이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축복이 차 공부를 한 일이라고 말씀을 하시고 사신다.


사람은 살면서 마음에 고향 같은 곳이 있다.  차 공부를 같이한 다우들이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가족을 빼고 주변에서 다른 남이 내 삶을 이해하고 응원해 주며 이상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음은 축복이다. 이젠 나이 들어가면서부터 불필요한 만남은 자제하고 사람과의 관계도 간결하게 정리하고 살게 된다. 복잡한 감정 낭비를 하는 게 불편해서 그렇다.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하고  5명이 만났다. 군산에서 3명이 올라오고 광명으로 이사를 가신 회장님은  광명에서 택시를 타시고 한 달음에 달려오셨으며 서울로 이사 온 부회장님도 합류를 했다. 회장님은 옷도 멋지게 입으시고 모자와 스카프까지 완벽하 게 갗추신 모습은 귀해 보였다. 구십연세에 패션을 아는 멋쟁이 시다. 


구십연세에 완벽한 멋쟁이 이신 회장님

어쩌면 아드님들이 어머니에게 즐거움을 드리기 위해 젊은 친구들과의 만남을 주선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구십이 넘으셨지만 생각하는 것도 우리와 똑같으시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른 몫을 다 하시는 일이 더 멋지시다.  그분의 삶을 다 닮을 수는 없지만 나의 멘토 같은 분이다.


곧바로 서울로 이사 온 부회장님, 이렇게 역전의 용사 5명이 만나 2박 3일 서울 투어를 하기로 한 것이다. 부회장님은 지방에서 서울까지 다니면서 문화 해설사 자격증을 구비하신 해설사로 관광하는 재미가 배가 된다. 우리는 가지고 온 간단한 짐은 터미널 물품 보관소에 맡기고  아침 식사를 한 후 지하철을 타고 창경궁으로 향한다. 


나이와 상관없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살 수 있다니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랜만에 오는 서울,  하늘을 한번 바라보고 마시는 공기조차 시원하고  새롭다. 아침나절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사람들도 별로 보이지 않고 좋다. 지하철도 토요일 쉬는 날이라 한가롭다. 


발걸음도 상괘 하게 지하철을 타고 창경궁 만추를 보러 간다. 안내하는 사람이 있으니 길 찾을 긴장은 안 해도 된다.  얼마 만에 오는 서울인가,  지방과는 달리 서울은 느낌도 다르다. 날마다 똑같은 공간에서 일상을 보내다가 새로운 곳에 오니 살아있는 생기가 느껴진다. 걷고 있는 발걸움도 활기 있고 모두가 바쁘다.


우리는 천천히 한가롭게 창경궁 만추를 즐기려 가고 있다.  11월이 저물 이 간다.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창경궁 만추를 보셨나요?


 창경궁 이야기는  다음 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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