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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 파트너 이석재 Feb 07. 2021

프롤로그

에세이

  “다시 한 게임만 더 합시다.”

  테니스 교습을 마치고 기본기가 어느 정도 갖추어졌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연구원 동료들과 테니스를 쳤다. 모두 사회 초년생이었기 때문에 테니스 경험은 비슷했다. 그래도 몇 사람은 학생 때부터 테니스를 쳤던 사람도 있고 공식 대회에서 입상한 경력의 소유자도 있었다. 초보자인 나는, 마음으로는 이기고 싶지만 실력으로는 패하기 일쑤였다. 승부욕이 불타오를 때는 상대방에게 간구하듯이 요청했다. “다시 합시다.” 특히 내 컨디션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게임에서 지는 경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말했다. 패자가 게임비용을 부담하는 경우에도 승부욕이 발동하면 도전했다.

  어린 시절에는 친구들을 집 앞마당에 불러서 제기차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등을 했다. 놀이이면서도 경쟁심을 즐겼다. 다시 하자고 말할 수 없는 경우는 초⋅중⋅고등학교 체육대회이다. 운동장을 한 바퀴 도는 달리기에서 2등이 최고 성적이다. 개인 능력보다 집단 능력을 보여주는 줄 달리기, 기마전과 같은 단체경기에서 우승을 경험했다. 성인이 되면서 여러 운동과 잡기를 좋아했다. 테니스, 탁구, 당구, 등산 등을 좋아했고 카드놀이, 장기와 바둑도 즐겼다. 운동과 잡기는 취미와 사교를 목적으로 했다. 가까운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고 운동을 하면서 상대방으로부터 관련 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여가를 즐기기 위해 시작했더라도 승부욕이 발동하면 한 번이라도 이길 때까지 해보자고 요청했다. 패를 못 참는 것이 아니라 승을 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한 번도 못 이긴 날에는 속으로 분을 삼키느라 애를 먹었다.


  내 삶도 순탄하지 않았다. 승의 경험보다 패가 많았다. 그렇다고 멈추거나 주저하지 않고 다시 시작했다. 다행히 인생의 중요한 고비마다 귀인의 도움으로 역경을 이겨냈다. 다만 그 과정에 굴곡이 있었다. 내 인생에 난관은 어디까지일까?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중차대한 난제를 만났다. 턱 밑에 생긴 작은 혹이 림프 조직에 생기는 암이라는 것을 2020년 8월 처음 알았다. 그 순간의 당혹감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이성적으로는 차분하게 행동했지만, 감성적으로는 긴장하고 불안했다. 병원에 입원해서 여러 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혈당, 즉 혈액 속에 함유된 포도당의 량이 경고 수준으로 높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암과 혈당, 중차대한 두 문제가 내 삶의 전면에 등장했다. 건강 문제로는 첫 경험이다. 

 

  지난 20년 동안 전문코치로 활동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대개 자신의 삶에 영향을 준 인물로 타인을 들었다. 나는 그들에게 “왜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친 사람이 자기 자신일 수는 없을까?”라고 질문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변화 요구를 갖고 있으면서 흔히 그 답을 외부에서 찾았다. 그러나 코칭을 통해 변화에 성공하거나 변화를 주도한 사람들은 그 답을 자기 자신에서 찾았다. 

  이제 같은 질문을 나 자신에게 했다. 그동안 타인에게 외쳤던 자기 주도적인 삶의 방식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나는 두 가지 건강 문제에 대한 답을 내면에서 찾기로 했다. 지금까지 타인을 코칭했다면, 이제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도록 자기 자신을 코칭(셀프코칭이라고 부름)하는 것이다. 셀프코칭을 통해 내 삶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막상 셀프코칭을 결정했지만, 좀 더 신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가?” 지금까지 건강에 전혀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몸의 아픔을 겪게 된 결정적인 원인을 찾지 못했다. 몸이 아니라면,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심리학자로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마음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에서 중심축으로 작동한 성향을 탐색했다. 그 결과, 하나의 결론을 얻었다.

  나는 ‘예민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가족원들은 성장기의 나를 유별나다고 보았다. 성품은 온순하지만 자기 주관이 강했다. 달리 말해 고집이 셌다. 원하는 것을 기필코 손에 쥐려고 했다. 뜻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신경질을 부리고 짜증을 냈다. 혼자서 꿍하기도 했다. 감각이 섬세했고 특히 공기와 냄새에 민감했다. 감성적이고 예술이나 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호기심을 갖고 생각하기를 즐기며 탐구 활동을 좋아했다. 팔 남매의 막내라서 가족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이러한 성장 환경은 내 성향에 따른 삶을 사는 데 적절했다. 

  예민함은 성격 특성이며 정신적 장애는 아니다. 그러나 성과와 평가 중심인 사회에서 사람들은 부정적인 성향으로 인식한다. 예민한 성향을 오랫동안 연구한 심리학자 일레인 아론은 ‘예민함이란, 자기 자신과 외부 환경을 지각하는 방식이며 관련 정보를 처리하는 깊이의 수준을 뜻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나는 그가 개발한 ‘예민함 진단’에서 평균 이상의 범주에 속하는 예민한 사람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사람들이 각자 처한 상황에서 자신의 예민함을 계획적으로 활용하면 당면한 삶의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번 몸의 아픔이 나의 예민한 성향과 밀접히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암과 당뇨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예민함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세밀하게 탐구하면서 알았다. 나에게 예민함은 몸의 아픔을 초래하는 원인이면서 동시에 완치를 위한 해결책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마음 중심의 삶을 살다가 몸의 아픔을 직면했다. 평소 내가 원하는 삶의 목적을 구현하고자 노력했다고 자부한다. 마음이 이끄는 삶을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일상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상황을 예민하게 느끼고 대응했다. 이러한 사고와 생활방식은 몸에 악영향을 미쳤다.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면역력을 떨어뜨렸다. 그러나 그 영향의 심각성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일의 진척에 대해서는 예민했지만, 몸의 변화에 대해서는 둔감했다. 예민한 성향이라고 해서 모든 것에 대해 민감한 것은 아니었다. 몸이 피곤할 때 휴식을 취하면 된다고 쉽게 생각했다. 몸의 역할이란 마음이 원하는 것을 이루도록 운동감각적인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고, 언제든 충전시키면 되는 것으로 단순하게 생각했다. 


  치료 중에 일상을 예민하게 살폈다. 글쓰기가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믿음으로 몸의 아픔과 마음의 불안을 다스리는 과정을 병상일기로 진솔하고 생생하게 기록했다. 또 암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체험한 성찰과 삶의 이야기를 에세이로 엮었다. 집필 과정에서 참된 자기와 만났다.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려고 노력했다. 지금까지 힘든 과정이었지만, 깨달음도 컸던 내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코로나 19가 일상의 정형화된 삶을 흔들어 놓았다. 사람들은 예기치 못한 환경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심리적인 혼란, 스트레스와 불안을 겪고 있다. 내 이야기가 어려운 생활환경에 처한 사람들에게 용기와 삶의 의욕을 고취시키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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