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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 파트너 이석재 Sep 14. 2020

고정용 마스크 본뜨기

떠도는 마음에 귀 기울이다

어제 저녁부터 금식에 들어갔다. 오늘 병원에서 CT 촬영을 하기 위해 조형제를 혈관에 넣는다. 조형제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려면 피가 맑아야 한다. 건강을 회복시키는 과정이니, 금식이야 불편 사항이 아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샤워를 했다. 병원의 안내문을 보면 '모의치료 전 가능하면 목욕을 하고 옵니다.'로 되어 있다. 치료 부위의 청결을 강조하는 것 같다.


  나는 병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공간 감성'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병원에 대한 통념적 인식을 버리고 편안하고 건강한 인식을 갖기 위함이다. 오늘도 30분 이상 일찍 병원에 도착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침의 서늘한 기운이 완연한 가을임을 느끼게 한다. 이 병원을 다닌 지도 한 달 반이다. 오늘은 어느 때보다 발걸음도 가볍고 몸도 생기 돋았다.



방사선 치료실에 대한 공간 감성 키우기


  오늘도 병원에서 가까운 지하철 역에서 내려 병원까지 산책했다. 아침 출근길이라 사람들의 발걸음이 빠르다. 나는 그들보다 한 걸음 늦은 속도로 걸었다. 멀리서 보니 긴 건널목의 신호등이 파란불이다. 예전 같으면 뛰어서 건널목을 건너려고 했을 것이다. 사실 며칠 전에도 뛴 적이 있다. 오늘은 다음번에 건너기로 했다. 몸의 긴장을 덜어내고, 몸의 움직임에 여유를 느끼도록 했다. 병원으로 가는 길 담벼락에 시든 장미꽃이 널려있다. 눈여겨보니 듬성듬성 아직 청춘의 기운을 품고 있는 꽃이 있다.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에 담았다. 꽃을 찍었다기보다 장미의 기운을 담았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여기저기 눈길을 주며 걷다 보니, 병원 입구에 도착했다. 아직 40분의 여유가 있다. 병원 앞에 있는 공원 벤치에 앉아 아침의 선선한 기운을 온몸으로 느꼈다. 금식이라서 커피를 마실 수 없다. 대신 긴 호흡을 즐겼다. 얼굴부터 세포에 작은 떨림이 이는 듯하며 전신으로 짜릿한 기운이 퍼졌다. 기운이 퍼져가는 길을 따라갔다. 내 몸의 형체를 식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나는 지금 이렇게 생기 있게 살아있다. 이 기운을 이곳을 찾는 날까지 끌고 가자.



첫 경험, 마스크 본뜨기


  방사선 종양학과에 도착하니 10시 10분이다. 30분에 예약을 했지만, 대기자가 별로 없어 빠른 속도로 진료가 이루어졌다. 탈의실에서 환자복으로 갈아 입고 모의 치료실 앞에서 대기했다. 10여분이 지났을 즈음, 내 이름을 부른다. 모의 치료실 내부는 큼직한 CT촬영장비로 위용에 찼다. 두 젊은 의사가 분주히 뭔가를 준비하고 있다. 한 의사의 안내에 따라서 검진대에 누었다. 환부에 정확하게 방사선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머리가 움직이면 안 된다. 따라서 머리를 고정시키기 위한 '고정용 마스크'를 먼저 제작했다. 머리를 원하는 위치로 고정시켰다. 이어서 의사는 작업 안내를 했다.


"마스크를 씌웁니다. 조금 뜨겁습니다. 머리를 고정해 주세요."


  넓은 수건 같은 것을 머리에 씌웠다. 내 얼굴의 윤곽을 느낄 정도로 부드러우면서도 무게가 느껴졌다. 한 명은 얼굴을 누르면서 마스크가 얼굴 표면에 밀착되도록 계속 눌러댔다. 특히 눈과 코 부위에 빈틈이 없도록 했다. 다른 의사는 가슴 쪽을 담당했다. 목과 쇄골이 있는 곳까지 마스크가 밀착되도록 했다. 따스한 기운이 상체에서 느껴졌다. 얼굴 부위를 본들 때는 마스크의 양쪽 끝을 집게로 고정시키는 것 같았다. 이어서 여자 간호사가 와서 동맥에 조형제를 주사했다. 이 조형제는 혈관을 타고 흐르며 몸을 뜨겁게 한다. 온몸으로 퍼지면서 뜨거운 기운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벤치에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전신에서 그 기운을 느낄 때와 같았다. 냉탕과 온탕을 오고 간다는 생각에 순간 웃음도 났다


    전에 독일을 여행했다. 해외여행에서 독일을 가장 많이 갔다. 주요 도시로 보면, 베를린과 뮌헨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도시와 지방을 여행했다. 2015년에는 리히텐슈타인 성을 찾아갔다. 19세기 중반에 나온 Wiheim Hauff '리히텐슈타인'이라는 소설에서 착안해서 성을 짓도록 했다. 이후 '잠자는  속의 공주'에도 소개된 멋진 성이다. 그곳에서 괴테의 데드 마스크 death mask 보았다. 무표정한 괴테의 얼굴에서 문학적 감성을 느끼기보다 호기심과 죽음의 기운을 느꼈었다.  마스크가 눈에 선했다. 지금 나의 데드 마스크를 뜨는 것일까? 잠시 고정 마스크를 제작하는 동안 마음이 떠돌았다.


  병원이라는 곳이 묘해서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삶과 죽음의 사건이 모두 연상된다. 내 몸 안에 생과 사가 모두 있는데 생의 세계만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스크를 떴던 의사가 나를 깨우는 듯했다.


"모두 끝났습니다. 천천히 일어나세요."


  나는 몸을 세우려고 했지만, 촬영대 위에 몸이 녹아내린 듯이 붙어서 잘 떨어지지 않았다. 의사가 등을 밀어 올리면서 나를 일으켜 세웠다. 일장춘몽을 꾸었는지, 그렇게 모의치료를 위한 마스크 작업은 끝났다. 그동안 진료를 받으면서 가장 꿈같은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그동안 쌓였던 긴장이 풀리고, 치료 계획이 구체화되면서 마음이 편안해진 모양이다. 앞으로 약 4주간 열심히 치료를 받고, 완치를 위한 노력을 한다면 모든 경과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것이다. 이러한 긍정적인 결과에 대한 상상이 오늘의 과정을 여유 있게 마치도록 도왔다.

     


  떠도는 마음의 내용이 달라졌다


  오늘 떠도는 마음을 따라간 심리 여행이 나를 평온으로 이끌었다. 이제 내 마음이 자신감으로 꽉 차있음을 느낀다. 본격적으로 방사선 치료가 시작된다. 이 치료과정에서 통증과 불편함이 있을 것이고, 때론 상상했던 것보다 더 클 수 있다. 그러나 처음 병원을 찾아왔을 때 느꼈던 긴장과 걱정은 거의 사라졌다. 나는 떠도는 마음속의 생각들이 새로운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긴장과 걱정이 안정과 기대로, 불편과 위축이 연민과 기회로 바뀌었다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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