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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 파트너 이석재 Sep 08. 2020

공간 감성, 치료를 위한 마인드 셋

떠도는 마음에 답이 있다

공간 감성을 키우자


오늘은 방사선종양학과에서 상담을 받기 위해 일찍 집을 나섰다. 첫 이슬이 내리는 백로를 하루 지난날이다. 공기도 선선하고 폭풍 하이선이 동해를 지나가면서 비를 많이 뿌린 다음 날이라서 하늘도 맑다. 집에서 지하철을 타고 병원 근처에 있는 역까지 이동한 다음, 도보로 병원까지 걷기로 했다. 도보로 20분 정도 소요되기 때문에 시원한 공기를 마시면서 산책하기로 했다. 이번 통원 치료의 경우, 병원이라는 공간에 감성적으로 친숙할 필요성을 느꼈다. 병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기는 처음이라서 모든 것이 낯설다. 치료가 하루 이틀 만에 끝날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병원이 친숙하게 느껴져야 한다. 나는 이와 같이 사람들이 공간에 대해 느끼는 감성을 '공간 감성'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공간 감성을 키우는 실천 행동

 

  첫째,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하자. 해외여행을 떠난다고 상상해 보자. 원래 몇 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할 필요성도 있지만, 가급적이면 서둘러 공항에 도착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왕 시간을 보낸다면, 일찍 도착해서 식사도 하고 혹시 준비물이 빠졌는지를 생각해 보면서 쇼핑을 하고 싶어 한다. 아니면 커피숍에 앉아서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행의 맛을 즐기고 싶어 한다. 병원도 그런 물리적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둘째, 좋아하는 휴식 공간을 정해보자.  병원 내에 있는 카페, 식당, 빵집 등과 같이 휴식할 수 있는 곳을 정해보자. 또는 건물 밖에 있는 장소나 공원이 있다면, 좋아할 만한 장소를 물색해 두자. 나는 병원에 있는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들고 병원 밖에 마련된 작은 공원 안의 벤치를 정해 두었다. 한 시간 정도 일찍 도착해서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오늘 있을 일정을 미리 점검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길 소망한다.


  셋째, 다른 환우의 정서를 간접 체험해보자. 병원을 찾는 다른 환우들의 모습을 관찰한다. 그들의 모습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아보자. 보호자와 환자가 담소하는 모습을 눈여겨본다. 혼자 독서를 하는 사람, 보호자와 산책하는 사람들을 마치 자연의 일부인 듯이 바라다본다. 이곳도 지금까지 경험한 일상과 연계된 생기 있는 공간으로 생각해 본다.


  넷째, 병원이라는 공간에 대한 몸과 마음의 반응을 관찰하자. 병원을 갈 때 주저하며 시간을 가능한 끄는지, 아니면 평소와 같이 행동하는지를 살펴본다. 마음은 어떤가? 어떤 느낌과 생각을 갖는가? 불편해하는 점이 있다면 무엇 때문인가? 병원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는가? 그 이미지는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몸과 마음의 반응을 읽고 불편함과 긴장을 해소시켜 보자.



방사선종양학과에서 경험한 공간 감성


  이곳은 그동안 다닌 상담소나 센터와 같은 건물에 있으면서도 실내가 밝고 공간 설계가  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진료 의사가 있는 상담실 앞에 해당 간호사의 사무공간이 있는 , 복도 한가운데 일렬로 배열되어 있어 깔끔했다. 커피를     30  접수를 마쳤다. 10 30분에 상담 약속이지만, 10 10분경에  차례가 왔다. 생각보다 일찍 진료 의사와 상담이 진행되었다. 의사는 나를 보며 먼저 인사를 건넨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혼자 오셨습니까?"

"네, 혼자 왔습니다."


  그는 컴퓨터 화면의 오른편에 환부를 보여주는 CT 사진을 띄워 놓고, 왼편에 있는 방사선 치료와 관련된 정보들 살폈다. 그리고 방사선 치료 일정을 소개했다. 약 3.5주에서 4주간, 주말과 공유일을 제외하고 매일 일정 시간에 치료를 진행한다고 말했다. 약 15회에서 20회를 진행하는 셈이다. 진료 의사는 방사선 치료의 후유증에 대해서도 기억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내용을 소개했다. 몇 가지를 메모해 보았다. 두경부이기 때문에 입안이 헐 수 있어 식사가 불편하다. 침샘에 방사선이 조사되기 때문에 침의 량이 부족해 입 안이 건조해진다. 미각이 떨어질 수 있다. 방사선이 빠져나가는 부위에 탈모가 진행될 수 있다. 피부가 손상될 수 있다. 그는 많은 내용을 말했지만, 나는 두 가지 후유증에 긴장했다. 탈모 가능성과 충치가 있는 경우 미리 발치를 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다.


  내 몸이 심히 긴장되는 느낌을 받았다. 탈모는 가능성이고 나중에 원상 복귀되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러나 충치는 얘기가 다르다. 현재 치과 치료를 받을 만한 충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치과 진료는 다르게 나올 수 있다. 의사는 내 표정을 읽으면서, 차분하게 질문을 했다.


"혹시 궁금한 것 있으세요? 치과 진료는 미리 받아보세요. 방사선 치료 중에 치과 문제가 발생하면, 치료가 좀 복잡해집니다. 치료 중에 발치는 하는 것은 미리 하는 것보다 주의가 필요합니다."


  만일 발치를 한다면, 방사선 치료가 종료된 이후에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 일이 점점 커지는 것이다. 방사선 치료에 집중할 생각을 했는 데, 치료가 더 복잡해질 수도 있다. 순간적으로 마음이 떠돌며 머릿속이 무거워졌다. 이 자리에서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은 없다. 치과 문제는 다른 진료소에서 처리할 일이다. 나는 궁금한 몇 가지를 질문하고 상담소를 나왔다. 담당 간호사가 '두경부의 방사선 요법과 자가관리'에 대해 안내를 상세하게 해 주었다. 방사선 치료에 대한 큰 윤곽이 잡혀 마음이 편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큰 걱정거리가 생겼다. 담당 간호사는 치과 진료 예약을 잡았다.



머리를 때리는 아픔과 슬픔
급격한 감정의 격랑에 휩싸이다


  상담을 마치고 원무과로 향하는 데 카톡 문자가 왔다. 세상에 이런 슬픔이 있나. 지인이 보낸 문자를 보니 재작년에 결혼한 둘째 딸이 코로나로 인해 소천했다는 소식이다. 나는 너무나 큰 슬픔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지인은 딸 바보라서 두 딸을 시집보내며 매번 식장에서 눈물을 흘렸다. 소중한 막내딸을 먼저 앞세운 것이다. 나는 내 딸을 잃은 것과 같은 슬픔을 느껴 병원 로비에서 울 수밖에 없었다. 감정을 가라 앉히고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위로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전화벨이 울리고 전화기에서 그의 목소리를 들을 때, 더 이상 내 감정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위로를 하려고 전화를 했지만, 뭐라고 위로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위로를 받았는지도 모른다. 너무 허망하고 미안하다.


  작년부터  나는 내 감정에 솔직하기로 했다. 내면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있는 그대로 드러내 표현하기로 마음먹었다. 누님 댁에서 설 인사를 나누면서 순간적으로 쏟아지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형 내외와 내 자녀, 짝이 있는 자리였다. 오늘도 이성이 슬픔을 억누르지 못했다. 병원을 나서며 나의 감정을 읽어 보았다. 감정을 대하는 나 자신도 살필 수 있었다. 감정에 예민한 나를 본다. 슬픔에 휩싸인 내면 아이를 본다. 일곱 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듯했다. 성인이 되면서 그 슬픔을 억누르며 이기려 했지만, 온전히 위안받지 못하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중고등 과정을 다니면서 감정을 억누르는 경향이 컸다. 이제 사회적 얼굴의 부담이 덜어지면서 내면 아이가 기회만 되면 자신을 드러냈다.



내 삶의 맥락에 대한 공간 감성
의도적으로 내 감정을 손대고 싶지 않다


  내 마음이 떠돌며 학창 시절로 갔다. 대학교 1학년 때 의대 앞에서 친구로 지냈던 의대생이 나에게 상담 공부를 권했다. 나도 당시 상담에 관심이 많았다. 성인이 되어 코치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역할과 연령, 성별의 인물을 만났다. 그 과정에서 코칭 대상자의 감정에 쉽고 빠르게 공감하는 내 모습을 보았다. 감정에 지나치게 쏠리는 모습도 보았다. 어쩌면 상담을 통해 내면 아이를 깊게 만났다면, 내 감정 처리 방식은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 떠도는 생각은 내게 뭐하고 말하고 있나?


  "그래 나는 지금 이대로가 좋다. 성인으로서 순간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드러내는 모습 자체를 더 많이 허락하고 싶다. 숨길 것도 없고 억누를 것도 없고 부끄러워할 것도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이고 싶다."


  최근 림프종 치료를 위한 일련의 활동에서 내 감성이 더 예민해져 있다. 생로병사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더 감성적으로 현실 인식을  할 가능성도 있다. 지인이 딸을 잃었다는 소식은 내 감성을 더 자극했다. 지금의 내 감정과 얽히면서 상승작용을 했을 것이다. 림프종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겪게 될 여러 감정을 모두 극단으로 체험하도록 기회를 주면서, 감정으로 보는 세상의 눈을 달라지게 할지도  모른다. 치료가 완치로 마무리될 때, 내가 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그때 어떤 생각과 느낌으로 세상을 이전과 다르게 경험한다고 말할까? 그때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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