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한 세상에 지친 당신에게

화려한 8K보다 흐릿한 40만 화소가 주는 위로

by 참새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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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모공의 개수까지 세어질 듯한 선명함을 강요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손바닥만 한 화면 속 세상은 8K라는 이름으로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초고화질을 뽐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투명한 화질 앞에서 우리의 눈은 점점 더 피로해져만 갑니다. 모든 것이 지나치게 잘 보인다는 것은, 때로는 그 어떤 숨을 곳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잔인한 통보와도 같습니다. 잡티 하나, 머리카락 한 올의 흐트러짐조차 용납하지 않는 고해상도의 세계는, 우리에게 삶 또한 그처럼 결점 없이 완벽해야 한다고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듯합니다. AI가 그려낸 매끈하고 기괴할 정도로 완벽한 이미지들이 범람하는 이 시대에, 오히려 40만 화소의 뭉툭하고 흐릿한 세상을 담아내는 일명 '덤폰(Dumb Phone)'이 역설적인 유행으로 번지는 이유는 아마도 이 숨 막히는 선명함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본능적인 몸부림일지도 모릅니다.


스마트폰이라 불리는 똑똑한 기기들은 우리의 일상을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우리를 24시간 연결된 상태라는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반면 전화와 문자, 그 가장 기본적인 기능만을 남겨둔 덤폰은 그 이름처럼 '멍청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부하 걸린 우리에게 멈춤의 미학을 가르쳐주는 현명한 도구처럼 느껴집니다. 40만 화소의 카메라 렌즈를 통해 바라본 세상은 경계가 모호합니다. 저 멀리 있는 간판의 글씨는 뭉개져서 읽히지 않고, 사랑하는 이의 얼굴은 뽀얀 입자 속에 잠겨 구체적인 주름 대신 따스한 분위기만을 남깁니다. 그 흐릿함은 기술의 퇴보가 아니라, 상상력이 깃들 수 있는 여백의 복원입니다. 모든 정보를 낱낱이 보여주지 않기에 우리는 그 빈틈을 자신의 감정과 기억으로 채워 넣을 수 있으며, 비로소 보는 것이 아닌 느끼는 행위를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은 비단 전자기기의 스펙 경쟁에만 그치지 않고 우리네 삶 깊숙이 침투해 있습니다. 우리는 마치 최신형 스마트폰처럼 멀티태스킹에 능해야 하고, 배터리가 방전될 때까지 효율을 내야 하며, 언제나 선명한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착각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나 덤폰이 주는 투박한 질감은 우리에게 "조금은 흐릿해도 괜찮다"라고, "모든 것이 명확하게 보일 필요는 없다"라고 나지막이 속삭입니다. 노이즈가 자글자글한 사진 속에서 오히려 피사체의 본질이 더 아련하게 다가오듯, 우리의 삶 또한 약간의 실수와 빈틈이 있을 때 비로소 인간적인 온기를 품게 됩니다. 40만 화소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때 날카롭던 세상의 모서리는 둥글어지고, 타인의 시선에 베였던 상처는 뭉근하게 덮입니다. 그것은 기술이 줄 수 있는 가장 아날로그적인 위로이자,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기꺼이 선택한 불편함 속의 안식입니다.


결국 우리가 덤폰을 손에 쥐는 행위는 단순히 레트로 감성을 쫓는 유행이 아니라,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작은 혁명일 것입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알림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잠시 로그아웃할 권리,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쨍한 인증숏 대신 내 마음속에만 저장되는 흐릿한 순간을 즐길 권리를 되찾는 일입니다. 화려한 8K 영상은 시신경을 자극하여 뇌를 깨우지만, 흐릿한 40만 화소의 사진은 가슴을 두드려 마음을 재웁니다. 오늘 하루쯤은 초점을 잃은 사진처럼 멍하니 있어도 좋습니다. 굳이 선명하게 규명하지 않아도, 당신의 하루는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운 색감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가끔은 세상의 해상도를 낮추고 마음의 감도를 높이는 일, 그것이 이 숨 가쁜 시대를 건너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오는 일요일 동묘 벼룩시장 다녀올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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