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멀티플라이어》
누군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이상하게도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져 고개를 떨군 적이 있다. 분명 대화는 그럴듯하게 흘러갔고 겉으로는 아무런 다툼도 없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버린 듯한 공허함이 가슴을 짓눌렀다. 반면 어떤 이를 만나면 내 안의 아주 작은 불씨가 거대한 횃불이 된 듯한 벅찬 고양감을 안고 돌아오기도 한다. 도대체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리즈 와이즈먼의 책 《멀티플라이어》를 읽으며 나는 그 오랜 의문의 실타래를 풀 수 있었다. 세상에는 타인의 재능을 기어이 끄집어내어 만개하게 돕는 '멀티플라이어(Multiplier)'가 있는가 하면, 상대의 빛을 교묘히 가로막고 질식시키는 '디미니셔(Diminisher)'가 존재한다는 서늘한 진실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디미니셔는 마치 검은 구멍과도 같다. 그들은 자신이 가장 똑똑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타인의 지성을 갉아먹고, 주변 사람들을 수동적인 구경꾼으로 전락시킨다. 그들 곁에 있으면 나는 본래의 나보다 훨씬 작고 무능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나의 아이디어는 그들의 입을 통해 그들의 성과로 둔갑하고, 나의 열정은 그들의 차가운 냉소 앞에서 길을 잃는다. 책을 읽는 내내 등골이 서늘해졌던 이유는, 지난날 나를 숨 막히게 했던 몇몇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들은 타인의 성장을 돕는 척하면서 실은 자신의 제단을 쌓는 데 타인을 소모품으로 쓸 뿐이었다. 저자의 말처럼 디미니셔는 단순히 능력이 부족한 리더가 아니라, 타인의 가능성을 고갈시키는 위험한 존재다. 그러니 만약 당신의 주변에 숨 쉬는 것조차 눈치 보게 만드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는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당신의 빛을 질투하는 그림자일 가능성이 높다.
반면 멀티플라이어는 볕이 잘 드는 창가와 같다. 그들은 자신의 지성을 과시하기보다 타인의 지성을 이끌어내는 데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한다. 그들 앞에 서면 나는 더 똑똑해지고, 더 용감해지며, 내가 미처 몰랐던 나의 잠재력까지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라는 질문 하나로 상대의 머릿속을 춤추게 만들고, 실패조차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도록 단단한 지지대 역할을 자처한다. 책은 말한다. 멀티플라이어는 천재를 만드는 천재라고. 그들은 내가 가진 것보다 더 큰 역량을 발휘하게끔, 나를 믿고 기다려주는 사람들이다. 인생에서 이런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단순한 행운을 넘어선 축복이다. 나의 재능이 묵살당하지 않고 온전히 빛을 발할 수 있는 토양을 만난 것이기 때문이다.
책장을 덮으며 나는 단호한 결심 하나를 마음에 새겼다. 나의 존엄과 재능을 갉아먹는 디미니셔와는 거리를 두겠다는, 생존을 위한 다짐이다. 관계라는 미명 아래 나를 착취하고 소진시키는 사람 곁에 머물기에 우리의 인생은 너무나 짧고 소중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나 스스로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누군가에게 볕이 되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늘을 드리우는 사람인가. 타인의 성과를 가로채지 않고, 그가 가진 고유한 빛을 더 환하게 밝혀주는 사람. 비록 완벽한 멀티플라이어는 되지 못할지라도, 적어도 누군가의 가능성을 짓밟는 디미니셔로는 살지 않겠다고. 그것이 이 책이 내게 남긴, 사람을 향한 가장 뜨거운 예의일 것이다. 2026년 나의 곁에 좋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주길 그리고 나도 그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