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거운 배낭 속에 '빛' 하나를 더 얹기로 했다

플래시

by 참새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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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부터 내 등 뒤엔 늘 묵직한 배낭이 매달려 있었다. 누가 보면 군장이라도 꾸려 행군을 떠나는 줄 알았을 것이다. 16인치 맥북에 렌즈가 마운트 된 카메라,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한 보조 배터리와 잡동사니들까지. 어깨를 짓누르는 그 무게가 마치 내 삶의 중력처럼 느껴지곤 했다. 정작 하루 종일 그 가방을 열어 꺼내는 것이라곤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 일상을 담기 위한 카메라와 잠시 짬을 내어 두드리는 노트북뿐이었는데도 말이다. 어쩌면 그 무거움은 불안함이었을지도 모르고, 세상의 모든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은 미련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묵묵히 무게를 견디며 뷰파인더 속 세상을 훔쳐보는 관찰자로 살아왔다.


그러다 지인들의 부탁으로 몇 번의 촬영을 해주게 되면서 나의 사진 생활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탁 트인 하늘 아래 자연광이 쏟아지는 거리가 아닌, 빛이 차단된 실내에서의 촬영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조리개를 렌즈가 허락하는 한계까지 개방하고, ISO 감도를 노이즈가 자글거릴 정도로 올려보아도 뷰파인더 속 세상은 야속할 만큼 어두웠다. 취미로 혼자 찍을 때야 "어둡네, 분위기 있네" 하며 넘길 수 있었겠지만, 누군가의 부탁을 받은 이상 이야기가 달랐다. 적어도 보통 이상의 퀄리티, 그들이 기대하는 그 이상의 결과물을 안겨주고 싶다는 그놈의 책임감이 내 안에서 꿈틀거렸다. 어깨의 물리적 무게보다 마음의 무게가 더 무겁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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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평생 내 사진 인생에 없을 것 같았던 장비, 카메라 플래시를 들였다. 자연스러운 빛을 사랑한다는 핑계로 외면해 왔던 인공의 빛을 내 손으로 선택한 것이다. 유튜브라는 훌륭한 선생님을 모셔두고, 늦깎이 학생처럼 빛의 각도와 광량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셔터를 누르며 플래시를 터뜨린 순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그토록 고집했던 자연광만이 정답은 아니었음을. 팡하고 터지는 그 짧은 빛 한 줄기가 피사체의 윤곽을 선명하게 살려내고,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색채를 생생하게 끌어올리는 광경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빛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단순히 밝기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을 바라보는 선명도의 차이였고, 그것은 곧 대상을 향한 나의 태도와도 닮아 있었다. 이제 내 배낭은 플래시 하나만큼 더 무거워졌지만, 뷰파인더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가볍고 산뜻하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빛을 다루는 법을, 아니 빛을 통해 책임감을 완성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배움은 평생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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