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끈이 풀린 줄도 모르고 앞만 보고 뛰던 날이 있었다. 숨은 턱 끝까지 차오르고, 발 밑은 자꾸 엉키는데 멈추면 그대로 세상 뒤편으로 밀려날 것 같은 공포. 그런 날 있잖아. 남들은 다 에스컬레이터 타고 유유히 올라가는 것 같은데, 나만 고장 난 계단 붙잡고 낑낑거리는 기분. 사실 나도 얼마 전까진 그랬다. 중요한 미팅을 앞두고 구두 굽이 부러졌을 때, 길 한복판에서 망연자실 서 있던 내 모습이 얼마나 한심해 보이던지. 그때는 그 작은 사고가 내 인생 전체의 실패처럼 느껴져서 왈칵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차가운 편의점 의자에 앉아 본드로 대충 붙인 구두를 내려다보며 생각했지. '아, 진짜 인생 왜 이러냐.'
그런데 신기한 건,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죽을 것 같던 순간들이 술자리 최고의 안주가 된다는 거다. 그때 부러진 구두 때문에 절뚝거리며 들어갔던 내 모습이 오히려 긴장했던 클라이언트의 마음을 녹였고, 결국 '인간미 있다'는 소리를 들으며 계약을 따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그 부러진 굽은 내게 찾아온 뜻밖의 기회였던 셈이다.
지금 당신의 마음속에 소용돌이치는 그 고민들도 아마 비슷할 거다. 당장은 파도처럼 당신을 집어삼킬 듯 무섭게 달려들겠지만, 결국 그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는 단단하게 굳은 모래사장이 남는다. 밤마다 천장을 보며 한숨 쉬느라 잠 못 드는 그 일들이, 훗날 누군가에게 "야, 나도 그때 진짜 막막했거든"이라며 웃으며 건넬 수 있는 무용담이 된다는 사실을 믿었으면 좋겠다.
세상은 가끔 우리를 시험하려 들고, 유독 나만 힘들게 하는 것 같아 억울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모진 바람이 불지 않으면 우리 삶에 근육이 생길 틈이 없다. 어차피 지나갈 폭풍이라면 조금 더 뻔뻔해져도 괜찮지 않을까. "그래, 어디 한번 더 해봐라. 나중에 얼마나 크게 웃으려고 이러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오늘 밤은 그저 고생한 당신의 어깨를 한 번 툭 쳐줬으면 한다. 내일의 해가 뜰 때, 당신은 오늘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사람으로 눈을 뜰 테니까. 비가 오고 나면 땅이 굳듯이, 지금의 그 시린 시간들이 당신의 인생을 가장 찬란하게 빛내줄 밑거름이 될 거다. 분명히, 머지않아 우리는 그땐 그랬지 하며 소리 내어 웃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