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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계산인 홍석경 Jul 23. 2023

[돌로미티 #2] 이스탄불의 흑해 해변

흑해의 물빛은 확실히 검더라

이태리 돌로미티 지역을 트래킹하기 위해서는 베네치아(베니스) 공항으로 입국해야 했는데 대한항공에는 베니스 직항편이 없어서 일단 인천공항 -> 밀라노 (또는 로마) 공항까지 간 다음, 여기서 제휴 항공사인 프랑스 에어로 갈아타고 베니스 공항으로 가야 했다. 그런데 적립된 마일리지를 사용하여 인천 -> 밀라노 (또는 로마) 항공편을 티케팅하려고 했더니, 내가 원하는 날짜엔 마일리지로 좌석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게 인천 -> 이스탄불 항공편이었다. 일단 이스탄불까지 날아간 다음, 여기서 터키 항공으로 갈아타서 베니스 공항으로 갈 요량이었다. (이렇게 할 경우, 자동환승이 안되기 때문에 일단 이스탄불 공항에서 짐을 찾아 1층 로비로 나온 다음, 다시 3층 출국장으로 올라가 터키항공 사무소에 들러 짐을 부치고 탑승권을 받고 출국검사를 받아야 하는 불편함이 따르고 여유시간이 최소 4시간은 필요하다.)


대한항공의 인천 -> 이스탄불 항공편은 마일리지로 내가 원하는 날짜의 항공권을 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 출발하는 날부터 아침 일찍 서두는게 싫어서 오후 1:40시에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이스탄불에 오후 7:40시에 도착하는 항공권을 구입했더니, 당일 베니스로 떠나는 터키항공편은 오후 5시경에 마감되어 할 수 없이 이스탄불에서 하루를 묵어야만 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기왕이면 이스탄불 구시가지에 숙소를 정해서 잠깐이라도 역사도시를 구경할까 싶었는데 다음날 오전 11:40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려면 적어도 4시간 전인 오전 7:40시에는 호텔을 나서야 했기에 아침도 먹지 못하고 출발해야 할 판이었다. 그래서 아쉽지만 이스탄불 구시가지 구경을 포기하고, 공항에서 택시로 30분 거리의 호텔을 구글지도에서 탐색하여 공항 근처 흑해 연안의 한 호텔을 예약하였다.


인천에서 이스탄불 공항까지 비행시간은 12시간이고, 이스탄불에서 베니스 공항까지는 2.5시간이니까 전체 비행시간은 14.5시간이다. 첫날 저녁 8:30시쯤에 새로 지은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했는데, 공항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컸다. 비행기 활주로만 얼핏 봐도 3개쯤 되어 보였는데, 공항건물의 규모도 엄청 컸다. 특히 가로 폭이 상당히 넓어서 수화물 찾는 곳에서 캐리어를 찾은 다음 공항 밖으로 나갈 때도 한 참을 걸어나와야 했다. 공항건물의 전체적인 외형 (디자인 컨셉)은, 내가 보기에,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 때 황실로 사용했던 톱카프 궁전의 접견실(Audience Room)을 모티브로 하여 설계한 듯 싶었다.

그림 1. (왼쪽) 톱카프 궁전의 접견실(Audience Room), (오른쪽) 새로 지은 이스탄불 국제공항의 외관 및 내부 모습. 공항은 어마어마하게 크다.


내가 묵은 호텔은 다소 한적한 동네에 위치했는데 한 여름철에는 이스탄불 시민의 피서지인 듯 싶었다. 호텔 건물의 외관은 마치 우리나라 연립주택을 살짝 닮은 꼴인데, 이 동네 건물이 대부분 이렇게 생긴 걸로 봐서는 터키식 건축양식으로 보였다. 호텔 방에서 짐을 풀고 커튼을 여니 밖에는 짙은 어둠이 깔려서 흑해 구경은 내일 아침 일찍 하기로 하고, 출출한 배를 달래기 위해 가까운 마트에 들러 빵이랑 음료를 사왔다. 다음날 아침엔 5시쯤에 눈이 저절로 떠져서 발코니로 나가 흑해 일출을 구경하는 행운을 누렸다. 흑해의 태양은 매우 강렬했다.

그림 2. (위, 왼쪽) 짙은 어둠이 깔린 흑해 연안 마을 풍경, (위, 오른쪽) 흑해의 일출, (아래) 호텔 정원과 마을 골목길에서 본 아시아쟈스민, 능소화?, 접시꽃


오전 11:40시 비행기를 타려면 호텔에서 늦어도 9시엔 길을 나서야 했기에 서둘러 흑해 해변 구경에 나섰다. 호텔 출입문 바로 옆에서 자라는 아시아 쟈스민(=마삭줄)의 향기가 온 정원에 진하게 깔렸는데, 마치 인동초 꽃향처럼 향기롭다. 스마트폰의 구글 지도를 켜고 골목길을 이리저리 내려가 바다가 보이는 큰 길가로 나섰다. 해변 길을 따라서 가게와 음식점이 뜨문 뜨문 있는데, 주변환경이 깔끔하게 관리되지 않아 다소 삭막해 보였고 바람에 쓰레기가 날리는 어수선한 광경이 펼쳐졌다. 커다란 떠돌이 개가 한동안 우리를 따라오는 한적한 도로를 따라서 10여 분을 걸어가니 모래 해변이 나타났다. 우리는 해안도로를 건너 모래밭으로 들어갔다. 해변은 아직 철이 일러서 그런지 아니면 너무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지 해수욕을 즐기는 가족 4-5명만 눈에 띄고 휑뎅그레 했다. 그러나 흑해의 바닷물은 너무나 깨끗했고, 바닷물이 철썩 철썩 소리를 내며 들고나는 해변은 고은 모래가 아니라 여러 색깔의 몽돌이 쫙 깔린 몽돌해변이었다. 동글동글한 몽돌 가운데 유난히 눈에 띄는 녹색 자갈은, 자세히 살펴보니 돌이 아니라 유리조각이었다. 녹색의 깨진 유리조각이 바닷물에 이리저리 휩쓸리면서 날카로운 부분이 갈리고 갈려서 녹색 몽돌처럼 된 것이었다.

그림 3. 숙소 근처에 있는 흑해 해수욕장. 바닷물은 매우 깨끗했고, 각가지 아름다운 색깔의 자갈이 쫙 깔린 몽돌해변이다.


흑해(Black Sea)는 얼핏 보기에도 검게 보였다. 그래서 은 바다로 불리는 것일까? 2022년 6월에 미항공우주국(NASA)의 인공위성에서 촬영한 흑해의 컬러 이미지를 보면, 매우 어두컴컴한 푸른색이다. 그야말로 시퍼런 푸른빛을 띄는, 바로 이웃하고 있고 스포러스 해협으로 서로 연결된 지중해 바다 색깔과도 크게 다르다. 흑해의 바다 색깔이 왜 이렇게 어두컴컴한 을 띄는지 조사한 바에 의하면, 흑해에 많이 서식하는 식물성 플라크톤의 번식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아침 8시가 다가오기에 우리는 해변 구경을 마치고 서둘러 호텔을 향해 걸어갔다. 돌아가는 길에 폐차가 몇 대 세워져 있는 공터에서 어린 아기를 안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젊은 가족이 눈에 밟혔다. 아마도 폐차를 집 삼아 살고 있는 집시 가족인 듯 싶었는데 두 세대가 각기 어린 아기를 안고 젊은 여인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까 해변으로 가던 우리랑 눈이 마주쳤었다. 나는 웃으면서 '메르하바'하고 손을 가볍게 흔들었고 젊은 여인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메르하바'하며 살포시 웃었다.


호텔로 돌아갈 때 그냥 모른 채 지나치기가 마음에 걸려서 오는 길에 봤던 자그마한 동네 빵집으로 급히 향했다. 아까 올 때는 해수욕장 근처에 있었던 것 같은데... 숙소 방향으로 한참을 걸어가서야 빵집이 나타났다. 방금 문을 연 빵집에 들어가 투르키예인이 즐겨 먹는 시미트(simit)랑 애기들이 좋아할만한 달콤해 보이는, 마카롱처럼 생긴 과자를 10유로에 맞춰 달라고 했다. 이 가게는 카드 결재가 안되어 갖고 있던 트래블 월렛(외환 체크카드)으로 리라화 결재를 할 수가 없어서 마침 지갑에 있던 10유로에 맞췄던 것이다. 시미트랑 마카롱을 비닐봉투 2개에 나누어 담고, 오던 길에 봤던 수퍼마켓에 들러 물을 2병 사려했으나 이른 아침이어서 그런지 출입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할 수 없이 집시 가족이 있는 곳으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두 가족에게 빵이랑 과자가 담긴 봉투를 건네주었더니 젊은 여인들의 얼굴이 환해지면서 우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우리는 한결 가벼워진 기분으로 호텔을 향해 빠른 걸음을 걸었다. 오전 9시에 공항가는 택시를 예약해 두었기에 호텔에서 제공하는 아침식사를 빨리 하고 짐을 챙겨서 9시까지 로비로 나와야했다. 암튼 빠른 속도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호텔에서 불러준 택시를 타고 이스탄불 공항으로 갔다. 공항 출국장에는 아주 많은 사람이 길게 줄을 서 있었고, 벽에 걸린 초대형 LED 광고판에는 'BTC TURK'라는 터키회사의 광고를 무한 반복으로 틀어주었다. 마치 잘 만든 영화의 예고편을 보는 듯한 이 회사 광고는 전광판 뿐만 아니라 공항 곳곳에서 영문 회사이름을 수가 있었기에 나는 이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궁금해서 구글검색을 해보았다. BTC는 비트코인(Bit Coin)의 약자이고, BTC TURK는 투르키예에서 가장 큰 암호화폐 거래소라고 한다. 세상에... 우리나라에선 이렇게 노골적으로 광고하는 암호화폐 거래소를 본 적이 없는데 이 나라에선 대놓고 광고를 하는 것으로 봐서 투르키예 경제가 어떠한지 미루어 짐작이 갔다. 내가 투르키예를 처음 여행했던 2015년에는 1리라=400원이었는데, 2020년 초에는 1리라=200원으로 떨어지더니, 2023년 6월에는 1리라=50원이었고, 지금 글을 쓰는 7월 중순에는 1리라=48원이다. 8년만에 리라화의 가치가 1/8로 떨어진 것이다. 임금은 오르지 않고 물가만 최근 2-3배 올라서 투르키예 민초들의 삶이 매우 어렵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투르키예나 우리나라나 무능한 막장 정부가 들어서서 서민들만 개고생 중이다. 국민의 잘못된 선택으로 나라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그림 4. 이스탄불 국제공항 출국장의 LED 광고판: 투르키예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BTC TRUK 광고가 무한 반복되는데 마치 잘 만든 한편의 영화 예고편을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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