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aching is Learning
지난주 토요일 만났던 젊은 여자분을 연습장에서 다시 만났다. 짧은 미소로 인사를 나누었는데 그녀의 스윙은 지난주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내가 괜한 참견을 했구나... 스윙을 팔로 흐느적거리면서 피니쉬 모양을 몸으로 그리는 듯한 모습이다. 공은 전혀 맞추지 못한 채로... 왜 그런지 문제점과 원인이 눈에 들어온다. 나름 팔에 힘을 빼고 레깅(lagging)을 연습하고 있는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니 골프 레슨을 받아야겠다면서 동네 아카데미를 찾아가야겠다고 한다. 레슨을 받는 것이 힘들겠지만 유튜브를 듣다 보니 너무 다양한 말이 있어 아무래도 프로에게 배워야겠다고 말한다. 예전에 배운 곳을 소개해준 후, 다시 잠시 참견을 했다. 오른손 손목을 이용해 공을 맞춰보라고... 이게 제일 중요하다고... (시범을 보여주면서) 그러면서
Me: 저를 신뢰하기 어렵겠지만요...
She: 아니에요... 그리곤 그녀는 사라졌다. (잠시 누군가 통화를 하는 사이에)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 참견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그들의 눈에는 참견러가 그저 자기 자랑을 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실력이 출중하면 모를까 그렇지도 않을 때는 더욱 신뢰도 가지 않고 오히려 실력 향상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참견러는 어디에서나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다. 그럼에도 왜 나는 참견러를 자처하려는 걸까?
내게 참견은 배움이기 때문이다. Teaching is Learning.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 가르치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가르치는 자의 시선과 관점 그리고 배움의 자세는 그저 배우기만 하는 자와는 다르다. 물론 무조건 배워야 하는 시기가 있다. 그런 시기를 넘어 가르치는 자가 되는 순간 실력이 향상되고 이전의 차원을 넘어서게 된다.
예를 들어 임팩트(Impact)가 좋다는 말을 듣게 되면 무의식적으로 했던 행동의 원인을 찾게 된다. 그러면서 지식을 하나씩 쌓아가면서 누군가에게 설명을 해 주는 단계로 넘어간다. 설명을 하다 보면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인지 대충 아는 것인지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 즉 메타인지력이 늘어남을 느낀다. 나 자신을 알게 되는 일. 테스형(소크라테스)이 말했듯이 내 무지함을 알게 도와주는 지름길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다. 최소한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음을 알게 해주기에 자칭 참견러가 되고자 하는 것 인지도 모르겠다.
골프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왕초보나 백순이가 구력 10년이 된 사람을 가르치려 하지만, 싱글 플레이어는 누군가 질문을 하면 그제서야 알려준다고 한다. 하지만 프로는 반드시 돈을 내야만 알려준다. 결국 이 농담 같은 진담은 참견하는 사람들을 비웃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 같은 보기 플레이어(90타 정도)에겐 참견할 자격도 없고, 참견한다는 것 자체가 '소가 웃고 갈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난 내 스윙과 지식의 부족함을 알기에 배우고 교정하려 애쓴다. 이런 자세는 프로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연습량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은 나와 같이 라운드를 소풍으로 여기는 사람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그렇기에 입을 다무는 것이 마땅하다. 그럼에도 아마추어 골퍼들의 스윙을 보면 그들의 문제점이 보이고 원인과 교정 방법을 찾게 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성장통이다. 성장하는 중에 겪는 통증 말이다. 한참 자라는 중인 것이다. 참견을 하고 싶어도 눈에 보이지 않아서 하지 못하기도 하니, 문제점과 원인이 보인다는 것은 아주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보이는 게 다는 아닌 것도 안다. 어떠한 연습을 위해 남이 보기에 이상한 스윙을 연습 한다는 것 정도는 안다. 또한 문제점을 알면서도 고지만 교정하는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안다. 나도 그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