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순간 국가의 존재

전세기 보내주는 나라에 산다는 것은

by 연우

올해도 어김없이 저를 잘 알지 못하는 많은 기관(네이버 메인화면 또는 무슨무슨 은행 같은)에서 생일 축하 메시지가 날아왔습니다. 사실 저는 음력 생일을 챙기고 있어서 큰 의미는 없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습니다. 또한 오늘을 즈음하여 약 한 달은 저만의 생일시즌 시작이기도 하죠.

다른 해의 생일이었다면 여유 있게 지냈을 이번 시즌을 스트레스를 달고 지냅니다. 한국에서의 이사도 쉽지 않은데 해외에서 이사라니요. 아무튼 별의별 일을 다 겪으며 지나는 중이지만 창밖으로 느껴지는 봄날을 놓칠 수 없어 운동화를 신고 무작정 나셨습니다.


따뜻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꽃구경도 하며 걷던 중 시끌시끌 북적북적한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화려한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커다란 피크닉 가방(흡사 이삿짐 같은)들을 들고 인파들이 한 곳을 향해 걷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자동차 경적을 울리기도 하고요. 북 치고 피리 불고 들썩들썩 한 분위기에 어리둥절하면서도 오늘 중요한 축구경기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공원입구에 들어서니 축구경기 응원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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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같은 국기를 텐트 앞에 걸어두고 사진도 찍고 음식도 먹고 삼삼오오 인사도 나누고.

아. 오늘이 무슨 명절인가 보다 생각하니 어쩐지 좀 짠하더라고요. 사실 국기를 보고 이란국기라고 오해했거든요(실제로 국기 찾아보시면 바로 이해되실 겁니다). 한참 전쟁 중인데 얼마나 복잡한 심경인가 싶었어요.

집으로 돌아와 이란 국기를 검색하니 이란국기가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AI에게 물어 알아냈습니다.

이름도 생소한 쿠르디스탄(Kurdistan)이라는 나라더라고요. 쿠르디스탄(Kurdistan)은 중동의 여러 국가에 걸쳐 있는 산악 지대이자 지리적·문화적 영역을 일컫는 명칭이라고 하고요. 특정 단일 국가라기보다는 터키, 이라크, 이란, 시리아 4개국의 국경이 맞닿은 지역에 넓게 펼쳐져 있는 사람들의 국가인 것이지요.

이곳이 공식 국가는 아닌 것 같아서 생소했던 모양입니다. 중동의 역사와 그들 민족의 복잡한 관계성을 따지고 들어가기는 너무 어렵고요. 요즘 한참 뉴스에서나 접할 수 있는 그 쿠르드족이라고 합니다. 마침 3월 21일 오늘이 그들의 새해 첫날이었던 것이지요. 전 세계의 쿠르드족은 오늘 전통 의상을 입고 모여 새해를 축하한다고 합니다. 그 현장을 제가 마침 딱 목격한 것이었네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몇 해전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 때 인도 주재원 생활을 했던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열악한 인도의 상황을 피해 전세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평소 허가된 항로가 아니었기에 영공을 통과해야 하는 국가의 군대 허가까지 받아야 하는 매우 까다롭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전세기가 올 수 있었습니다.

전세기를 타고 받은 기내식의 웰컴메시지를 받는 순간 울컥한 순간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위기의 순간 국가의 존재를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해외 살면 애국자가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습니다. 내 나라의 국력이 곧 나의 위상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러고 보니 오늘 길일일까요? 결혼한다는 지인들의 청첩장이 유난히 많았어요. 그리고 BTS의 공연도 오늘이라죠? 길일의 복을 듬뿍 받아 한참 전쟁 중인 그곳이 고향인 그들의 명절이 따뜻하길 바라봅니다. 독일의 수많은 난민들을 걱정해 주는 대한민국인이 되어 너무 뿌듯하네요. 국뽕이 막 차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