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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경 Nov 07. 2024

행복했던 순간을  ‘찰칵’ 글로 찍기

여기까지 온 것이 기적

행복했던 순간을 ‘찰칵’ 글로 찍기


지나온 삶을 가만히 짚어보니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행복했던 일이 자주 일어났는데 글로 적으려고 하니 오히려 자기 연민에 빠지는 나를 발견한다. 힘들고 고단한 삶이었다. 여기까지 온 것이 내게는 기적이란 생각을 자주 한다.


첫 번째

노란 장판과 까만색 고양이와

나, 그리고 머리가 하얗게 새버린 할머니의 쪽진 머리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데

어린 시절 시골집은 부뚜막에 불을 때야 방이 따뜻해지는 시골부엌이었다. 겨울이 되기 전에 할머니는 부지런히 나무를 해야 했다. 가을이 한창 지날즈음 소나무에서 떨어지는 땔감을 불쏘시개로 사용해야 하니 포대자루 한가득 나무를 해오셨다. 겨울마다 우리 집은 뜨끈뜨끈한 아랫목에서 추운지 모르고 지냈다. 매번

서울에서 친척분들의 예단이불을 할머니가 받아 고이 모셔두면 새것이 올 때마다 그 이불을 꺼내서 그 위에 뒹굴거렸다. 방 한 칸이었다. 이불의 감촉이 아직도 생각난다. 그 밤 고양이와 할머니 그리고 나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그때 나는 참 행복했다.


두 번째

떡볶이집이다. 나는 엄마와 매주에 한 번씩 버스를 한 시간 가까이 타고 읍내에 나가면 목욕탕을 갔다.

냉탕과 온탕을 들락거리기도 하고 사우나를

왔다 갔다 하는 엄마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나는 흰 우유를 사서 먹는다. 얼마나 맛있는지 지금도 목욕탕에서 먹은 우유의 맛 때문인지 우유를 좋아한다. 엄마가 등도 밀어주고 때를 밀어주는데

겨드랑이를 밀 때는 간지러워서 웃음을 못 참는다.

목욕탕을 마치면 두 번째 코스로 한 장소에 가림천막을 들치고 들어가면 판자 하나 놓고 죽 늘어진 떡볶이집 좌우로 네 집씩 여덟 개의 떡볶이집중에 맨 끝에 자리를 잡는다. 플라스틱 접시인데 연두색에 흰색 점이 박힌 그곳에 떡볶이가 나온다. 흰색 대접에 물을 가득 담아 빨갛고 매운 떡볶이를 빨간 고추장 양념을

대접 물에 씻어 휘휘 저어 먹는다. 맛있다. 물컹물컹한 떡볶이를 생각하니 참 좋다.


세 번째

파전집이다. 두툼한 파전과 막걸리를 먹으러 갔다.

파전골목 그 골목을 가는 도중에 작은 상점이 있다.

함께 들어가서 발목까지 오는 따뜻한 부츠를 골라주며 신어보라 한다. 따뜻하다. 따뜻해진 발 덕분인지

막걸리를 마셔 취한 건지 눈이 펑펑 내리는데 몸에 열이 난다. 두툼한 파전과 노란 양은 주전자

발목까지 오는 갈색 신발

옆에 있는 사람과 팔짱을 끼고 걷고 있다. 행복하다


네 번째

처음 집을 떠났다. 스무 살이 돼서 대학에 가기 위해

좋아하는 동아리 선배가 금요채플을 드리고 나서 오토바이 뒤에 태워 주었다. 떨려서 어떻게 하숙집에 왔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허리를 잡지도 못하고 어깨를 꽉 잡았다. 순식간에

도착해 버렸다. 어깨를 잡을 때 그 떨림이 아직도

생각난다. 선배는 타학교 의대생이었는데 연극을

함께 하기도 했고 편지를 주고받기도 했다. 처음으로 레스토랑이라는 곳도 가봤다. 겨울날 손 한번 잡고 돌아선 게 전부지만 아낌없이 나에게

대학 내내 관심을 쏟아준 그가 생각난다. 행복했다.


다섯 번째

출산을 앞둔 39주 출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40대 중반을 향해가는 노산이라 일찍 낳아야 좋다는 의사 선생님의 재촉에도 아기는 나올 생각이 없다. 40주 유도분만 날짜를 잡았고 40주가 되는 새벽 6시 입원을 했다. 저녁 8시까지 진통은 계속 오지만

자궁은 열리지 않는다. 2cm로 반응이 없다. 남편은 다른 아이들 저녁을 차려주기 위해 집으로 갔고 병실에는 나 혼자 남았다. 금식이었다.

다음날 새벽 다시 유도분만 열한 시가 넘어가면 수술을 하기로 했다. 지금껏 다섯 자녀를 자연분만했기에

여섯째도 자연분만을 원했는데 점점 길어지는 진통과 촉진제의 위험성 때문에 순리대로 수술을 하면 그렇게 하는 거지 포기했다. 수술하기 위한 준비를 하려는 한 시간 남짓한 시간 갑자기 참을 수 없는 진통이 시작된다. 2cm에서 4cm 자궁문이 열리더니 아기머리가 보인다고 하신다.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아기울음소리가 들린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아기가 내 품에 안겼다. 손가락 발가락을 확인한다. 아기가 무사히 신생아실로 가고 정신을 잃어버렸다 밤 여덟 시가 돼서 깨어났다. 소변줄도 주렁주렁 달고 출혈이 많아서 수혈을 위해 링거도 꽂았지만 아기가 내 품에 안겼을 때의 그 안도감과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소회

엄마는 중학교 3학년 겨울에 돌아가셨다.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는 스물아홉 살에 요양원에서 돌아가셨다.

파전집에서 함께 막걸리를 먹고 신발을 사준 사람은 지금 내 곁에 있는 남편이다.

오토바이를 태워 준 남자는 왜 뜬금없이 생각났을까,

그 사람은 대학 이후로 다른 이의 결혼식장에서 보았고 그 뒤로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여섯째는 현재 백일이 되었다. 모든 아이들을 자연분만했고, 노산이었던 여섯째가 1박 2일이나 되는 진통 끝에 태어났다. 이로써 나는 아들 넷에 딸 둘 엄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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